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라 보엠'에 이어 이번에도 푸치니의 오페라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투란도트'입니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에게 불멸의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입니다. 사실, 그는 이 오페라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거든요.푸치니는 3막에서 류가 죽는 부분까지만 만들었고 그 뒤부터는 그의 제자인 프랑코 알파노가 작곡했습니다. 오페라의 초연이 있던 날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류의 죽음 장면이 끝나자 지휘봉을 내려놓고 관객들을 향해 "마에스트로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라고 말하곤 무대 뒤로 들어가버린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원래 투란도트는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천일일화"(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와 유사한 이야기책입니다.)에 수록된 이야기에요. 이 소재를 카를로 고치라는 극작가가 처음 작품화했는데, 그의 투란도트는 이탈리아의 전통 희극 형식을 따라갔기 때문에 왕자는 안하무인이고 공주는 제멋대로인데다 잔인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쉴러가 왕자는 진지한 사랑으로 기꺼이 공주에게 승복하고,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 사랑을 거부하던 공주는 차츰 사랑에 눈 떠가는 모습으로 개작을 했어요. 푸치니는 이 쉴러 작품의 이탈리아어 번역판을 읽고 감동을 받아 대본작가들과 함께 쉴러의 작품을 다시 각색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오페라 '투란도트'입니다.
투란도트는 중국이 배경입니다. 그래서 중국 자금성에서 오페라를 한 적도 있답니다. 저는 TV로 이 오페라 실황을 봤어요:) 주 무대가 베이징의 황실이라서 그런지 실제 자금성에서 펼쳐지는 오페라가 몇배는 더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사실 음악적으로는 실패한 무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더라고요...ㅠ) 황실과 그 주변이 배경이라서 그런지 유달리 투란도트에서는 화려한 의상과 배경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런데 배경'만' 중국이고 다른 부분들은 이것저것 끼워다 맞춘 티가 역력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들어가 있는 오페라여서 더욱 그런것 같아요. 역사적인 사실은 온데간데 없고, 해설지부터 아예 전설 시대라고 못박아놓고 시작합니다. 그러니 스토리나 고증은 따지지 않고 그냥 동양 분위기의 판타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스토리의 개연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파지는 게, 주인공 공주님의 이름인 '투란도트'는 페르시아어입니다.(‘투란’은 중앙아시아의 지역 이름이고, ‘도트’는 ‘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왕자 이름은 '칼라프', 노예소녀의 이름은 '류(Liu.리우Liù라고도 합니다.)', 칼라프의 아버지이자 나라를 잃고 떠도는 눈먼 왕의 이름은 '티무르'에요. 더 깊이 들어가보면, 투란도트의 모델은 몽골 공주인 '쿠툴룬'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배경은 "중국"입니다. 에이, 그래도 음악이 좋으니 소소한 문제들은 그냥 넘어가도록 해요.
칼라프 왕자의 다양한 의상들.
아마도 칼라프 왕자의 경우 지역 설정이 없나 봅니다.
투란도트 공주는 그나마 중국과 근처 지역들을 섞은 의상을 했으니 다행입니다(...)
사실 투란도트가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져 있는 건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아리아 'Nessun dorma' 때문인 것 같아요. 이 곡은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Britain's Got Talent에서 폴 포츠가 불러서 더 유명해졌죠.
그래서 이번에는 극 중 등장 순서와 상관없이 가장 유명한 'Nessun dorma'를 먼저 소개할게요:) 사실 Nessun dorma를 정확히 번역하면 '아무도 잠 들수 없다(No one shall sleep.)'라고 해요. '공주는 잠 못이루고/공주는 잠 못들고'라는 라는 번역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Nessun dorma. Nes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말라. 아무도 잠들지 말라.
Tu pure, o, Principessa,
당신도, 공주여
nella tua fredda stanza,
당신의 차가운 방에서
guardi le stelle
별을 바라보네.
che fremono d'amore
사랑으로 떨고
e di speranza.
희망으로 떠네
Ma il mio mistero e chiuso in me,
하지만 나의 비밀은 내게 있으니
il nome mio nessun sapra!
아무도 나의 이름을 모르네
No, no, sulla tua bocca lo diro
아니, 아니. 내 입으로 당신에게 말하게 되리
quando la luce splendera!
빛으로 환해질 때에
Ed il mio bacio sciogliera il silenzio
내 키스는 고요함을 깨뜨리고
che ti fa mia!
당신을 내 것으로 만들리.
Dilegua, o notte!
사라져라, 밤이여
Tramontate, stelle!
희미해져라, 별이여
Tramontate, stelle!
희미해져라, 별이여
All'alba vincero!
새벽이 되면 나는 이기리.
vincero, vincero!
이기리, 이기리
이 아리아는 수수께끼를 통과한 칼라프가 만용을 부려 투란도트에게 자기 이름을 맞춰보라는 문제를 내놓고 호기롭게 부르는 곡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고문을 당하게 된다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주 호기롭게 부르는 곡이죠. 공주가 설마 자기 이름을 아버지와 류에게 해코지를 가할 것이라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는지는 살짝 의문으로 남지만(...) 곡 자체는 굉장히 잘 만들어졌고, 무척 아름다운 곡입니다. 그래서 테너들이 많이 부르는 곡이기도 해요.
칼라프의 아리아와 함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것은 투란토드 공주와 칼라프가 대치하는 수수께끼 장면입니다. 주인공 남녀가 엄청난 긴장감을 조성하며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죠.
위 동영상의 내용을 대충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베이징의 황궁. 아득히 높은 계단 위에 공주가 서 있습니다. 투란도트는 새로운 도전자를 맞이해 계단 꼭대기에 서서 평소와 다름없는 오만한 표정으로 문제를 냅니다.
“어두운 밤에 유령처럼 날아다니며 사람들 마음을 들쑤셔 놓고는, 아침이면 사라졌다가 밤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칼라프는 놀랍게도 정답을 말합니다. “희망!(La speranza!)”
투란도트는 처음으로 한 문제를 맞춘 남자를 보고 너무나 놀라고 초조해져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베이징 시민들은 한 문제를 푼 칼라프에게 환호합니다.공주는 이어서 다음 문제를 냅니다.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불꽃은 아니다. 그대가 패배할 때는 차가워지고 승리를 꿈꿀 때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 목소리는 희미하지만 그대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방인 왕자의 입에서 두 번째 정답이 나옵니다. “그것은 피!(Il sangue!)"
이제 투란도트는 이 건방진 이방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려고 계단 맨 아래까지 내려와 그를 정면으로 쏘아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던집니다.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 그러나 그대가 뜨겁게 타오를수록 더욱 차갑게 어는 얼음... 그것이 그대를 종으로 삼으면 그대는 제왕이 되지. 그건 대체 뭘까?”
칼라프 왕자는 꽤 오래 고민합니다. 베이징 시민들은 칼라프에게 힘을 내라고 외치고, 마침내 칼라프는 세 번째 정답을 말합니다.
“투란도트!(Turand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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