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영웅이 평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곤경에 빠진 여주인공을 구해주는 슈퍼맨이나 악당과 싸워 세상을 구하는 비밀조직의 요원들처럼요. 아직도 그런 소재는 인기가 많습니다만, 저는 이러한 영웅들은 '좋은 보상과 대가를 받은 행위'를 한 것뿐으로 비춰진다고 생각합니다. 일명 '권선징악'으로서 보상을 받은 것이지요.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선'이란 무엇인가도 애매할 뿐만 아니라 (선한 것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행동들도 있지만 : 희생, 도움, 배려 등) 그 보상관계 또한 애매합니다.
훗날 옳다고 판명되더라도 그 행위가 당시에는 박해받을 수 있고(이전에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운동 등), 또한 대부분의 선한 행동은 보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가 이전에 선함, 사랑 등을 설법할 때는 격려가 아니라 많은 박해를 받았던 것 처럼요.
*
사실 진정한 영웅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구했을 지도 모릅니다. 어떠한 명예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우리 주변에서 잊혀졌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상상과 관련된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입니다.
줄거리(시놉시스):
젊은 시절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문학비평가로 활동했던 알렉산더는 노년에 접어들어 시골에서 말 못하는 어린 아들 고센과 조용히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알렉산더의 생일에 맞추어 아델라이드, 빅토르 부부와 그의 딸 줄리아, 그리고 알렉산더의 친구 오토가 그의 집을 찾아온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에서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리고 텔레비전에서는 전쟁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혼란과 슬픔에 빠져 오열하거나 기도를 올리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한편, 오토는 알렉산더에게 그의 가정부인 마리아와 동침을 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인다면 이 모든 시련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고민하던 알렉산더는 집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 몰래 집을 빠져나와 마리아를 찾아가 그녀를 설득한 다음 그녀와 동침한다.
다음날, 세상은 다시 평온을 되찾은 듯 보이고 지난밤, 알렉산더가 마리아와 만났던 일은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잠에서 깨어난 알렉산더는 집 안을 정리하고 나와 집에 불을 질러 모든 것들을 태우기 시작한다. 알렉산더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친구들은 그를 앰뷸런스에 태워 어디론가 실어가고, 고센은 혼자 남아 알렉산더가 물을 주던 그 나무에 물을 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희생 [Offret, The Sacrifice] (세계영화작품사전 : 구원을 갈구하는 영화, 씨네21)
진정한 희생이란 어떠한 명예도 물질적 보상도 없는 희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인 알렉산더는, 단순히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그 어떤 명예도 보상으로 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불태웁니다. 이러한 희생덕분에, (혹은 애매하게 느껴지지만) 세상은 다시 돌아가고, 알렉산더는 그 애매함에도 자신이 믿은 약속을 지켜냅니다.
이러한 믿음은 알렉산더의 대사 속에도 드러납니다. 나무에 꽃이 필 것이라 그저 믿고 물을 주듯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또한 그를 움직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믿음대로 자신의 집도 불태웁니다. 그가 얻은 것은 세상이 구원되었다는 믿음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주 먼 옛날 한 수도원에 늙은 수도승이 살고 있었단다. 그는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산에 심었단다. 그리고 제자에게 말했지. 나무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매일 같이 물을 주도록 해라··· 제자는 매일 아침 물통에 물을 담아 산에 올라가서 그 죽은 나무에 물을 주고는 저녁이 되어서야 수도원으로 돌아오곤 했지. 그렇게 3년 동안 물을 주다가 어느 날 나무에 온통 꽃이 만발한 것을 발견했단다. 끝없이 노력하면 결실을 얻는 법이지. 만약 매일 같이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늘 꾸준하게 의식과도 같이 말이다. 그러면 세상은 변하게 될 거야."
*
우리는 일상 속에서 얼마나 희생하며 살고 있나요? 알렉산더처럼 거대한 희생의 기회(?)가 우리에게 온다면 우리는 그에 선뜻 응할 수 있을까요? 또 우리의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의 존립만을 구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어렸을 때에는 내가 만약에 어떤 것을 희생함으로서 세상이 멸망할 것이었는데 계속된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을 선뜻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이기적이 되어가는 것일까요?
희생이라는 것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았나요? 犧牲,삶을 희생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예로는 세상 그 자체보다는 자신이 헌신하는 가치에 자신의 삶을 희생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지요. 예를 들면 위에서 나왔던 민주화 항쟁, 독립투사와 같은 경우입니다. 그분들은 자신의 가정이나 개인적 욕심은 뒤로하고 더 커다란 가치에 생을 투신합니다. 이 또한 자신이 믿는 가치라는 주관적인 욕심이 들어간 것일까요? 자신이 아닌 우리가 수혜자이기 때문에 단순히 보편적인 지향으로 해석한 것일 뿐일까요?
아주 큰 것앞에서 우리가 작음을 문득 느끼듯, 이 영화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고 길게 느껴지는 장면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인문학 > 행복에 관한 질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시 등교? 수면의 필요성 (0) | 2014.10.13 |
---|---|
종교 철학 (0) | 2014.10.09 |
나에게 영향을 미친 10권의 책 (0) | 2014.10.01 |
우리의 경험 (0) | 2014.09.30 |
믿음의 힘 (0) | 2014.09.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