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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Feed-book!

무라카미 하루키 - 이 세상의 모든 복잡한 문제들은 도너츠의 구멍과 같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4. 4.

 리뷰하려고 할 때마다, 나의 감상을 글로 완벽하게 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게 되는 작가가 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보라색 구름 같은 생각들을 어떤 매체를 이용해서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매번 저를 좌절하게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문인들과 일반 독자들 사이를 막론하고 언제나 이슈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는 하루키 작품들. 

윗줄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한국, 네덜란드, 스웨덴, 독일, 스페인, 아랫줄 왼쪽부터 일본, 중국, 폴란드, 미국판 순서.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1Q84>등으로 이미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우 유명한 작가입니다. 하루키는 이미 전 세계에서 읽히고 있고, 노벨 문학상의 수상 후보에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과 함께 자주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영화화되기도 했고, 얼마 전 대학로에서 <해변의 카프카>가 연극으로 상연되는 것도 보았어요.

 저의 10대와 그 이후에는 하루키가 늘 함께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된 <해변의 카프카>가 시작이었고, 이후로 많은 작품을 게걸스레 찾아 읽었죠. <1Q84>는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 둘과 함께 읽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구절을 쭉 적어 놓은 친구의 노트를 보고, 내가 적은 것과 똑같은 문장이 많아서 놀라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루키에 푹 빠진 우리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의 노래가 나오는 이어폰을 반쪽씩 나눠 꼈었고, <1Q84>에서처럼 날짜를 일부러 200Q년으로 적기도 했습니다. 못생긴 교감 선생님을 작중인물인 ‘후쿠스케’로 부르기도 했었고요, 제 개인 블로그 타이틀은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가게 될까’ 인데, 역시 <1Q84>의 한 챕터에서 따왔습니다. 저와도 많이 친했던 전남자친구의 절친이 “난 무능한 아오였어.”하고 돌아서는 것을 들으면서 몹시 쓸쓸해진 경험도 있네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 그리스, 스타브로니키타 수도원에서. <우천염천> 中



하루키는 소설이라면 장편도 단편도 쓱쓱 잘 써내려가는 작가이고, 각각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어 어느 것을 읽어도 딱히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에세이에도 하루키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우천염천>.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하고 쓴 에세이입니다. 그리스에서는 금녀의 구역인 아토스 반도를 여행합니다. 잔잔한 그리스정교회의 사진과 하루키만의 문장력과 특유의 비유가 가득한 감상들, 그것들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에 푹 빠졌습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를 뒤로하고 고른 저의 베스트는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저는 책을 읽을 때 재미있는 표현이나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생기면 페이지의 끝부분을 접어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접어둔 페이지를 펴서 수첩에 손으로 옮겨 적습니다. 이 책은 도서관에 빌려 읽어 끝부분을 접을 수 없었어요. 대신 인덱스를 붙였습니다. 다 읽고 난 뒤에, 거의 모든 페이지에 색색의 인덱스가 팔랑팔랑 흔들리고 있어서 혼자 바보같이 조금 웃었습니다. 구입하고 싶었는데 절판이더군요. 오래된 청계천의 책방을 찾아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인상 깊게 읽은 몇 구절을 소개합니다. 가을날의 중앙광장, 2교시 공강 때에요. 


32

아무래도 좋다. 이 세상의 모든 복잡한 문제들은 도너츠의 구멍과 같다. 

도너츠의 구멍을 공백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존재로 받아들이느냐는 어디까지나 형이상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도너츠의 구멍 때문에 도너츠의 맛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36

나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무수히 많다. 조금씩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현명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어떤 러시아 작가가 '성격은 조금씩 변하지만 평범함이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은 가끔씩 아주 재치있는 말을 한다. 긴 겨울 동안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39

"완벽한 문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우연히 서로 알게 된 어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본래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었으나 적어도 그것을 하나의 위안으로 삼을 수는 있었다.

 그렇다. 완벽한 문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 이 작가의 작품들은 오랫동안 한국 문단에서는 ‘비평할 거리가 많지 않은’, 사적이고 허무한, 무역사성과 무정치성의, 단지 성적인 묘사만이 가득한 재미주의 소설로 여겨져 왔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이런 하루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는 ‘허세 부리고 싶을 때 읽는 책’이라는 제목으로 공유되기도 했고, 한 친구는 ‘하루키 소설은 항상 주인공이 연상의 여자를 만나 섹스로 끝나는 이야기가 전부’라고 독설하기도 했었네요. <하루키를 읽는가, 하루키 열풍을 읽는가>라는 사설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아래에 링크해드릴게요.


<하루키를 읽는가, 하루키 열풍을 읽는가>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307081718521&pt=nv


 하지만 건방진 말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문학성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수많은 기준들을 뒤로하고 저의 십대와 그 이후의 감성을 형성해준 하루키를 저는 내내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만의 비유법, 특유의 도시적이고 잔잔하면서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문장들을 저는 사랑하기 때문에요. 하루키 작품의 몽환적임, 미스테리함, 그것들이 모여서 만드는 모호함의 안개 속을 헤매이는 것을 즐기면서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리얼 월드’ 역시 이만큼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키를 끊임없이 원하는 걸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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