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마라.”
성경에 등장하는 십계명 중 제 2계명입니다. 우상(偶像)이란,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하나님 이외에 인위적으로 만든 신의 형상’이라는 부정적 의미로도 볼 수 있죠. 전상국의 소설 <우상의 눈물>에서의 ‘우상’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아이들의 숭배의 대상은 ‘기표’라고 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두 번이나 유급한 학교의 문제아입니다. 게다가 ‘재수파’라는, 보이진 않지만 강력한 어떤 무형의 무리의 우두머리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에게는 끔찍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죠. 그에게 악은 '선천적인 본능'입니다. ‘순수’라는 단어와 ‘악’이라는 단어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 모순적이지만, 기표는 말 그대로 순수하고 원초적인 악의 인물입니다. 아이들이 이런 기표를 일종의 우상으로 여기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듯 합니다.
악의 밑바닥에 어떤 숨겨진 목표나 별다른 의도 없이 순수악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은 왜인지 순수선의 상징인 신, 혹은 세계평화와 지구의 안위가 생의 목적인 슈퍼맨, 배트맨 등의 영화 속 영웅을 닮았습니다. 아이들은 맹목적인 그의 악행에 오히려 약간의 동경을 보이고 그 '순수악'에 다가가고자 하는, 그에게 지배당하고 싶어 하는 마조히스트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Aliza Razell
순수선과 순수악은 손 뒤집듯 쉽게 변하는, 너무나도 닮은 성질인 것입니다.
형우와 담임선생은 ‘자신 이외에 인위적으로 만든 신의 형상’에 대해 분노하는 신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형우와 담임선생은 신의 자리에 오르려는, 신처럼 돋보이려는 자신의 의도를 숨긴 채 기표의 그것과는 또다른 폭력, 합법적이고 정신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랑’,‘의리’라는 이데올로기로 순수선의 자리에 앉고자 하지만, 이는 사실 아이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위선적인 무기일 뿐이죠.
ⓒAliza Razell
신이 매우 거북하게 생각하는 악마란 바로 네가 말한 놈처럼 착함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런 순수한 악마지. 그러한 순수한 악마만이 신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에 신은 마음속으로 괴로운 거야. 그렇기 때문에 신은 결코 악마를 영원히 추방하지 않아. 항상 곁에 두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일에 그것을 이용할 뿐이야.
ⓒAlyson Shotz
그들은 “자율”이라는 말로 학생들을 타율적으로 만들고 “우리”라는 울타리를 치면서 우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는 기표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웁니다.
이 소설의 '나'인 서술자이름이 ‘유대’인 것도 어쩌면 작가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기표와 담임선생. 그 양 극단에서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는 유대를 서술자로 두어서 예수를 팔아넘긴, 선과 악 아무것에도 관심 없는 성경 인물 유다를 연상시키게 하는 것이죠.
ⓒLara Zankoul
<우상의 눈물>속 순수선은 결국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습니다. 순수선으로 가장하는 위선적인 ‘필요악’이 있을 뿐. 소설에서 순수악에 대항하는 것은 순수선이 아닌, 필요악이었던 것입니다.
“악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악을 위한 악이다.”라는 말이 있듯, ‘악을 위한 악’인 형우와 담임선생은 치밀하고 계획적인 정신적 폭력으로 결국 아이들에게 ‘우상의 눈물(우상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디엔가는 있겠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 순수선의 존재의 희미함에 씁쓸함을 갖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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