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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Feed-book!

로맹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3.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로맹가리(혹은 예명이었던 에밀 아자르) 작품 중 가장 유명하고 또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예전에 그의 작품 <자기 앞의 생>을 인상깊게 읽었던 터라 이번에도 기대를 하고 학교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단편집이더라구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은 한 30장이면 끝나는 짧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내용이 어찌나 어렵던지 연거푸 3번을 읽어서 겨우 이해가 되는 듯 했습니다. 사실 지금 서평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서도 제 해석이 맞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그만큼 이 짧은 소설은 구성, 줄거리, 시점 등 모든 면에서 굉장히 난해하고 기존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Delaney Allen

내용은 오히려 지나치게 단순하고 명료해서 불친절하게까지 느껴집니다. 젊은 시절 참전병으로 산전수전 다겪은, 오십을 바라보는 중견의 남자는 페루의 한 후미진 동네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바다에 뛰어들어 죽으려는 한 젊은 여자를 구하게 되고, 그녀가 강간을 당해서 자살시도를 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여자에게서 연민과 젊음을 느낀 그는 빠르게 매혹당하지만 (그래서 아주 찰나이지만 운명처럼 만난 이 여인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할수도 있을 거라는 야릇한 희망까지 품게 되지만) 그녀는 이미 유부녀. 자신의 아내를 진심으로 걱정하기보다는 그녀의 몸에 달린 보석을 더 걱정하고, 그녀를 성불감증 환자로 치부해버리는 남편의 모습에서는 이미 부부애는 찾기 어렵지만요. 어쨌든 그들은 "이 새들이 모두 이렇게 죽어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거요."라고 말하면서 해변을 떠나가는.  줄거리는 대강 이렇습니다. ㅎㅎ

하지만 이 소설의 주제는 줄거리보다는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서 찾을 수 있을 것같습니다. 남자는 줄곧 '모든 것에는 과학적인 설명이 있게 마련'이라며 이유(reason), 과학 등에 집착하지만 지나친 긍정은 부정이듯, 어딘가 반어적이고 풍자적인 뉘앙스가 엿보였습니다.


Mothanna Hussein& Hadi Alaeddin 의 "Not Art Project"

시도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단순한 생리적 분비현상으로 연구되리라.


Mothanna Hussein& Hadi Alaeddin 의 "Not Art Project"

머잖아 인간은 송두리째 활용되리라.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꿈들이 전쟁과 감옥을 만드는 데 이미 쓰이지 않았던가.


Mothanna Hussein& Hadi Alaeddin 의 "Not Art Project"

차라리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야 할 터. 그것이야말로 영혼이 과학에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머잖아 학자들은 영혼의 정확한 부피와 밀도와 비상 속도를 계산해낼 것이다.


그가 살고있는 해변은 거기서 몇킬로미터 떨어진 섬에서 살고 있던 새들이 날아와 죽는 곳입니다. 왜 새들이 더 멀리도 더 가깝게도 아닌 그곳에 와서 몸을 뉘이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 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항상 "왜 새들이 여기서 죽죠?"하고 물어보죠. 만약 제가 그 바다에 갔다면 저역시 왜지 하고 물어봤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에 항상 과학적인 설명과 이유를 찾는 강박을 가져버린 건 아닐까요- 

로맹가리는 사랑, 시, 희망.. 이런 애매하고 몽상적인 것에 대해서도 언제나 이유를 찾고 설명을 붙이려고 하는 세상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던집니다. 새들이 페루에 가서 죽는 과학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부가적인 설명도 필요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현상에 집중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집중은 작가의 눈을 거쳐 그림으로, 문학으로 재탄생됩니다. 그는 '이유없는 마음과 현상'에서 인간다움이 가장 잘 발현할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숲속에 마른 열매 하나가 툭 떨어졌다. 나무 밑에 있던 여우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멀리서 호랑이가 그 여우를 보았다. 꾀보 여우가 저렇게 다급하게 뛸 때는 분명 굉장한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도 뛰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뛰는 모습을 숲속 동물들이 보았다. 산중호걸인 호랑이가 저렇게 도망을 칠 정도면 굉장한 천재지변이거나 외계인의 출현이다. 그래서 숲속의 모든 동물이 다 뛰었다. 온 숲이 뒤집혀졌고 숲은 그 숲이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 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얼마전 읽었던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입니다. 우연히도 둘다 제목에 '새'가 들어가네요!ㅎㅎ  애매한 건 애매한대로, 이유없는 건 이유없음!으로 캐내려고 애쓰지말고 가볍게 넘어가는 여유가 절실한 때입니다.   



베르메르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다비드作 <마라의 죽음>휘슬러作 <회색과 검은색의 배합 제 1번>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그림'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줄거리도 꼼꼼하지 않고 어쩐지 장면 하나하나가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어색하고 어렵기도 했지만, 그것역시 문학작품에 '설명'을 덧붙여보려는 제 습관에서 온 강박이 아니었을까요- :) 한 장면을 담은 그림하나가 열사람에게 보여지면 열가지의 해석과 이야기가 나오듯, 로맹가리가 만든 이 그림같은 이야기는 열가지, 스무가지의 해석을 만들어 낼 겁니다.  그는 '느낌' 그자체에 충실하라고 말하고 있구요. 


한 가지 설명은 있어야 하고 언제나 있을 테지만 모른들 무슨 상관이랴. 과학은 우주를 설명하고, 심리학은 살아있는 존재를 설명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방어하고, 되어가는 대로 몸을 맡기지 않고, 마지막 남은 환상의 조각들을 빼앗기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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