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Feed-book!

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8. 10.

저번 포스팅 <좀머씨 이야기>에 이어 오늘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를 들고 왔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 가져왔는데 알고보니 아주 짧은 단편이더라구요. 얇은 분량이지만 묵직한 깊이를 자랑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어느 젊은 여류작가에게 유명평론가는 "재능이 있고 호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깊이가 없다"는 악의없는 발언을 하고, 고뇌에 빠진 작가는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결국 자살하고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부고 소식에 그 평론가는 "그녀는 삶을 깊이 파헤치고자 하는 작가였다"라고 문예란에 기고합니다. 


ⓒNastya Nunik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과연 누가 누군가의 깊이를 논할수 있을만한 자격을 가질까요? 한 인간의 깊이와 번뇌의 철학을 누가 오롯이 이해할수 있을까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숙명적으로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의 무게의 중량을 누가 측정하고 평가할수 있을까요? 그런 시도는 너무 무의미하고 거만한 행위로 보입니다. 


ⓒNastya Nunik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온 역사가 있습니다. 그 깊이는 누구도 강요할수도, 평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가 낳은 그림, 혹은 글이 심오하다고 그 인생이 깊이있고, 유치해보이고 우스꽝스럽다고 그 인생이 얕은 것이었다고 단정지을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 젊은 작가가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있었다면 한 평론가의 말에 온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내 작품에 '깊이없다'고 말하는 그의 깊이는 어떻게 평가할수 있지?"하고 넘어갈만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수도 있는 겁니다. 다른사람 평가 하나하나에 그렇게 집착하고 휘둘리는 여린 작가가 가엽게만 느껴집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작품을 그리는 데 앞서 자신의 재능에 자신감을 가지는 시간이 필요했었을 겁니다. 


ⓒNastya Nunik


부끄러운 건 저 역시 비평가의 입장에 있었던 적도, 작가의 입장에 있었던 적도 있었다는 겁니다. 누군가를 잘 알지 못했을 때 "너무 어린 것같다" "너무 가볍다"며 그의 인생을 거만하게 과소평가 하기도 했습니다. 또 누군가가 툭 던진말에 잔뜩 신경이 쓰여 모든 게 헝크러진적도 있구요. 나중에 생각했을 때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할만할 일을 다시는 안하겠다고는 자신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평가하고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에 좀더 신중해져야겠는 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걸 거에요. 자신의 깊이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 누구도 그것을 강요할 수도, 평가할 수도, 평가받을 수도 없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