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자살 중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983년 6.8%에서 2003년에는 25.2%로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4년 기준 국내 노인 자살률은 OECD 30개 국가 중 가장 높다."
이 삭막한 기사글에는 얼마나 깊은 상처와 아픔이 숨겨져 있을까요-
'누런 강 배 한 척'은 그 감당못할 절망의 감정을 세밀한 시선으로 풀어낸 짧은 소설입니다.
ⓒNuria Riaza
고속으로 발전해갔던 사회, 그 속에서 같이 가속도가 붙은듯 정신없는 젊은 나날을 보냈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식솔을 건사하고 아비노릇했다 자기위안할 정도로의 책임은 다했다만, 야망이 있어서 남들의 배의 노력을 한 인생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 영업직인 탓에 접대가 많은 일이라 직업여성과 나눈 하룻밤'들'이 있었고 딴살림을 차려 심각한 상황까지 갈 정도로 아내의 속을 썩였었던 남자지만 지금 치매에 걸린 아내를 정성스레 간호하며 지난날에 대한 마땅한 벌이라고 생각하는 일말의 양심은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입니다.
학생시절부터 따르던 선배의 도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렇게 29년을 한 회사에 몸바쳤지만 사장의 배신으로 결국 쉰 하고도 여덟이라는, 짧다면 짧고 많다면 많은 애매한 나이에 퇴직을 당하게 되죠- 이십구년이란 세월의 느낌에 비해, 퇴임식은 지극히 간소하고, 간략했습니다. 십분도 지나지 않아 식을 마치고 쫓겨나듯 서둘러 나오면서 그는 생각합니다.
이십구년을 가득 땀 흘렸거만, 그렇다. 과연 내인생은 무엇이었나?
이상한 일이지만, 그러나 큰 불만은 없다. 세상은 참 많은 일들이 있는 곳이고, 어떻게든 나도 그 속에서 밥을 먹고 살았다. 살아, 온 것이다. 미워할 것도, 원망할 일도 없는 그런 인생이다. 월급을 받았고 정해진 액수의 퇴직금을 받았다. 그걸로 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가족을 책임지는 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예컨대 다행히도, 살아왔다 할 수 있는 인생이다. 터벅터벅, 전철역에서 아들네로 이어진 이 골목이 오늘따라 좁고, 아득하다.
ⓒFrancesco Romoli
그렇게 살아 온 인생이었지만 그는 더 이상 삶의 의미를, 목적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한 때 나에게 메달을 안겨주었던, 그리고 이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이끌어주었던 하늘같았던 선배는 2년만에 연락이 와서는 '흔한 중국산이 아니고 백 프로 토종' 가시오가피를 파는 외판원이 되어있었고, 꾸역꾸역 사업을 해보겠다는 아들에게 대준 밑천은 그 스스로에게는 대단한 도움이라고 여겼었지만 어쩐지 아들네는 당연한 도움을 받았다는 눈치였습니다. 그나마 여러모로 보람을 안겨주었던 딸은 간만에 전화가 와서는 삼천만원이 필요하다고 울먹입니다. 그는 더이상 하루하루를 이렇게 버티듯 살고싶진 않다고 느낍니다.
이제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며 삼십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소하고 뻔한,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를 똑같은 속도로 더디게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알고 나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몰라서 고생을 견디고, 몰라서 사랑을 하고, 몰라서 자식에 연연하고, 몰라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결국 그는 수면제를 하나씩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합니다. 삼십년을 일해서 산 집을 보름만에 팔아버려 딸에게 마지막 애비노릇을 하고 남은 돈으로는 치매걸린 아내와 마지막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을 가기전에는 백화점에 가서 닥치는 대로 옷을 골라 아내의 품에 안겨주었습니다. "그 옷을 입고 아내는 소녀처럼 기뻐했다. 소년처럼, 나는 눈물이 나왔다."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저도 어쩐지 눈언저리가 시큰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누런 강을 건너는 배 한척처럼, 황사 낀 봄날 먼지처럼 사라집니다.
ⓒPakayla Biehn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운을 떼는 유명한 시가 있었나요.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유지했다" 라는 이 시의 중간 부분에서 왜 꽃피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는지 알것만 같습니다. 나에게는 필 꽃이 없는데 하다못해 꽃을 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꽃같이 화사하니까- 그래도 겨울에는 다들 추운 나날이겠거니 했지만 그 망각의 시간이 끝난 봄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낯설고 또 외로운 계절이겠지요-
의무소방원으로 근무중인 선배가 얼마전, 한창 벚꽃이 만발하던 나날 중 하루였던 어느 날 "요즘 자살사건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들에게 4월은 너무나 사무치게 잔인한 달이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하오(下午)의 뒷자석엔 취객같은 봄볕이 합승해 있었다. ... 인간의 부피만큼 또 봄볕이 자리를 차지한다" 라는 소설의 앞부분에서 잔인한 봄의 분위기가 스며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봄날, 그 마음을 위로해줄 단 한마디만 있었더라도 그가 봄날 먼지처럼 사라지진 않았었을 텐데요. 참 쓸쓸한 소설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실은 누구라도,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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