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모두 타이핑을 해둡니다. 밑줄 긋는 걸 무지 싫어해서 꼭 읽기 전에 포스트잇 한장을 겉표지에 붙여놓고 쪽수를 적어둬요- (밑줄을 그어두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 또 읽었을때 그부분에만 우선 눈이 가서 다른 보석같은 부분들을 놓치기 쉽거든요.)
피츠제럴드의 문장들, 프란츠카프카의 문장들-아니면 하루키나 박민규 작가 등의 문체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은 특히 버릴 구절이 하나도 없어서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 꼭 근사하고 푸짐한 한 상을 먹은 것처럼 배부른 기분입니다.
오늘은 피츠제럴드 단편선을 읽었는데요. 인상깊게 다가왔던 문장들을 함께 공유하고 싶어졌어요-ㅎㅎㅎ 저번 <위대한 개츠비>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문장들도 같이요!
ⓒLeonid Afremov
밤이 깊어갈수록 불빛은 더욱 밝아지고, 이제 오케스트라가 노란 칵테일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오페라 같은 고음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위대한 개츠비>中
ⓒSilvia pelissero
활기 넘치는 물결 같은 그녀의 목소리는 빗속에서 강한 음조로 울렸다. 나는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잠시 동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그 소리를 귀로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푸른 페인트로 주욱 그어 내린 것처럼 젖은 머리카락 한 가닥이 그녀의 뺨으로 흘러내려 있었고, 내가 자동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도와주려고 잡은 손은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위대한 개츠비>中
ⓒSammy Slabbinck
라벤더 속에 소중하게 보관해 놓은 곰팡내 나는 로맨스 말고 금년에 출시된 최신형의 번쩍거리는 자동차 냄새를 풍기는 신선하고 생기 넘치는 로맨스가 있을 것만 같았고, 시들지 않은 꽃들이 춤을 추고 있을 것만 같았다. <위대한 개츠비>中
ⓒEdward Hopper
매혹적인 대도시의 황혼 녘에 때때로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고독감을 느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식당에서 외롭게 맞이하는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리면서 쇼윈도 앞에서 서성이는 가난한 젊은 사무원들, 밤과 삶의 가장 강렬한 순간들을 낭비하며 어스름 속을 헤매는 그 젊은 사무원들에게서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中
그러나 오늘은 일요일이다. 멋지고 느긋한 스물네 시간이 그의 앞에 펼쳐져 있다. 일 분 일 분은 졸린 듯이 뚜렷한 목적 없이 접근해야 할 그 무엇이었으며, 한순간 한순간은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불가능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었다. <광란의 일요일>中
ⓒRyan McGinley
갑자기 그는 ‘방탕’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무엇인가 유를 무로 만들어버리는 것 말이다. <다시 찾아온 바빌론> 中
세상에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의 시간과 그녀의 시간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는 순간, 그는 아무리 영원히 찾아 헤매더라도 잃어버린 4월의 시간은 절대로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팔의 근육이 저려올 때까지 그녀를 꼭 껴안을 수도 있었다. 그녀야말로 갖고 싶은 고귀한 그 무엇으로, 분투해 마침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옛날 어스름 속에서나 산들바람 살랑거리던 밤에 주고받은 그 속삭임은 이제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 갈 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다. <분별 있는 일>中
ⓒLissyelle
“인생이 말이야,” 때때로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나를 냉소주의자로 만들어버렸지 뭐야.” <부잣집 아이> 中
지금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마음에 들었던 그림,사진작품들과 함께 포스팅하면서 느낀건데,
혹시 이 글이 누군가에게 밑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마음이 듭니다. 제가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읽으면서 가장 참을 수 없는게 누군가 얄밉게 그어놓은 밑줄이기 때문이에요-
책에 밑줄쳐있는 부분을 읽는다는 건, 반전영화를 보기 전에 결말을 미리 알아버린 것만큼이나 김빠지는 일입니다. 비록 그 구절은 내가 읽어봐도 인상 깊은 부분일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가 마음 속 깊이 그 부분에 공감하여 인상 깊다고 느낀 것인지, 그어져있는 밑줄이 “이 구절은 좋은 부분!”이라고 일러줘서 그렇게 느낀 것인지 애매해집니다. 책을 읽을 때는 타인의 잣대 없이 오롯이 작가와 나만의 순수한 소통을 원하는 데 밑줄은 그 순도를 떨어트리는 불순물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죠.
그냥, 좋은 사진을 좋은 구절과 함께 봤구나- 하고 쓱 넘어가 주세요. 그리고 꼭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을 직접 찾아서 읽어봐주세요.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딘가에서 빛나고있는 보석같은 부분이 또 새롭게 숨어있을 겁니다.
(그림, 사진 작품 역시 마음에 드는게 있으면 밑에 적어놓은 작가를 검색해 보세요! 분명, 더 근사한 것들이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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