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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행복을 배우는 학교1: 우리들의 교육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8. 7.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 행복한 일을 찾아라.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생 수업에는 행복하라는 숙제뿐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들은 위대한 가르침을 주는 교사들이다. 삶이 더욱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죽음의 강으로 내몰린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교훈은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이다... 우리는 배움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예외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한 것이다. 수업이 하루 24시간인 학교에.. 살아있는 한 그 수업은 계속된다. 그리고 충분히 배우지 못하면 수업은 언제까지나 반복될 것이다.
-류시화

 

 오늘날같이 매스컴에서, 베스트셀러 목록들에서 행복과 좋아하는 일이 강조되는 시기가 있었던가요?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수많은 불행한 얼굴들이 보입니다. 어린 나이에도 벌써 사는 데 지친다는 친구들, 매일같이 열람실에서 로스쿨이나 전문대학원 시험, 혹은 고시를 공부하느라 얼굴 한 번 마주치기 힘든 친구들. 장난말로, 내 주변은 문대면 행정고시나 법학전문대학원, 외국어계열은 외무고시, 경영이나 수리계열은 CPA, 공대는 변리사 시험, 생명계열은 의학/치의학/약학 전문대학원 공부를 한 번쯤 해본다는 말로 정리가 될 정도였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남들이 다 하는 것 말고, 네가 즐기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말이 많은 각광을 받고 있음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이는 공허한 말로 느껴질 뿐입니다. 우울증 환자와 자살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주변에도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로 넘쳐가고 있습니다. 오랜 취업준비 끝에 대기업에 붙었다는 선배들의 얼굴은, 어제도 밤새 마셨다며 지친 표정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SNS에는 결국 그토록 바라던 CPA 통과,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후에 사는 낙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올라옵니다. 주변에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실 그들은 자신이 꿈과 행복을 버렸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안정적이고 좋은 미래를 이루기 위해서 지금 이 시간을 투자하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통과하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험에 떨어진 뒤에는 또 다른 고시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이렇게 널리 잘 알려진 말인데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의 대답은 의외로 비슷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

                                             

 

 나와 내 나이대의 친구들이 어떻게 살아왔나 생각해보았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영어 학원을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고, 방과 후에는 학원을 다녔습니다. 중학교도 마찬가지. 교복과 머리규정이라는 규제를 하나 더 달고 학교와 학원을 전전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학교에 진학했고, 이때까지 우리가 해본 것과 성취를 느껴본 것은 공부밖에 없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이다. 대학에서, 또 세상의 과목은 국영수사과가 아니었습니다. 주어진 공부를 하던 버릇대로 일단은 학점을 열심히 따기 위해서 공부합니다. 하지만 졸업 이후를 생각하면 불안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한 ‘공부’를 위해 다시 열람실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많은 학생들이 꿈과 도전,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행복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전반적인 우리나라 학교의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학생을 만들어 가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교육과정상으로 우리는 자유로운 때가 많지 않았지요. 충분히 좋아하는 것을 하고 지내라고 하는 교육기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많지 않았으며, ‘선택에 취약’해졌습니다.

  나 또한 후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는 학생이지만 그러던 중 한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EBS 학교란 무엇인가에 나온 ‘서머힐Summer Hill’학교였습니다. 물론 수업시간이나 여러 가지 매체들을 통해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던 동화책 ‘지각대장 존’의 작가인 존 버닝햄이 나온 학교이기도 하지요. 또한 아이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몬테소리식 교육과 관련된 학교입니다. 

                                            
(EBS 학교란 무엇인가_ 1부)
  http://www.youtube.com/watch?v=vph-1M7x_q0
(서머힐 학교는 10부)

 현재 중고등학생들이 공부하려는 의지는 많은 경우 공부 자체의 즐거움보다 주입된 동기에서 나옵니다.(성취감이라는 것도 어떤 외부적 시선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러한 폭력적인 구조를 갖게 된 것인가요? 왜 학교가 자발적인 배움의 공간이 아닌 강요와 획일화된 폭력적인 공간이 되었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다 다른 적성, 다 다른 모습을 가진 학생들을 국영수사과, 또 그것을 측정하는 시험점수로 줄 세운다는 것이다.(처우와 시선 또한 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성적의 영역은 단순히 숫자적인 의미 이상을 갖는다.) 소수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획일화의 폭력이 지배적인 학교에서, 말도 안 되게 자유의 시도로 내세운 것은 이러한 자유 없는 구조 속에서 선생님들의 처벌권을 빼앗은 것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어떤 자유를 주었단 말인가요? 학생들은 학교에 갇힌 채로 힘없어진 선생님들을 괴롭히고, 통제는 힘들어지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깊어집니다. 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가슴에 와 닿지도 않는 지식들이 우리를 ‘거쳐 가도록’ 아이들을 잡아두는 것이 대체 어떤 도움이 될까요? 이러한 의문제기는 너무 오래되어, 식상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결국엔 공부를 잘해야 대접받고 살지 않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대답을 듣지요. 대접은 받지만 그것이 행복한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행복이란 말은 너무 뻔하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고,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인생은 행복에서 의미를 찾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20년 동안 행복과 자유를 배우지 않습니다. 물론 행복이나 자유가 어떤 지식적으로 전달되는 과목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육이라는 체제 속에서 자유를 박탈당합니다. 현 교육체제를 두고 행복한 사람을 키워내는 교육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서머힐의 선생님이 한 설레는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인간에게 행복한 유년시절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많은 경우 자유는 방종과 혼돈됩니다. 자유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불가피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수많은 교과서에서 ‘자유냐, 평등이냐’의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자유는, 서머힐에서 가르치는 자유는 오히려 이 통제된 비도덕적 사회를 비웃습니다.

                                          

 우리의 수많은 교육방침들은 조작적 조건화Operational conditioning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벌을 준다. 그러면 다시는 안하게 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심리학 교과서에는 이미 처벌의 수많은 허점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 처벌은 처벌하는 사람에 대해 불필요한 적대감을 가지게 한다.
2. 처벌은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가르치지만,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시해주지 못한다.
3. 처벌은 잘못을 감소시키기도 하지만, 잘못을 줄이는 것보다 처벌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배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처벌과 규제중심의 훈육은 뿌리 깊게 박혀있습니다. 이 속에는 아이의 불행과 두려움이 있으며, 아이의 자유가 전체의 질서와 대치되는 것으로 여기어집니다. 사실, 서머힐의 교육을 논리적으로 어떤 법칙으로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결과로서 보여 진다. 서머힐을 나온 학생들은 대부분 행복한 사람이 되었고 그 내부의 모습 또한 무질서와 방종과는 거리가 멉니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에만 매달리고, 대학에 온 이후에는 공부와 멀어지고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는 오늘날의 모습은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금 상황은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개인의 힘으로 바꾸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만큼 개인의 탓을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적인 모델이 우리에게 제시될 수 있을까요?

*참고 문헌
-EBS 다큐프라임, “학교란 무엇인가”, “학교의 고백”, “진로교육 나는 꿈꾸고 싶다
-A.S. , “자유로운 아이들, 서머힐”, 아름드리 미디어, 2006
-김은산, “A. S. 니일 연구-그의 사상과 서머힐 학교의 교육사적 의의 : 서머힐 학교의 현황과 문제점 및 성과”, 서울: 이화 여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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