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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외로움의 실존주의적 접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9. 11.

 우리는 때로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비단 커플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도 외로움은 늘 홀로 태어나 홀로 죽어야하는 인간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SNS에 늘 접속해놓고, 연락이 오지 않는 연락수단을 계속 들여다보는 것도 어쩌면 겉으로는 알지 못해도 계속해서 우리는 깊숙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외로움에 대한 실존주의적인 입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문제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과연 외로움을 느끼는 것인가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가요? 때로 우리는 외로움 그 자체보다도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에 고통받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감정이 먼저 외롭기 때문인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명료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두려워하지 말고, 그 대상이 외로움이 아니라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큰 위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2. 외로움을 직면해 볼 것

 우리는 진짜 '혼자 있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요? 그저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 치료자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 볼 것을 권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상상의 여지는 더 커다란 두려움을 만들고 고통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두려워하는 것을 직면하면 오히려 '겨우 이거야?'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자들은 오히려 지독한 외로움을 직면해볼 것을 권합니다.
: 혼자서 며칠 간 외부와의 연락 없이 혼자 지내 볼 것
핸드폰도 끄고, 텔레비전도 끄고 컴퓨터도 끄고 한 번 외부와의 연락 없이 혼자의 시간을 보내보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미칠 것 같은 일만은 아님을 알 수도 있고, 스스로와 대화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외로움이 사실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체감해본다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어느정도 감해질 것입니다.

3. 사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 있습니다. 이는 바로 모든 사람은 혼자 태어나고 홀로 살아가다가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는 있지만 늘 제 인생의 주체는 저 하나뿐이죠) 혼자 떠납니다. 이는 어떻게해도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한다'고 말해도, 또 이해하려고 애써도 인식론의 오래된 문제처럼 타인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한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아주 기본적인 차원에서 내가 느끼는 붉은 색이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느낌의 붉은 색인지 알 수 없는걸요. (나에게 붉은 색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르게 인식되고 (예를들면 청록색)보이지만 모두 '붉은색'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움은 인간에게 견딜 수 없는 시련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가 느끼는 힘든 감정은 외로움 그 자체가 아닌 두려움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잇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

많은 사람들이 이미 연인관계(romantic relationship)을 맺고 있음에도 오히려 더 외로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랑에서의 외로움은 많은 곳에서 표현됩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노래는 다른 내용이지만, 오히려 누군가를 만나기 때문에, 더 외로워진다는 푸념은 아주 일상적으로 들려오고 느껴집니다.


 

 

 관계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마틴 부버Martin Buber의 말들은 이러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마틴 부버는 우리에게 우리의 관계들에 대해 재고해볼 것을 제안합니다. 관계는 나와 그것의 관계(Ich-es)와 나와 너의 관계(Ich-du)가 있습니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필요를 기반으로 한 피상적인 관계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나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나와 너의 관계는 다릅니다. 온전한 '너'는 그 자체의 존재만으로도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사랑의 관계에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더 생각해주기 바라는 마음은 그만큼의 기대치를 낳고, 그 기대치만큼 달성되지 않을 때 관계 속에서 외로움과 소외를 느낍니다. 하지만 마틴 부버에 따르면 사랑은 자신 그 자체로 온전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외로움의 해소를 위해 필수적인 수단(자신 자체로는 부족한 상태)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자체를 별개의,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며 상대방의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을 어떤 수단으로 대하지말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되게 하라는 칸트의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 우리의 관계들은 어떤가요? 한 번쯤 내가 때로는 누군가에게 화가날때,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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