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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전쟁 속의 인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19.

 전쟁과 같은 비극은 마치 우리에게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일만 같습니다. 우리는 (비교적 젊은 세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도 아니며, 이제 간접적으로도 전쟁의 실제 모습을 마주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은 마치 영화나 게임에서 그려진 영웅들의 행동무대일 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이를 지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지요. 전쟁의 피해자는 전쟁을 일으킨 사람,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죄없는 어린아이들일 뿐인데도요.
전쟁의 시작은 이념에 의해 선동되지만 그 참상은 이념과 상관없는 피해자들의 몫입니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도 이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북부 사람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었다며, 똑같이 복수하자는 말에 젊은 사람들이 조금씩 동의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 함께 나가 싸워 이기자, 복수하자, 하며 들고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때 한 노인이 말합니다. 사람들은 진짜 전쟁을 모른다고요. 그저 나가 싸우고 영웅이 되며, 여자들이 꽃을 던져줄뿐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지만 진짜 전쟁은 옆에서 친구들이 죽어가는 것과 굶주림, 배고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잘 귀 기울여 듣지 않죠.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더 많은 피해자를 낳을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시 싸움을 하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

얼마전부터 한가람미술관에서 퓰리처상 사진전을 하고 있습니다.

퓰리처상

저명한 언론인 J.퓰리처의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하여 1917년에 창설되었다. 언론 분야는 뉴스·보도사진 등 14개 부문, 문학·드라마·음악 분야는 7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에 있는 퓰리처상 선정위원회가 매년 4월에 수상자를 발표하고, 5월에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시상식이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1만 달러의 상금을 지급하며, 공공봉사상 수상자에게는 금메달도 수여한다.

언론 분야에서는 미국 신문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문학과 드라마, 음악분야는 반드시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미디어의 온라인 사용이 급증함에 따라 1999년에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온라인 작업이 처음으로 인정되었고, 언론 분야에는 2006년 부터 허용되었다. 2007년 부터는 사진부문을 제외한 전 영역의 수상 대상에 온라인 콘텐츠를 포함시키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퓰리처상 [Pulitzer Prize, ─賞]
(출처: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59215&cid=40942&categoryId=31802)

 

 

 


 이렇게 전쟁의 고통을 보여주는 사진이 우리의 고통을 무디게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사실 수많은 이러한 사진보도가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심지어는 역사를 바꾸었으며 오히려 더 아픔을 기억하게 하고 일깨워주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문학작품 중에도 이처럼 우리에게 전쟁 속 사람들의 고통을 일깨워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상원의 작품들은, 전쟁 중, 전쟁 이후의 개인의 아픔과 삶을 보여줍니다.

"오상원의 소설에는 전쟁의 폭력성이 강하게 부각되는 반면, '한국전쟁'이 지닌 역사적 특수성은 충분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이 점은 오상원 문학의 한계인 동시에, 정도와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전후세대 문학에서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미체험 세대가 대부분인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오상원의 소설은 20세기 중반에 우리의 부모나 조부모 세대가 경험한 미증유의 폭력적 경험들을 환기하고, 그것에 대한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을 제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값진 독서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훌륭한 문학사적 유산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수영, 작품 해설 <한 전후세대 작가의 전쟁에 대한 기억>에서 (문학과 지성사)

 이 중에서도 <유예>는 이전에 고등학생 시절에 어딘가 수록되어 있었던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입니다.
전쟁에 대한 보도, 비극에 대한 보도는 그저 숫자로서 사상자, 사망자를 표현합니다. 그 편이 전달에 있어 경제적일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숫자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나타내기에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전쟁 상황에서 한 군인의 목숨, 한 민간인의 목숨은 전쟁이라는 목표 하에서 도구적으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같은 사람이며, 생각과 감정, 죽음에 얼마나 두려움을 느꼈을지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유예>에는 전쟁 중 죽임을 당하러 가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합니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얼음장처럼 밑이 차다."
"눈이 함빡 쌓인 흰 둑길이다. 오! 이 둑길.... 몇 사람이나 이 둑길을 걸었을 거냐.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 선 언덕, 흰 눈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똑바로 걸어가시오. 남쪽으로 내닿은 길이오. 그처럼 가고 싶어하던 길이니 유감없을 거요. 걸음마다 흰 눈 위에 발자국이 따른다.
한 걸음 두 걸음 정확히 걸어야 한다. 사수 준비! 총탄 재는 소리가 바람처럼 차갑다. 눈 앞엔 흰 눈뿐, 아무것도 없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난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 끝나는 일 초, 일각까지 나를, 자기를 잊어서는 안된다."
(중간 생략)
"흰 눈이 회색빛으로 흩어지다가 점점 어두워간다.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놈들은 멋쩍게 총을 다시 거꾸로 둘러메고 본부로 돌아들 갈테지. 눈을 털고 추위에 손을 녹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담배들을 말아 피우고 기지개를 할 것이다.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일인 것이다. 의식이 점점 그로부터 어두워갔다. 흰 눈 위다. 햇볕이 따스히 눈 위에 부서진다."
-오상원, <유예> 중에서

그의 다른 작품 <모반>에서는 이러한 메시지가 좀 더 명확하게 표현됩니다. 대의를 위해 한 개인을 감시하던 민이 결국은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러한 감시를 그만두게 됩니다.

"신경이 몹시 날카롭균, 응? 너와 나와는 그러한 사이가 아닐텐데... 그렇잖어? 왜 너는 아홉이라는 숫자 앞까지 와서 마지막 한 숫자를 스스로 버리려나 말이다. 눈 앞에 점점 트여가는 큰 길을 못 보고 있는 건 아닐 테지....?"
 그러나 민은 그 말을 상대도 하지 않았다.
"잘 들어둬. '내일의 화려한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 오늘 한 평범한 인간의 뺨을 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아직 못 들어본 모양이군. 위대(?)한 하나의 일의 성공보다는 나는 오히려 소박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들이 하나라도 더 소중스러워졌단 말이다."
"너는 아직 역사라는 것을 모르고 있군."
"나는 너희들이 말하는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 역사를 요구치 않아."
"그럼 너는 의의라는 것을 부인한단 말이냐?"
"인간의 의의를 묻고 살기보다는 나는 오히려 묻지 않고 살기를 원해."
"변절이야?"
"아무렇게 생각해도 좋아. 나는 돌아가겠어."
"어디로?"
"집으로."
"집?"
-오상원, <모반> 중에서 

 *

체제와 이념 하에 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억압, 감시하던 때, 이들을 감시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타인의 삶>

1984년, 동독. 비밀경찰(슈타지)의 감시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철저히 조사 당했던 동독의 국민들. 보이지 않는 정보국 요원의 삶. 10만 명의 비밀경찰과 20만 명이 넘는 스파이.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나라와 자신의 신념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던 냉혈인간 - 비밀경찰 비즐러는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중대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드라이만을 체포할 만한 단서는 찾을 수 없다. 비즐러는 오히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으로 인해 감동받고 사랑을 느끼며 이전의 삶과는 달리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줄거리 출처: 네이버 영화 <타인의 삶>


 하지만 그렇게 도구적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려는 시도 속에서도 그 구성원 또한 인간이기에, 우리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 속에 세상의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작은 기대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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