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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Feed-book!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4. 23.

"여행을 하듯 생활하고, 생활하듯 여행하라"


알랭드 보통이 자신의 딸에게 늘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여행의 기술>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에요. 철학, 심리학, 사회학은 물론 건축, 종교 분야까지 다방면으로 박식한 그가 세상을 보는 통찰력은 정말이지 놀랍고 또 부럽습니다. 또 그것을 표현하는 재치있는 말솜씨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적절한 표현력은 그의 책을 집음과 동시에 부동의 자세로 완독하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죠.

 






이 책을 집 앞 카페에서 읽었습니다. 저희 동네에는 올림픽공원이 있는데요. 공원 안 '평화의 전당'이 바로 보이는 동네 카페에서 이 책을 아주 감명깊게 읽고 집에 가려고 나왔을 때, 평화의 전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인들, 그리고 꽤 무거워보이는 DSLR카메라까지 들고 나와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본 순간. 저는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동네 주민인 저는 늘 보던 올림픽공원이기에 그곳의 가치를 언제부턴가 잊고 있었던 겁니다. ( 88올림픽이 행해졌던 곳인데, 지금도 보존이 아주 잘되어 있어서 88호수평화의 전당 이런데가 정말 예쁘거든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을 하듯 생활하라"는 말이 이것이라는 걸 갑자기 깨닫게 되었어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거죠. 제가 그토록 가보고 싶은 파리의 에펠탑을,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내가 평화의 전당을 매일 보는 그 심심한 기분으로 보겠구나 생각하니 어느 하나도 소중하게, 새로운 시각으로 보지 않아서는 안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의 기술>은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그동안 다닌 여행지를 챕터별로 하나하나 제시하며 그 곳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엮은 것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여행의 가치를 두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수 있었어요.

 우선, 여행은 새로운 장소를 간다는 점에서 새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합니다.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에서 더 잘 일어납니다. 익숙함, 따분함 속에서는 창의성이 발휘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낯익은 장소에서도 신선함을 느낄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ㅎㅎㅎ 보통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는 뇌가 굳어가는 것 같아요.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거 같아요-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합니다- 

게다가 여행 중 이동시간에, 소위 '멍때리는' 그 시간에는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사고를 가능하게 하죠


"해야 할 일이 오직 생각 뿐일때는 정신은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같다. (...) 음악이나 풍경은 이런 부분이 잠시 한눈을 팔

ⓒEdward Hopper

도록 유도한다모든 운송수단 가운데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마 기차일 것이다. 배나 비행기에서 보는 풍경은 단조로워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열차에서 보는 풍경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 열차 밖의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두번째 여행의 가치는 '숭고한 정신의 고양'이라는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을 다닌 곳은 섬나라 휴양지나 유명한 관광도시만이 아니었어요. 인간의 발길이 드문 오지에서 그는 여행의 가치를 발견하죠

특히 아주 큰 산이라든가, 아주 넓은 바다 이런데서 우리는 인간의 유한성을 느낍니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책을 쓸 정도로 신학에 일가견있는 보통은 이 책에서도 역시 자연의 광활함 밑에서 느끼는 인간의 하찮음을 이야기하며 종교의 존재를 암시합니다. 인간의 사멸성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겸손해지고 , 일상에서 힘들고 지치는 일이 있더라도 "하찮은 우리는 미처 알지 못하는 신의 섭리가 숨겨져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위로를 얻게 되는 것이죠. 



미국 낭만주의 '비어스타트'의 그림 - 자연의 무한함을 보면서 우리는 유한함과 불완전함을 느낍니다.

"일이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놀라지 마라. 우주는 너보다 더 크다. 일이 네 뜻대로 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놀라지 마라. 너는 우주의 논리를 헤아릴 수 없다. 산 옆에 있으면서 네가 얼마나 작은지 보아라. 너보다 큰 것,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여라. 세상이 너한테는 비논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그 자체로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삶이 모든 것의 척도는 아니다. 숭고한 곳들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하찮음과 연약함을 생각하도록 하라."

 

예전에 짧은 산문집을 읽으면서 기억해두었던 말이 있습니다. "여행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고 흐름의 문제라고. 삶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 여행이라" 는. 

이 말을 새삼 머릿속에 떠올려보면서 여행은 비싼 돈을 들여서 호화로운 눈구경을 하는 것만으로 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의 기술>에서 자신의 방을 여행하며 차근차근 탐구했던 어떤 작가가 있었듯이, 일상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사고를 위한 여정. 그것이 여행이라는 결론을 스스로 내려봅니다. 


“이 수많은 풍경들이 내 마음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지금 이 순간, 내 평생 단하루도 이 이미지들로부터 행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큰 기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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