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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여행이 나에게 남긴 것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29.

 한 선배가 어린 친구들에게 조언한 바가 있습니다. 대학생때 이 세 가지는 꼭 해보라고요. 그 중 두 가지가 독서와 여행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장난처럼 말하길, 해외여행만큼 돈을 빠르게 소진시킬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비행기 표 값이 백만원은 거뜬히 넘다보니 학생들에게는 분명 부담스러운 가격이겠지요.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보다는 그 돈으로 다른 무언가를 해볼까.. 생각도 한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불쑥 떠나게 된 여행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똑같이 이야기해보게 되었습니다. 꼭 여행을 많이 떠나보라고요. 물론 경험의 양과 사람의 성숙이 완전히 같은 성질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경험이 많아도 미성숙한 행동을 하는 것은, 경험으로 인격적 성숙이 완전히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의 여행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자 합니다.

실연때문에, 어쩌면 반은 홧김에 친구의 유럽여행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지만 그런 예쁜 건물들도, 맛있는 음식들도 몇 주가 지나자 결국 별로 특별하게만 느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여행을 떠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었을 소중한 가르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기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반복적이고, 같은 배경에서 이루어집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건 등을 마주하게는 되지만 비슷비슷한 배경 속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나는 그 배경 속에서 쑥 뽑혀나가, 완전히 새로운 배경에 놓이게 됩니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 다른 언어와 다른 경관 속에 놓이게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일상에서는 늘 날 알아온 주변의 시선, 나의 (흑)역사, 평가 등과 함께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곳에 놓이는 순간 나는 이방인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에 대한 평가는 한정적입니다. 내 역사는 그 순간만큼은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지워진 것이 되지요. 이 만으로도 내 생각은 이전보다 자유로워 집니다. 가끔 내 판단에 확신이 없을 때, 주변의 시선에 지칠 때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저를 배경으로부터 뽑아 완전히 다른 곳에 갖다 놓는 것이죠. 이는 나의 판단을 다시 한 번 자유롭게 합니다. 또한 나를 가두는 것은 판단이나 선택만이 아닙니다. 감정이 있죠. 저에게 가장 큰 감옥 중 하나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감옥은 나쁜 의미만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고 있는 측면을 의미합니다. 나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감정이죠. 하지만 이 순간적인 감정이 내 맘같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순간적으로 욱하고 화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판단은 이게 화를 낼 상황이 아니라고 말함에도, 순간 자존심때문에, 내 다른 관련있는 기억때문에 상대방에게 무례해질까봐 조마조마합니다. 그럴 때면 나를 멀리 띄어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이 사람과의 관계를 나는 십년 뒤에, 혹은 내가 만약에 지금 사막 한 가운데 있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보다 순간의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됩니다. 순간은 상대방에게 져주는 것이 치욕같겠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그렇게 대처한 것만이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얻으려고 할 수록 멀어지는 것

 처음 떠나는 여행인 만큼, 여행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어떤 가르침이던지, 깨달음이라던지 특별한 것이 여행을 통해 얻어질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여행은 막바지에 닿아가는데, 스스로가 어떤 변화도 느껴지지 못함에 괴로워했습니다.아마 프라하에서였을 것입니다. 여행지에서도 무언가를 얻지 못했다는 마음에 허무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기대를 많이 했던 프라하인데 그저 관광지 같은 느낌에 실망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성수기의 프라하는 그냥 걸어다녀도 한국어가 들립니다.) 그래서 힘없이 걷다가 심지어 여행지에서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보니 작은 동네가 나왔습니다. 그곳도 프라하겠죠. 같은 지역이겠지만,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크고 특별한 것은 없지만 체코의 아파트를 볼 수 있었고, 동네 사람들로 가득한 빵집(맛은 없었지만), 우체국 등등. 지금까지의 여행지와는 다른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블타바 강 위의 뻥 뚫린 하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유는 얻으려고 할수록 멀어졌던 것입니다. 여유는, 이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겠다!는 결심이 또 독촉하는 마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애쓰기보다 이 순간을 즐기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여행은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즐기며 다닐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시선

 오스트리아 빈에는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가 있습니다. 훈데르트 바서는 직선으로 이루어진 자연을 파괴하는 건축물이 아닌 곡선을 추구하는 건축가입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아마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이러한 건축물들 중에 화장실도 있었는데, 별 것도 아닌데 입장료도 더 받고 특별하게 느끼도록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든 생각이, 왜 내 주변의 수많은 장소들은 그런 특별한 시선으로 보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라하의 카를교도 내가 매일 출퇴근하며 본 한강 위의 야경과 무엇이 그렇게 달랐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곳들에도 여행사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도 여행을 떠납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내가 사는 곳으로 여행을 오기도 합니다. 이처럼 온전히 그 장소가 특별함을 가진 것이 아니라, 내가 여행자로서 바라볼때 그 장소가 특별함을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돌아온 뒤, 아직도 짜증을 내며 매일 서울로 나가지만 한강 위의 야경을 볼 때마다 그때의 특별한 시선, 이 곳에 여행 온 사람으로서의 기쁨을 다시 되새겨봅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여행들을 시도해 보았으나 마지막에 정작 떠나지 못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떠나려고만 했다면 가능했을텐데, 겁이 나서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닌지 자문해봅니다. 정말 간절하게 원했다면 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이렇게 겁이 나서 도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두려움을 떨쳐내고 다시 떠나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여행 또한 떠나기전엔 너무나 두려웠지만 정작 떠나고 나서는, 돌아와서는 소중한 기억만을 선물받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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