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키드먼,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2001년 영화 <물랑루즈> 보셨나요? 낭만적이고 동화적인 전개와 화려한 영상미로 러닝타임 내내 한눈팔수 없었던, 완전 재밌는 뮤지컬 영화인데요! 사실 같은 제목으로 1940년에도, 또 1952년에도 만들어진 영화가 있었더라구요! 물론 뮤지컬도 있구요. ㅎㅎ 물랑 루즈는 프랑스의 일명 '벨 에포크'시대라고 불리던 때에 몽마르트 언덕에 있던 댄스홀입니다. 벨 에포크(Belle Epoque)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가 산업혁명으로 인해 누린 호경기시대를 말해요. 우리말로 ‘좋은 시대’라는 뜻이죠. 물랑루즈는 그 호시절 파리의 풍요와 평화, 그리고 유흥과 사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시절 그 장소를, 그 느낌을 그대로 담아낸 화가가 있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입니다.
우연히 그가 그린 포스터작품을 보고 19세기 작품이라고는 믿을수없이 현대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작가가 150cm의 난쟁이였다는 사실에 왜인지 모를 매력을 느껴서 그에 관한 책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영화 <물랑루즈>에도 나왔었더라구요! 그땐 몰랐는데~ㅎㅎ
에드가 드가를 좋아하는 제가 로트렉의 작품에 매력을 느낀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로트렉은 드가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그의 화법이나 구도 등을 많이 배웠다고 합니다. 확실히 비정형적인 구도나 움직이는 것을 일시정지한 듯한 생동적인 장면 등에서 두 사람이 많이 비슷함을 볼 수 있죠?? 두 사람은 작품 대상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비슷한 면을 보입니다. 드가와 로트렉 모두 카페, 서커스, 경마장, 극장 등에서 작품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인공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이것은 인상파 화가들의 자연에 대한 관심과 대조되는 점이다. 드가나 로트렉은 자연과 태양의 세계를 떠나 인공적 풍속과 인공적인 빛의 세계를 택한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동적, 유기적, 인간적인 것에 있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정적, 무지적, 자연적인 것에의 무관심을 의미한다. 이런 성향은 그들이 가진 도회적 감각에 기인한 것일 것이다.
이렇게 드가와 로트렉은 그들의 시선을 '인간'에게, 그것도 '근대적 인간'에게 돌림으로써 후기 인상주의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화가로 불려집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두 사람은 가장 중요한 점에서 구별을 가집니다. 그건 바로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입니다. 드가는 생전 여자를 혐오했다고 알려져 있죠. 지극히 개인적이고 염세주의적인 예술가로 대표되는 작가이기도 하구요. 이런 드가에게 여자란 단순히 작품을 위한, 자신의 조형세계를 위한 하나의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로트렉은 여자를, 그리고 인간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서른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생의 많은 시간을 사창가에서 보냈고 나중에는 아예 창가(娼家)로 이사를 가서 창부들 속에서 생활했을 만큼, 여인을 사랑하고 또 인간의 모든 모습을 긍정했습니다. 그는 생전 “어디보다도 여기 창가에 있을 때가 제일 마음 편안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로트렉은 드가가 인간을 작품의 대상, 수단으로 본 것과는 달리 인간이 목적이 되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몸이 불편했던 로트렉에게 있어서 인간 관찰은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생활 그 자체였던 겁니다.
로트렉은 냉혹하리만큼 꾸밈없는 인간 표현을 통해 비극을 넘어서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포용한다. 인간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었기에 그는 어떠한 비극이나 추악함마저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다. 사랑함으로써 비극은 극복된다. 아니, 본질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비극은 이미 비극이 아닌 것이다. 로트렉은 결코 현실을 미화시키지 않는다. 다만 참모습을 찾아내어 표현함으로써 현실에 영원한 생명을 부여할 뿐이다.
