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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게으름과 행복의 관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28.

얼핏 보면, 게으름은 행복과 깊은 정적 관계가 있어보입니다. 부지런을 떨며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지금의 행복'을 유보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순간순간 오늘 하루의 만족감에 가장 큰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이 게으름입니다. 오늘 하루에도 무언가를 해내겠다!고 자신을 착취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간단한 예를 한 가지 보이겠습니다.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면 참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놈의 게으름! 게으름 때문에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게 되고, 결국 집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간을 보내다가 후회하게 됩니다.

 

 

게으름이란 무엇인가

 게으름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을 해야겠습니다. (문요한, 굿바이 게으름 에서 참고)

선택의 회피: 당장의 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미루고 회피하는 것
시작의 지연: 일을 계획하기는 쉽지만 정작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완전한 준비를 하겠다며 매달리다가 정작 시작을 못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난 아직 준비가 덜 됐어!라며 영어 시험 공부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저와 비슷한 모습이네요..
딴 짓하기: 눈 앞에 닥친 당장 중요한 문제는 외면하고 다른 것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포기하고 아무일도 하지 않기: 일명 "에라 모르겠다!"입니다. 그저 포기하고 하루하루를 없어지는 시간으로 소비해버리는 것입니다.
서두름: 이는 일을 미리미리 끝내놓는 것이 아니라 막판에 일의 마감에 앞서 서두르는 것을 말합니다. 시험 전 날 서둘러 밤을 새서 책을 한 번 읽는 대학생의 시험기간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즉각적인 만족 추구, 중독: 중독이란 내가 원하게 되는데 그 일이 행복감이 아니라 괴로움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의 스마트폰 중독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이 제게 행복감이 아니라 괴로움(+불면증)을 주게 되는데, 자꾸만 쉴 새없이 눈과 손이 가는 것이죠. 당장 일어나서 나가야하는데 아침에 스마트폰을 보고 있게 되면, 당장의 만족감은 될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나  이 또한 저자는 게으름의 일종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게으름의 정의에 있어 저자는 능동적인 게으름과 수동적인 게으름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수동적인 게으름입니다. 러셀과 같은 철학자가 쓴 <게으름의 즐거움>은 스스로 선택한 게으름이라는 것입니다. 선택하여 재충전을 위한, 여유를 위한 휴식을 갖는 것입니다. 반면 수동적인 게으름은 무엇을 해야할지 선택하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비어있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부자가 어부가 야자수 아래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자는 어부에게 물었습니다.
이 시간에 왜 더 일을 하지 않느냐고요.
부자: 왜 고기를 더 잡지 않습니까?
어부: 오늘은 충분히 잡았습니다.
부자: 더 잡을 수 있지 않습니까?
어부: 왜 더 잡아야합니까?
부자: 더 잡아서 더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더 큰 보트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어부: 더 큰 보트로 무엇을 합니까?
부자: 더 큰 보트가 있으면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고기를 잡으면 당신도 나처럼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부: 왜 당신과 부자가 되어야 합니까?
부자: 한가한 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부: 제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드런트 러셀


 또한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은 노동에만 매진하는 시간을 제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러셀은 그러한 '게으름'이 모든 학문과 과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 게으름은 우리가 경계하고자 하는 게으름과는 다릅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인들이 노동에 시간을 보내기보다 생각에 매진하여 철학을 발전시킨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만약에 인간이 그저 생존에 필요한 물품만을 생산해내고 번식하는 물질대사만을 위한 생물이 된다면,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겠죠. 하지만 저러한 게으름이 있기에, 인간은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또한 희망 없음, 무성취감은 게으름과 우울함의 교집합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적절한 성취감 등을 통해 자존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쓰레기같이 보냈어!!"라는 생각과 행복감은 공존하기 힘들죠.

저자는 또한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지 못하는 삶이 게으른 삶이라고 말합니다. 작고 사소한 눈 앞에 보이는 게으름에는 사람들이 집중하지만, 전체적인 삶의 방향성에는 (큰 게으름)크게 눈길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보통 요즘은 그런 '바쁜 게으름뱅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정신없이 바쁘지만, 내 삶의 방향성은 모르는 것이죠. 결코 게으름이 느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게으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먼저 게으름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 게으름을 더 이상 불가피한 것으로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게으르게 보내고 있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게으름에서 벗어나 삶의 커다란 방향성을 정합니다. 물론 이는 당장에 결정되는 것이 아닌, 서서히 만들어나가는 것이지요. 하루의 방향성부터 시작해도 좋겠습니다.
또한 자신을 성장시키지 않는 단순한 반복을 경계하고(아 내 스마트폰..) 최고의 효율성은 몰입에서 나오는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매우 게으른 편이라고 생각되는데(미루기, 서두름, 중독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심지어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즐거운 것만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고통스럽고 스트레스 받고 힘든 일도 많습니다.)은 미리미리 시작합니다.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일할 자신이 있습니다.(결코 이것이 경제적인 보상을 주지 않지만) 이러한 몰입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이처럼 좋아하는 일,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성취감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작은 성취감들이 퍼즐처럼 내 삶의 방향성을 구성하고, 게으른 삶을 떠나 적극적으로 '내가 살아가는' 삶을 만들어줄테니까요.

