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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Feed-book!

김승옥 무진기행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16.


ⓒMartin Vlach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무진기행>을 처음 알게 된건 고등학교 2학년때 입니다. "언어영역-산문문학"을 총정리해놓았다며, 불안한 수험생의 마음을 조금은 안심시켰던 그 문학자습서에서는 <무진기행>의 줄거리를 짧게 소개하며, 두 동그라미 안에 서울-일상적-세속적 공간 / 무진-비일상적-탈속적 공간을 적어놓고는 대립을 뜻하는  표시의 화살표를 죽 그어놓았던 걸 외운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읽은 <무진기행>은 동그라미 두개와 작대기 하나로는 설명이 부족한, 훨씬 깊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무진은 주인공 '나'의 고향입니다. 돈 많고 빽있는 과부와 결혼해서 큰 제약회사 전무자리 취임을 앞둔 '나'는 아내의 권유로 휴양차 고향으로 향합니다.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에서 사내가 그랬듯이, 마음속 깊이 요동치는 향수가 그를 고향의 품으로 가게 했던 걸까요? 그런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는 무진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무진기행>이 다른 귀향소설과의 특이한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김미현 교수(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는"<무진기행>은 서울로의 '귀경'을 위한 소설이지, 무진으로의 '귀향'을 위한 소설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서울에서 다시 열과 성을 바쳐 책임을 다할 것을 위해 잠시 무진에 가는 것일 뿐입니다. 


ⓒDelaney Allen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고 나의 청각이 문득 외부로 향하면 무자비하게 쏟아져들어오는 소음에 비틀거릴 때거나, 밤 늦게 신당동 집 앞의 포장된 골목을 자동차로 올라갈 때, 나는 물이 가득한 강물이 흐르고 잔디로 덮인 방죽이 시오리 밖의 바닷가까지 뻗어 나가 있고 작은 숲이 있고 다리가 많고 골목이 많고 흙담이 많고 높은 포플러가 에워싼 운동장을 가진 학교들이 있고 바닷가에서 주워 온 까만 자갈이 깔린 뜰을 가진 사무소들이 있고 대로 만든 와상이 밤거리에 나앉아 있는 시골을 생각했고 그것은 무진이었다. 문득 한적이 그리울 때도 나는 무진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럴 때의 무진은 내가 관념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아늑한 장소일 뿐이지 거기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무진이라고 하면 그것에의 연상은 아무래도 어둡던 나의 청년이었다.  


 






"골방 안에서의 공상과 불면을 쫓아 보려고 행하던 수음과 곧잘 편도선을 붓게 하던 독한 담배꽁초와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함 따위거나 그것들에 관련된 어떤 행위들"이 연상되는 무진에서 '나'가 아내의 바람대로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는 '책임'뿐인 서울을 떠나 거의 무념무상의 상태로 무진을 돌아다니면서 고등학교 동창, 후배를 만나고, 그리고 '하인숙'이라고 하는 고등학교 음악교사를 알게 됩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무진에서 교사직을 하고 있는 여자는 서울로 돌아가기를 항상 고대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친해지자 하인숙은 '나'에게 자신을 서울에 같이 데려가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그 모습이 과거 청년 시절의 자신과 너무 닮은 것을 느낀 '나'는 여자에게 연민과 애정을 느끼고 함께 잠자리를 가집니다. 그리고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죠. 그러나  그 약속은 "27일 회의참석 필요, 급상경바람"의 아내의 전보를 받고는 갑자기 무너지고 맙니다. 그는 인숙에게 사랑한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쓰지만 한 번 읽어보고 난 후 찢어버리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황급히 무진을 떠나면서 안개처럼 몽환적인 이 이야기는 마무리 됩니다.  


아내의 전보가 무진에 와서 내가 한 모든 행동과 사고를 내게 점점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모든 것이 선입관 때문이었다. 결국 아내의 전보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흔히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 때문이라고 아내의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기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그는 배포없고 용기없는 도시인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기엔 이제는 책임질 것도 많고, 맡아야 할 일도 많은 성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살한 여자의 시체에게서 성욕을 느끼고, '속물'들 사이에서 낄낄대며 유행가를 흥얼거리고, 알게 된지 하루밖에 안 된 여자와 관계를 맺지만 이 모든 것은 '무진'이라는 환영(影)같은 곳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동시에 이 환영(影)같은 공간에서만이 '사랑'이라는 걸 할 수 있는 것이구요.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맡은 바에 충실하라는 아내의 부드럽지만 강압적인 명령에 단 한마디도 반항하지 못합니다. 또 진심으로 애정을 품게 된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전하지 못하는 소심하고 비겁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사로운 감정과 낭만에 취하기엔 그는 너무 잃을 것이 많은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Sarolta Ba

그가 무진을 떠나면서 느낀 부끄러움을 왜 저도 똑같이 느꼈는지, 왜 공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아직 책임질 것이라곤 제 몸 하나뿐인, 맡고 있는 역할도 많지 않은, 그러니까 잃을 것이 별로 없는 학생인데 말이에요. 잃을 것도 적은데, 그 적은 것을 잃는게 두려워서 옹졸하게 주먹을 꽉 쥐고 살아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아직 한번도 휴학하지 못했습니다. 용기가 없는 것이죠. 학기중에는 정신없는 대학생활에 휴학생각이 절실하게 들지만 또 이렇게 방학을 하고, 책 한자 읽을 여유가 한시간이나마 생기면 '그래, 얼른 졸업해서 좋은데 빨리 취직해야지'하는 마음속 재촉에 또 다음학기 시간표를 구상하고 마는 것입니다. 스물 둘의 쨍쨍하고 화창한 이 여름에, 방학한지 한달이 다되가는데 토익학원과 중국어 공부에 치여서 변변한 여행한번 못해본 제 모습이 어쩐지 서울로 황급히 돌아갈 채비를 하는 '나'의 그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잠깐이나마 '무진'에 가면, 안개낀 그 환영(影)속으로 들어가면,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곳에 가면 제가 집착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안개속에서 죽은 듯이 숨어있다가 다시 재충전 할수 있을까요? 무진에 가고 싶습니다.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 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더 가까이 끌어당겨주기로 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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