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더 많은 선택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2. 9.






1. 많은 선택지는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나있었습니다.

둘 다를 선택할 수는 없었기에

그곳에 서서 길이 굽어진 곳까지

바라 볼 수 있는 한 멀리멀리 바라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길을 하나 선택했고,

더 나은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풀이 무성했고

사람의 발길을 기다리는 듯했기 때문이에요.

걷다보면 그 길도 발길이 남겠지만 


두 길 모두 아침이 되었고

낙엽이 밟힌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머지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뒀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 길은 날 어디로 데려갈지도 모른 채


나는 언젠가, 어딘가에서 한숨 쉬며 말할지 모릅니다.

숲에 두 갈래 길이 나있었고

나는 사람의 자취가 적은 길을 걸어서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노라고.


(1) 가능성의 사회


  오늘날은 다양성의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매우 다양한 삶의 모습과 가능성이 가득합니다. 전통적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일찍 결혼해서 여성은 아이를 보고 남성은 돈을 벌며, 아이를 낳아 가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전통사회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우리의 길을 ‘선택’ 합니다. 어떤 대학에 어떤 전공을 가질 것인가, 결혼을 할 것인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어떤 직장을 얻을 것인가 등등. 그만큼 선택지가 많아진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다양한 선택지들 속에서 더 행복해졌을까요?


  안타깝게도 많은 연구결과(자살률과 정신질환의 발병)들의 결론은 ‘그렇지 못하다’입니다. 분명 자유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라는 이름의 ‘선택’들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라고 부르기에는 조심스럽지만 현재에 주어진 다양한 가능성과 선택을 많은 경우에 자유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2) 선택의 역설 the paradox of choice


 오히려 선택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역설이 많은 학자들로부터 제기되었지만, 대표적으로 배리 슈바르츠Barry Schwartz 박사의 주장을 소개하고자합니다.

(쉬나 아이엔가의 잼 실험도 유명합니다 : 적은 종류의 잼 시식대에서 많은 종류의 잼 시식대보다 더 많은 구매율을 보인 실험)


-다른 것이 더 좋았을텐데.. :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함으로서 동시에 다른 경쟁 선상에 있던 선택지들을 ‘포기’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해서 얻었음에도 동시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심리적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간단한 예로, 서른한 가지 맛(?)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한 가지를 선택했을 때, 다른 고르지 않은 맛이 생각나는 아쉬운 마음이죠.

-기대치의 상승 : 선택을 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결과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중매결혼보다 연애결혼이 더 기대치가 높은 것과 비슷합니다. 내가 보고 선택한 사람이니, 더 좋을 것이라는 높은 기대감을 갖는 것이죠. (물론 자연과학적 법칙처럼 모두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대치의 상승은 사실 우리에게 더 많은 실망의 기회를 줍니다.

-자책감 : 강제로 주어진 일에 대한 불행한 결과는, 우리를 강제한 대상에 대해 ‘원망’으로 표출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만큼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짊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에게 많은 불행을 주고 있다는(우울증과 자살률의 증가) 주장 또한 많은 곳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의 부작용이 우리에게 ‘만족의 반대상황’을 제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 또한 자유는 끝없는 비교를 통해 경쟁을 창출한다. : 불안과 압박


 또한 자유는 경쟁을 창출합니다. 경쟁 그 자체로는 오히려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우리가 물질적으로 나아졌음에도, 우리의 심리적인 복지는 오히려 저하되었다고 주장합니다.(물론 굶으면서 행복하기는 힘들어요. 따뜻한 집과 음식, 깨끗한 물은 너무나도 행복에 중요합니다. ^ㅡ^) 행복이 상대적인 느낌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 속에 너무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지요. 그러면서 우리는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질환은 긍정성의 과잉에서 비롯된 병리적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7쪽)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24쪽)


-피로사회, 한병철 

: 간단하게는 오히려 모든 게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해내야한다는 압박에 더 불안하고 우울해진다는 것입니다.


2. 그런 의미에서 의사소통 수단의 확대는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까?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에게 가까운 예를 생각해볼까요? 오늘날 의사소통수단의 발달은 눈부십니다. 지하철 안에서도, 해외에서도 언제 어디에 있든 연락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의 확대는 우리에게 더 큰 행복을 주었을까요? 물론 이러한 기회의 확대는 많은 이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연인들이 연락문제로 다툰다는 것이나, SNS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우울한 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가능해졌기에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연락을 할 수 있는데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아쉬움과 우울함이 사람과의 관계에 많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부르델의 '페넬로페' : 길을 떠나고 소식없는 오딧세우스를 한결같이 기다린 페넬로페를 조각한 것인데, 요즘같았으면 왜 카톡 하나 안보냈냐고 화 났을 듯 합니다 허허)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위의 많은 선택에서 다른 가능성에 대해 아쉬움을 갖는다는 결론이 나온 실험들은 (다양한 맛의)잼이나, 마음에 드는 그림 과 같은 대상에 대해 통제된 상황에서 행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조금 더 복잡한 선택의 기회들이 있죠. 저는 선택의 딜레마 속에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진심은 그 대가로 어떤 것을 치르더라도 후회되지 않는 것이라고요. 이러한 무한한 가능성의 사회에서 우리가 키워야할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쉽지,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러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현대사회가 우리에게 제공한 수많은 가능성을 우리의 행복으로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자유가 우리에게 준 선택의 가치일 것입니다.


*참고 도서 및 관련 도서

-the Paradox of choice, Barry Schwartz

-선택의 조건, 바스 카스트

-불안, 알랭 드 보통

-피로사회, 한병철


'인문학 > 행복에 관한 질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피쿠로스  (0) 2014.02.27
부정적 인지  (0) 2014.02.26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3) 2014.02.19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  (0) 2014.02.18
여는 글 : 정답이 없는 문제  (1) 2014.02.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