 

"게으름은 쇠붙이의 녹과 같다. 노동보다도 심신을 소모시킨다." -프랭클린

발레리나 강수진과의 인터뷰를 첨부합니다. 사진도 있으니 링크를 통해 보실 것을 추천드려요.
출처: https://www.facebook.com/jongwon.kim.752

(혹시 안들어가질까봐 텍스트로 옮겨둡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발레리나 강수진과 저녁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다.
 "오늘 발레단에서 연습은 잘 하셨어요?"
그녀는 특유의 밝은 미소로 이렇게 답했다.
 "네! 오늘도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답을 듣고 순간 고민에 빠졌다.
 '다리를 뻗고 잔다고?' 그게 무슨 의미지? 연습을 잘했느냐고 물었는데,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 보통 사람들은 나쁜 짓을 안 했다는 의미로,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겠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녀를 2주 동안 지켜보며, 비로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두 발을 쭉 뻗고 잘 수 있겠다고 말한 이유는, 그녀의 보통의 하루에 있었다.
그녀를 인터뷰하며 가장 자주 들었던 단어는 바로 '보통'이다.
 '어떻게 5개 국어를 하세요? 비결이 뭔가요?'
 '어떻게 20년이 넘게 하루에 18시간을 연습할 수 있죠?'
 '어떻게 늘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할 수 있죠?'
그녀는 이 모든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보통'이에요.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요?'
우리는 단 하루도 그렇게 살기 힘든 날을 그녀는 그저 보통의 하루 수준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이 엄청난 특별한 나날을 '보통의 하루'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엄청난 내일을 꿈꾸지 않았어요, 그저 이렇게 보통의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아주 특별한 날이 나를 찾아 오더라고요."

그녀는 늘 치열하게 자신의 오늘을 살았기에, 자신이 보낸 오늘을 믿기에 두 발 뻗고 푹 잘 수 있었던 것이다.
내일 엄청나게 큰 공연이 있어도,
내일 전혀 새로운 곳에서 공연이 있어도,
내일 몸이 약간 아플 것 같아도,
그녀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자신이 보낸 오늘 하루에 자신 있기 때문이다.

괴테는 무려 200년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세상에서는 정도를 걸으려 하지 않는 자는 금방 그 정체가 드러난다네. 이제 대중을 희롱하거나 미혹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어."

그녀가 20년 이상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하루를 충실하게 보낸 데 있었다. 그녀는 테크닉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빠르게 회전하는 발레리나의 테크닉을 좋아해요, 하지만 관객은 빠르게 회전하는 발레리나에게 길어야 3초 정도 밖에 눈길을 주지 않아요. 중요한 건 테크닉이 아니라, 마음이에요. 뜨거운 가슴이에요. 관객은 놀랍게도 그걸 알아요."
결국 그녀는 화려한 연기가 아니라, 충실하게 보낸 자신의 하루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하루 하루를 뜨겁게 보내겠다는 그녀의 다짐과 열정이 관객에게 전해져 감동이 탄생되는 것이다.

 '오늘'이란 너무 평범한 날인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1년 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 지 알고 있는가? 그런데 어찌 10년 후를 예상하며 계획을 세우겠는가. 발레리나 강수진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무엇이든 부딪혀보고 깨치며 경험해야 한다. 그 경험이 알 수 없는 10년 후의 계획보다 훌륭하게 당신을 돌봐 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나를 돌봐주는 건 10년 후의 계획이 아닌 지난 10년 동안 깨지고 실패한 경험이었다.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막연한 계획은 막연한 미래를 만들 뿐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30대 이상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자신의 삶이 막연하다고 말하는 이유 역시 그때문이다.
어떤 일에 미쳐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땀 흘리지 않고 얻는 행운을 바라서는 안 된다. 성공은 내일 죽을 것처럼 준비하고 노력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괴테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시간이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지 말라. 게을리 걸어도 결국 목적지에 도달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하루하루 전력을 다하지 않고서는 그 날의 보람은 없을 것이며, 동시에 당신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할 것이다."

이제 잠들기전, 당신의 입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란다.
 "네! 오늘도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2013년 5월 28일 김종원-
 

참고 및 관련도서

-문요한, 굿바이 게으름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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