그래서 로트렉의 작품에는 특히 창녀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모습에서는 슬픔과 무기력같은건 보이지 않습니다. 작가의 사회적 통념이나 일반적 윤리를 내세우려는 태도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이 사랑한 여인들을 그림으로써 사회적 잣대가 강요하는 비극을 거부하고 그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긍정했습니다. 창녀들 역시 그에게 호의적이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녀들 입장에서는 하반신이 비정상적으로 짧은 난쟁이 로트렉 역시 자신들과 같은 인생의 실격자라고 여기지 않았을까요. 로트렉은 창녀들을 보면서 그녀들이 자기와 같은 불구자라는 동류의식에 심리적 안도감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구요.
로트렉은 귀족의 후예였기에 평생 돈걱정없이 살았다고 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모델을 대생할 때 전혀 타협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는 누구의 부탁을 받고 초상을 그린 적도 없고, 마음에 드는 사람 외에는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등장한 많은 모델들은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육체적 관계를 맺었던 여자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합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가 정말로 이 많은 여자들에게 연애감정을 가졌는지는 의문이 들거든요. 어쩌면 그는 자신과 이 여자들 사이에 육체나 욕망의 교환은 가능해도 정신이나 감정의 접촉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가 그린 많은 여인들의 그림을 보다가 언젠가 유진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 수록되었던 시 한편이 자꾸 겹치는 걸 느꼈습니다.
밤새 내 가슴 위에서 그녀의 따뜻한 가슴이 고동치는 것을 느꼈네,
밤새 내 품에서 그녀는 사랑과 잠에 취해 누워 있었네.
돈으로 산 그녀의 붉은 입술의 키스는 정녕 달콤했지만
잠에서 깨어 먼동이 트는 것을 보자
난 쓸쓸했고 옛사랑이 그리웠네,
시나라여! 나 그대에게 충실했네, 내 방식대로.
『 시나라 - 어니스트 다우슨 (부제; 지금의 나는 사랑스러운 시나라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아니다.)』
이 가벼운 연애관계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비관의식과 쓸쓸한 느낌은, 홉사 우스꽝스럽게 웃고있는 광대를 볼때와 비슷한 감정입니다. 그가 우스꽝스러운 몸을 가져서일까요. 그런데 그 역시 살면서 자신을 항상 희화화한 작가였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고흐는 많은 자회상을 남긴 화가로 유라고 할 수 유명하다. 고흐가 자기응시를 통해 구도적으로 자기를 확인하는 데 비해, 로트렉은 자신을 대상화시키고 가장(假裝)으로 은폐한다. 자화상과 사진의 차이는 주관과 객관의 차이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든 사진 중에는 기묘한 가장을 한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때로는 가발을 쓰고 드레스를 입은 여장을 하기도 하고, 일본의 사무라이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그는 이렇게 가장을 하고 흥청대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가장은 로트렉이 자기 본래 모습이 아닌 또 다른 자기를 사랑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이는 탈자아에의 욕구, 즉 불구인 육체에 대한 은폐를 보여줍니다. 아마도 그의 쾌활함이나 장난스러움, 사교성 등도 끝없이 그를 괴롭히는 육체의 불행에 대한 감정을 감추려는 안간힘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로트렉을 처음 알게 된 포스터 역시 그의 이런 삶의 태도에서 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그의 세련된 포스터들이 그를 타른 작가들과 구별해주는 독창적인 그만의 양식으로 평가받지만 당시에 그가 포스터라는 상업예술을 거리낌없이 흔쾌히 그렸다는 것은 그의 가식없는 태도에서만이 행해질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로트렉이 명예나 예술가의 ‘체면’에 신경을 썼다면 결코 포스터에 손을 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아카데믹한 고답적 귀족 예술가들이 포스터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처럼...
포스터는 상업예술이자 거리의 예술입니다. 그건 미술관 벽에 장엄하게 걸려있는 그림들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별로 생각 없이 그것을 보고 즐길수 있었습니다. 누가 그런 것이라도 상관없이 그들 생활의 한부분으로서 느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생활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생활이었던 작가였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모든 것을 긍정하며 모든 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낭만적인 이 시선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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