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주인공 와타나베와 같은 기숙사를 쓰는 선배 나가사와 라는 인물이 나오죠.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와 될수 있다고 말하는-
오늘, 비로소 그와 친구가 될 자격이 생겼어요. 세번째 읽는 위대한 개츠비!
사실, 처음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실망스러운 점이 많았어요.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완벽에 가까운' 등의 거창한 수식어를 많이 보유한 작품이라기엔 다소 밋밋한 줄거리, 이해할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행동들, 모호한 주제...
하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있는, 그래서 옆에 두고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같은, <위대한 개츠비>는 그런 책입니다.
<위대한 개츠비>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아마 서술자이면서 동시에 작중 인물인 닉 캐러웨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인거 같아요. 1920년대 미국의, 제 1차 세계대전 직후 방향감각을 잃은 당시 젊은이들, 그리고 그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타락한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닉 캐러웨이만이 잃지않고 있는 도덕적 민감성은 주인공 개츠비를 더 돋보이게 해요.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잠시나마 인간의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이용한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다. 11
데이지라는 이상과 환상-어쩌면 데이지가 속한 상류사회에 대한 이상과 환상이 더 맞는 표현일까요-을 위해 발버둥쳤던 가엾은 개츠비를 이용한, 환락과 쾌락을 찾아 헤메는 젊은이들. 그들을 더러운 먼지라고 일컫는 사람은 닉밖에 없었어요. 비록 그의 이상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그 꿈을 성취시키기 위한 헌신적 노력은 톰과 데이지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과 비교해볼때 차라리 숭고하게까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는 개츠비에게 “그 인간들은 썩어빠진 족속이오.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라고 말했던 것이고 <‘위대한’ 개츠비> 라는 제목의 글을 써내려간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피츠제럴드는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삶에서 이상과 환상을 가지는 것에서 생의 비결이 있음을 말합니다. 개츠비에게 부조리한 세계에서 삶을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오직 이상과 환상 뿐이에요. 개츠비가 매일밤 바라보는, 데이지네 집을 비추는 '초록색 불빛'은 이 환상을 상징합니다. 그는 질퍽하고 누추한 대지보다는 천상의 아름다운 별빛을 좇는 인물인 것이죠. 이 환상은 그의 머릿속에서 미화된 과거와 그 과거속의 여인을 되돌리고자 하지만 결국 도를 넘은 낭만주의는 그를 파멸의 길로 이끌고 말았습니다.
개츠비를 읽으면서 저번주 쯤에 본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사치와 향락, 그 속의 공허함이 느껴지는 분위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 영화 속 주인공 ‘무슈 구스타프’ 역시 이상적 낭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어요.
영화<그랜드부다페스트>中
영화 마지막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그는 자기 환상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꽤 전에 티비에서 “정신차려, 이 각박한 세상속에서”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던가요.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꿈꿔, 이 각박한 세상속에서”
하지만 꿈과 환상에의 과도한 동경은 야망을 낳고, 결국은 자멸의 길로 간다는 메시지 역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위대한 개츠비>의 모호하지만 매력있는 점입니다. (작품의 주제를 종잡을 수 없었던것도 여기에 있었던 듯 해요.)
사실 글을 읽다보면 견딜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매일 밤 유명인사들과 신흥부자들이 드나드는 웨스트에그에 있는 개츠비의 집.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지만, 정작 맘놓고 즐기는 사람은 몇 없는 그곳. 누구를 위하여 매일밤 파티는 치러지는 것일까요.
영화<위대한개츠비>中
그녀는 브로드웨이가 롱아일랜드의 한 어촌에 만들어놓은 이 전례없는 ‘지역’인 웨스트에그에 두려움을 느꼈다. 낡은 미사여구 때문에 짜증나는 투박스러운 활기, 그리고 그곳 주민을 지름길을 따라 무(無)에서 무(無)로 몰고 가는, 너무나 강요하는 듯한 운명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바로 그 단순함에서 무서운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155
나는 정작 즐겁지 않은데 나빼고 다 너무나도 유쾌해보이는, 붕 뜬 듯한 그 분위기만큼 고독스러운 때가 또 있을까요.
이런 불편한 감정은 솔직한 작가들에 의해 많은 작품으로 승화됩니다. 우선 대도시 속 공허함을 그린 미국현대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들 수 있겠구요.
2013년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도 이런 고독한 분위기를 순간순간 잘 표현해서 절 아주 불편하게 했었더랬죠. 물론 이 영화는 대도시 속 현대인의 공허함을 표현한건 아니구요.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교사의 꿈을 가진 문학소녀 ‘아델’이 개방적인 가정에서 아주 개방적인 연애를 하는 미대생 ‘엠마’의 세계를 동경하는 모습이 꼭 그것과 비슷했어요. 준거집단의 구성원이 되고 싶은, 어색하게 웃는 아델의 서글픈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를 단순히 성소수자 옹호 영화라고 볼 수는 없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가장따뜻한색,블루>中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엠마를 닮은 푸른 옷을 입고 사라지는 아델
<상실의 시대>속 나가사와 선배가 왜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것같네요. “그녀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에게 그 아가씨가 ‘품위는 없지만 얼굴은 예쁘다’고 말했다.”라는 구절에서 왜 ‘얼굴은 예쁘지만 품위가 없다’가 아닌 ‘품위는 없지만 얼굴은 예쁘다’라고 썼는지는, 한 세 번쯤은 읽어야 눈에 들어오는 것같습니다. 참.. 문학은 찌르면 피날 정도로 예민하고 섬세한 세계인거같아요. ㅎㅎ 마치 산문시를 읽고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비평문에 공감하려면 언젠가 원문에 도전해봐야겠어요:)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로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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