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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우리 삶 속의 오류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9. 15.

요즈음 우리 사회에 많은 이슈들은 흑백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가장 화제가 된 사건들도 들여다보면, 혹은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엄청난 비약과 편파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끔은 이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지도 궁금할 정도로 이상한 논리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가깝게는 정치적인 편향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여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북한을 지지한다,와 같이 정치적 성향을 단 두가지로 나누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유가족을 좌파로 몰고, 또한 반대로도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한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지요.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밝혀주길 요구하는 것과 북한을 지지하는 것이 어떤 상관이 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서명에 참여는 했지만 북한을 지지하지 않을 뿐더러 매우 싫어합니다. 죄 없는 타국의 국민을 공격하고 피흘리게 하는 국가를, 국민을 가혹하게 괴롭히는 국가를 대한민국 국민인 제가 지지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듣게 된 많은 논쟁들에서 사람들은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몇가지는 우리가 쉽게 알고 있는 문제들이었습니다.

* 인신 공격의 오류

 

한 문제에 대해 논하면서 문제에 관한 따지기가 아닌 참여자의 개인적인 사항을 문제삼는 것.

자세한 설명을 참고로 첨부합니다:

논쟁에서 어떤 사람의 주장에 대해 ‘주장’이 아니라 ‘사람’을 문제 삼아 논박하는 오류를 말한다. 예컨대,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사악한 형태의 경제·사회적 조직이라고 주장함에 있어 잘못을 범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가족을 부양할 만큼의 돈조차 벌 수가 없었던 한심스러운 실패자였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을 보자. 이런 주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 사례를 제시한 미국 철학자 스티븐 바커는 “이것은 사람에의 논증이다. 왜냐하면 이 논증은 왜 마르크스가 옳지 않은가에 대한 직접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대신, 마르크스라는 사람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제가 결론을 실제로는 전혀 확립시켜주지 않기 때문에 오류이다. 이것은 사람에의 논증의 인신공격적(abusive) 형식이다”고 했다. 그런데 바커는 사람에의 논증이 모두 오류인 건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컨대, 스미드 교수가 어리석고 편협한 경향을 가진 적응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경제학 이론에 대한 그의 견해가 불건전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증가시킨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경제학 이론은 어려운 주제여서 균형 잡힌 판단력을 가진 지적인 사람일수록 그것에 대하여 더욱 건전한 견해를 가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가 그의 견해를 명백히 거부하기 전에 시간이 있다면 스미스 교수의 책을 읽어보아야 하겠지만, 그의 인격에 대한 이런 정보가 그의 견해가 옳은지 여부에 관한 문제에 관련이 없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문화권의 차이도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뢰’는 사실 논리와는 거리가 먼 것일 수도 있다. 평소 신뢰받지 못한 사람이라도 어느 경우에 옳은 주장을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평소 보아온 그 사람의 됨됨이로 그 주장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걸 비논리적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 세계에선 큰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인신공격의 오류란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무관련성의 오류(fallacy of irrelevance) 또는 논점 무지(논박되어야 할 것에 대한 무지)의 오류일 경우에 한해서 성립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선샤인 논술사전, 2007.12.17, 인물과사상사)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 수 있습니다.

철수: 나는 학교 급식이 완전히 채식화 되는 것에 반대해.
영희: 맨날 네가 고기만 먹으니까 그렇지.

철수가 이후에 근거로 제시할 것들은 채식만으로 이루어진 식사를 하다가 영양소의 결핍을 겪은 사람들의 사례들일 수도 있고, 그러한 영양학적 정보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철수의 개인적인 생활습관을 문제 삼아 반박하는 것은 논점을 흐리는 행동이지요.

*

 하지만 우리가 범하는 많은 오류들도 사실은 진화적으로 이점을 가진 특질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이 정직함을 옹호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도 힘들고, 일상에서의 가치판단이란 발화자의 자질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편견과 도식(scheme)이 자리해있습니다. 그러한 도식은 실제로는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선입견과 도식이 없다면 가치판단에 커다란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한 교수님께서는 선입견 그 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을 통해 쌓아온 판단에의 참고사항 같은 것이라 하셨지요. 그것이 지나치게 잘못된 생각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이러한 오류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현 시점의 많은 논쟁(인가요??)들이 이루어지는 때, 저는 이전에 대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는 일들(일명 안녕들하십니까)에 대해 왜 반대하느냐고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러한 활동을 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북한과 관계되었다는 증거만 열심히 찾아서 오는 것에 큰 실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대학생들이, 또 제 주변의 학생들이 그러한 활동을 한 것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었습니다만,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의 근거는 그들이 북한에 관계되었다는 주장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요. 그 학생들이 한 주장에 대한 반박주장이 아닌 그 개개인의 자질을 묻기만 하는 태도는 논의를 더 이상 진행시킬 수 없었습니다. (제 친구만 이런 식으로 반박했으리라고 믿고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식으로만 생각한다고는 믿고싶지 않습니다.) 그러한 인신 공격만으로는 더 나은 결론을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흑백논리

 

 

'내가 옳고 너희는 틀리다'라는 생각은 어쩌면 참 쉽습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일수록 그러한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이 명백하지요. 주인공은 착한 편, 상대편은 악당이라는 구분은 참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해주고, 어떤 공격들도 마음놓고 관람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에서도 그러한 선악구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세상에 밑도 끝도 없이 나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또 밑도 끝도 없이 착하고 너그러운 사람은요? 인간은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고, 한 사람이라도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서는 다양한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내 편 네 편을 나누고 싸우는 모습은 흑 아니면 백 과 같은 흑백논리의 전형입니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열연 중이신.. 연기를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악녀와 같은 역할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마치 '욕하세요!'라고 만들어진 역할 같습니다. 어떻게하면 욕을 먹을지 연구라도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은 가상의 시나리오일뿐, 많은 경우는 그 사람의 행동 그 자체보다도 우리가 가진 편견이나 도식이 판단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인지하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러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 상처가 많은 세상에 가족을 잃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능욕하는 많은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를 피할 힘이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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