"이 물건을 소비하면 너는 행복해질거야."
눈을 조금만 밖으로 돌리면, 우리의 욕망을 사로잡으려는 것들로 아우성입니다. 상품들의 넘치는 선택지들도, 상품의 홍수들도 사실은 모두 우리의 욕망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미디어 속에서, 우리는 광고의 홍수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루동안 어떤 광고도 보지 않으려고 시도해보세요.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심지어 핸드폰도 들여다보기 힘들 것입니다.
니나리치가 너를 부른다
향기로운 너를 만들어 주겠다고
크리스찬 디오르가 너를 부른다
불란서 멋쟁이로 꾸며 주겠다고
피에르 가르뎅이 너를 부른다
나이키가 너를 부른다
엘리자베스 아덴이 너를 부른다
환상 창조-이브 탄생
에스티 로더가 너를 부른다
너, 너, 너를!
왜 거짓말을 하세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속이세요, 속여봐요, 당신의 나이를,
오일 어브 오레이가 너를 부른다
랄프 로렌이 너를 부른다
켈빈 클라인이 너를 부른다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너를 부른다
페이즐리 무늬의 매트리스를 구입하라고
랄프 로렌 침대 시트
켈빈 클라인 포푸리
게스의 기저귀 선반
다나 캐런의 티세트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야외용 기구
저렇게 많은 세계적 유명 인사들이
너, 너, 너를 부른다
아, 나는 그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가!
-김승희, <제국주의가 간다>
사실 물건을 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많은 경우 이전에 필요를 느끼지 않았는데도 쇼핑몰에 들어서고, 광고를 접한 후에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보기 전에는 필요하지 않았는데, 보고 나니 필요해지는 것이지요. (첨단 광고 산업의 힘으로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우리의 소비는 자꾸만 커집니다. 물건을 얻는 행동과 물건을 얻기 위한 노력이 소비와 일(직업)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이전처럼 사냥을 해서 고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통장에 입금된 돈으로 따로 필요한 것을 구매합니다. 그러면서 소비를 할 때는 그 돈을 벌기 위해 내가 정확히 얼만큼 노력을 했는지 망각하게 됩니다.
생산자는 우리의 환상을 이 제품이 이뤄줄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초콜릿 과자에는 단순히 맛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여유로움과 즐거움이라는 환상을 심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포장지에 글씨체를 어떻게 인쇄할 것인지까지도 포함한다.)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열렬한 마케팅과 우리의 무감각이라면, 우리가 소비를 원하도록 하는 동력이 되는 것은 '환상'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정말로 무엇인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광고들은 우리에게 다음과같은 환상들을 심어주려고 노력합니다.
이걸 가지면 남들이 널 부러워 할꺼야!-타인의 시선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에 우리는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에 기반한 판단을 내립니다. 심지어 자연과학에서의 양자도 관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지 않던가요?(는 웃자고 하는 농담입니다.) 믿기 어렵다면, 극단적으로 세상에 모든 물건이 그대로 있지만 나를 관찰하는 주변사람 없이 나밖에 안남았다고 상상해봅시다. 우리의 소비행위는 매우 달라질 것입니다. 값 비싼 차나 브랜드 있는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도 사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닌가요? 수 많은 상품들이, "이 상품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상품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는 특별한 사람이다." 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때 열쇠에 쓰인 아파트 상표에 주눅드는 이웃을 표현한 광고도 있었다)
또 올해는 특히 스트레스 해소형 과시 소비가 늘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401151804193&mode=sub_view )
이러한 소비가 우리에게 잠시의 성취감을 줄 수는 있지만, 타인의 부러움에 의존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부담과 비용이 많은 행복감입니다. (쇼팬 하우어가 말했습니다 :"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한 사람의 진정한 행복의 처소가 되기에는 너무 고약한 곳이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고(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많은 신경을 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기준은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이지요.
이게 아름다운 것이고, 너가 이렇게 되어야 사람들이 널 사랑해줄꺼야. -획일화
요즘따라 여배우나 여가수에 대한 인터넷 기사들이 말 그대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별 게 다있는데, 연예인이 누군가 셀카를 올렸다고 치면, 000 물 오른 미모, 라던가 000비키니 몸매 과시 와 같이 보기만해도 민망한 제목들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이 여자는 예쁘다. 이렇게 생긴 게 예쁜 것이다'라는 환상을 부추기며, 또한 단순히 예쁘다로 끝나지 않고 '개념 있는' '마음씨 착한'과 같은 개념과 끝없이 연관시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을 화장품광고나 옷광고 등에서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요즘은 과체중이 아닌 여성들까지 '환상 속 체형'을 만들기 위해 다이어트에 고분분투하고 있지요. (한국 기능식품협회는 국내 다이어트 시장은 2009년 기준으로 1조 2000억원, 2014년이 되면 그 두배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많은 성형외과들도 작은 코를 높은 코로, 넓은 턱을 좁은 턱으로, 홑커풀의 눈을 쌍커풀로 만들어내는 데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준에 맞는 여성은 대체 몇 명이나 될까요? 이러한 환상으로 우리를 괴롭게 채근하지 말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궁극적인 욕망이 무엇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있고, 대부분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나 사랑받는 가치들은 미디어에서 말하는 것처럼 극단적인 상하관계상에 놓인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대체로 수평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다음의 캠페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예뻐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Dove real beauty campaign (내가 이 샴푸회사랑 관련이 있지는 않다.): 진짜 아름다움에 관한 캠페인
아래의 사진은 우리가 알던 기존 모델들처럼 키가 크지도, 빼빼마르지도 않았습니다. 이전보다 확실히 우리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편안한 아름다움을 주지 않나요? 또한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인정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애정어린 시선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죠. (참고로, 사회심리학에서 진짜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것은 큰 눈과 작은 얼굴보다는 따뜻한 미소라고 합니다.)
*
우리는 충분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매체들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부족함'을 느끼게 하고, 이를 채우기 위해 소비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참고도서 및 관련 링크
-http://www.ted.com/talks/malcolm_gladwell_on_spaghetti_sauce.html
: 말콤 글래드웰, 스파게티 소스에 관하여 (수직적 관계의 가치관이 아닌 수평적 가치에 관해 스파게티 소스의 경우를 통해 말한다.)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욕망의 발견, 윌리엄 어빈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김승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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