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인생이 이 육하원칙에 의해서 퍼즐구멍 맞추듯 딱 들어맞는것이라면 얼마나 편할까요, 또 얼마나 따분할까요. 우리는 계획적으로 생각하고, 생각한대로 산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가 가진 시간의 대부분은 언제 어디서 불어닥칠지 모르는 뜻밖의 사건들, 그리고 "왜"라는 질문에 쉽게 이유를 대지 못하는 인생의 많은 고민들로 채워져있습니다.
ⓒMariano Peccinetti
오늘 소개할 박민규의 <아침의 문>은 "왜"사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유를 찾지 못한 한 남자가 자살을 시도함으로써 생을 마감하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남자는 그 무엇도 알지 못합니다. 모택동이 누구인지도, 먹고있는 비스킷이 어떤 맛인지도, 편의점에서 갑자기 순간접착제를 산 이유도. 그는 "모르겠다"라는 말로 모든 답들을 대신합니다. 그리고 끝끝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되죠. 인터넷카페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요. 물론 죽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 채로 말이죠.
실은 그렇다. 왜 죽으려는 거지? 누가 묻는다면 뾰족한 대답을 할 자신이 없다. 처음엔 뭔가 명확한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다는 얘기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죽고 싶다.(...) 이유 따위는 찾고 싶지도 않다. 살아야 할 백가지 이유가 있는 거라면, 죽어야 할 백가지 이유도 있는 거겠지...
그리고 이 남자만큼이나 사는 것이 지옥같은 한 여자가 있습니다. 여자는 원치 않은 임신을 했습니다. 어디에도 여자를 받아줄 곳은 없고, 누구도 곧 태어날 새생명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압박붕대로 배를 감춘 채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오던 여자는 결국 동이 트던 어느날 새벽 퇴근길에 진통을 느낍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허름한 건물에 기어올라간 그녀는 거기서 혼자 아이를 낳습니다. 그 건물에 맞은편 에서는 지난 밤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남자가 목을 매려고 넥타이로 올가미를 만들고있었죠. 남자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눈에 담기위해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이를 낳고 있는 여자의 형상을 보고맙니다.
ⓒ우병윤
불쑥, 튀어나오는 머리를 그는 그만 보고 말았다. 그 무언가와, 그래서 왠지 눈을 마주친 기분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눈코입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서로의 문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이곳을 나가려는 자와
그곳을 나오려는 자의
그들은 서로를 대면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왜? 라는 물음을 가슴속에 울리며 그는 여전히 의자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보았다. 스스로, 끝끝내 문을 열고 나오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쏟아지듯, 혹은 엎질러지듯 나오는 팔과 다리... 아주 작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여자아이란 사실마저 알 수 있었고,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엎질러지는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모든것을 '알수없음' 으로 일관하던 그가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엎질러지듯 일어나는 인간의 탄생'입니다. 논리로는 설명할수 없는 신비 앞에서 그는 어린아이처럼 울부짖고 맙니다. 알지 못했던 생의 이유를 생의 탄생을 보면서 끝끝내 대면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부터 아이를 원치 않았던 아이의 엄마는 그대로 핏덩이를 둔 채 도망칩니다. 자신이 세상사람들을 '괴물'이라 칭했으면서 정작 자신이 '괴물'같은 짓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자살 시도를 멈추고 건너편 상가 건물로 올라갑니다. 세상 밖으로 힘겹게 나오자마자 혼자가 된, 울고 있는 아기를 그가 조심스럽게 안아듭니다.
바닥의 콘크리트보다도 무뚝뚝한 인간이지만, 적어도 콘크리트보다는 따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씨발, 하고 그는 중얼거린다. 그 외의 다른 말은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 아침이다. 그는 계속 그러고 있을 뿐이다. 다른 아무것도 해줄 생각이 없으면서
하물며 그 인간은
울지 말라고 속삭인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들이미는 넥타이 올가미의 동그란 '문'과 축복받지 못한 생명이 세상밖으로 나오는 자궁의 동그란 '문'. 이 두개의 문이 대면하는 극적인 장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 눈물이 나왔습니다.
하물며. 하물며.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소설 중간중간 등장하는 소제목이기도 합니다.) 라는 콘크리트 같은 물리세계와는 또 다른 [만일. 하물며]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인생의 대부분을 이끌고, 또 인생을 살아가게 합니다. 살아가야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고 해서 살아감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세상에 '엎질러진' 존재이기에 그 이유를 감히 알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우리는 콘크리트보다는 따뜻한 인간이기에,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온기를 주는 '인間'이기에 생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Lauren Treece
로맹가리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한 가지 설명은 있어야 하고 언제나 있을 테지만 모른들 무슨 상관이랴. 과학은 우주를 설명하고, 심리학은 살아있는 존재를 설명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방어하고, 되어가는 대로 몸을 맡기지 않고, 마지막 남은 환상의 조각들을 빼앗기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새들이 페루에 가서 죽는 이유는 알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유도 아직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살아가면서 죽을때까지 찾도록 합시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긴긴 생을 마감하면서 "참 살만한 세상이었다"라고 눈을 감을 날이 올테니까요.
ⓒFrancois Henri Galland
이 작품은 2010년 이상 문학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작가 박민규는 수상소감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즉 살아 있는
답도, 견적도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모두에게
이 영광을 바친다.
살아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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