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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Feed-book!

헤르만 헤세 데미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31.

초등학생 때 읽고 다시 집어든 데미안. 여기저기 접혀있던 페이지를 보니 어린나이에 꽤나 힘들게 꾸역꾸역 읽었었나봅니다. ㅋㅋㅋ  책을 훑어보고 지루하면 과감하게 읽기를 포기하라는, <풀잎은 노래한다>의 작가 도리스 레싱의 조언이 떠올라요. 20대 혹은 30대 때 읽히지 않던 작품이라도 마흔 살이나 쉰 살이 되서 다시 펼쳤을 때 나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많이 따르는 선배의 추천으로 다시 읽은 <데미안>은, 오늘 저에게 그렇게 새로운 세계로 다가왔습니다. 

ⓒRobby Cavanaugh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많은 유명한 작가들과 사회가 인정하는 성공한 사람들은 솔직하지 못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을 하라고 합니다. 그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짜장면 주문하듯, 그렇게 쉽게 말하는 그들을 보면 자기마음을 자기도 잘 모르겠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 이르는 길’은 어렵고 또 어두운 길입니다. 새가 알을 깨고나오는, 무너짐과 투쟁의 과정입니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대, 부모님의 관심. 뭐 이런 것들을요. 싱클레어가 처음에 데미안의 호의를 받고도 멀리하는 이유도 그런 ‘밝은 세계’에서만 머물고 싶은 욕망에서였습니다. 그는 데미안을 ‘또 하나의 악하고 나쁜 세계와 나를 묶어주는 유혹자’라고 생각했습니다.  

ⓒKumi Yamashita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라고 여겼던 것들(앞에서 말한 기대와 관심들)은 또한 동시에 나를 가두는 담벼락이라는 것. 그것을 인정하는 자립의 순간은 고독합니다.    










하지만 그 고독의 순간을 견디지 못하면 남들이 원하는 인생으로밖에 살아가지 못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적용하면 초자아의 지배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건강하고 성숙한 인간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해야 합니다.  


ⓒHugh Kretschmer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누구든 출생의 잔재, 시원(始原)의 점액과 알 껍질을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더러는 결코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에 그치고 말며, 도마뱀에, 개미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더러는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채로 남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인간이 되라고 기원하며 자연이 던진 돌인 것이다. 9 





<데미안>은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과정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책입니다. 싱클레어는 결국 마지막에는 “나 자신의 모습이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완전히 닮아 있다며 데미안과 자신이 거의 하나가 됨을 고백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데미안>의 마지막 장의 이름이 ‘종말의 시작’이며, 싱클레어가 폭탄을 맞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이에요. 종말은 또 다른 시작임을, 그 어떤 새로운 것도 죽음 없이 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헤르만헤세는 역설합니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에 쓰이고,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19년에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당시 이미 유명해진 헤르만 헤세가 작품성만으로 평가받아보고 싶어서였죠. 물론 이 유령작가는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폰타네상의 수상자로 지명되었구요.) 

인간의 목숨이 총알 하나로 무더기로 소멸되는 전쟁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려고 힘껏 노력한다.”는 그의 말에는 인간존재에 대한 절실함이 더욱 배어 있습니다. 또한 세계의 중요한 흐름의 획이 우리를 스쳐가지 않는다는 것에, 그것이 지금 우리의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간다는 것에 감격하는 싱클레어의 모습에서는 개인적 성찰을 넘어선, 시대에 대한 사명감도 읽을 수 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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