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포스팅에 이어 이번에도 밀란쿤데라의 <향수>를 들고 왔습니다. 오늘은 조제프에 관해 생각해볼까 합니다. 조제프는 이레나와 데칼코마니같이 여겨지는 인물이라고 말한 적이 있죠. 그도 이레나처럼 조국 체코를 떠나 덴마크로 망명한 사람이고,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세상에 떠나보냈습니다. 또한 저명한 의사인 아버지와, 역시 아버지를 따라 의사의 길을 걸은 형에 반감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죠. (그 반항심으로 의사가 아닌 수의사의 길을 선택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러한 동일한 운명속에서도 조제프는 이레나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또 정반대의 삶을 산 인물입니다.
우선 그는, 조국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향수병 결핍'은 그에게 지나간 삶이 별다른 가치가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과거를 미화해서 추억하는 성향이 강하잖아요. 좋았던것만 과대해서 기억하고, 안좋은 기억은 곧 잊어버리고. 하지만 그는 과거를 그다지 아름답게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겁니다. 조제프는 자신에 대해 불만스러웠던 상황들만 떠올리는, '피학증적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어렸던 시절을 추억할때조차 작고 큰 성공들은 기억의 창고에서 없애버리고, 치욕스럽고 불쾌했던 기억들만 품고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기억이 자신을 증오하며 스스로를 비방하게만 한다는 점을 아주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기억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에 보다 관대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에 어떠한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으며 가능한 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가 나라를 떠난 이유는 자신이 예속되고 모욕당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체코인들도 그처럼 예속되고 모욕당한다고 느꼈으나 외국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그들이 남아 있었던 까닭은, 그들이 서로 사랑했으며 그들의 삶이 펼쳐지는 장소와 뗄 수 없는 자신들의 삶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기억은 고국에서의 삶을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수 있게 하는 어떤 추억도 만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후회 없이 국경을 넘었다.
ⓒMarcus Møller Bitsch
외국에서 조제프는 나쁜 기억을 잊고 살수 있게 됩니다. 거기에서는 그가 더 이상 떠나온 나라에서 있었던 기억에 전념할 이유도, 그럴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죠. 한 인간의 일생의 주요 부분들이 망각 속에서 무너짐에 따라 인간은 그가 사랑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더 가볍고, 자유로워짐을 느낍니다.
아무런 미련없이 "인생은 단 한번뿐이며 그 인생을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며 조국을 떠나온 그의 모습은 삶의 주인이 오로지 자신임을, 그리고 그 자신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얽매이지 않는 현재형인간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Marcus Møller Bitsch
이레나가 조국 뿐 아니라 연애나 기억에 관해서도 늘 과거에 끌려다녔던 인물이었던 것에 반해, 조제프는 조국 뿐 아니라 연애나 기억에 관해서도 미련없는 그리고 주체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생활을 했었기에 그녀가 자신의 곁을 떠났을 때 오랜기간 슬픔을 느꼈으며 자신이 반감을 품고있는 가족에 대해서도 소심하고 자멸적인 방식으로 복수하기 보다는, 당당하고 의지적인 태도로 자신의 삶을 지켜냄으로써 그들에게 대항하고, 그리고 그 대항에 성공합니다.
그가 이렇게 과거에 미련없이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대한 예측, 즉 미래의 비극에 대한 인식과 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얼마전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서 떠오른 생각이기도 한데요. 죽음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현실에 더 충실하게 한다는 명제가 이 남자에게도 성립함을 보았습니다.
반면, 이레나는 연약하리만큼 낭만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미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했기에 미래에 있을 필연적인 비극, 즉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때문에 현실은 고달팠습니다. 현실은 미래에 비해 늘 과거의 지진한 연장선에 불과했던 것이었으니까요. 그녀는 필연적 고통이 기다리는 미래를 거부한 채 영원을 꿈꾸었습니다. 현실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그녀를 비현실적 망상을 하게 만든 것이죠.
과거 외에 어떤 것도 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이 과거에 대해서만 말을 걸고 신호를 보내고 싶었다. 그녀는 미래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영원을 갈구했다. 영원은 멈추어 서서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다. 미래는 영원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녀는 미래를 무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제프는 미래에 냉정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은 이후, 죽음에 대해 더 가까워진 그는ㅡ그리고 실제로 이레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그는ㅡ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조국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직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결국 이레나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개념(위대한 사랑,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도 아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좁은 한계에서 생겨난 것 같다. 이러한 시간이 무한하다면 조제프는 죽은 그의 아내에게 그토록 집착했겠는가? 그토록 일찍 죽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중에 이레나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녀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잠자리까지 하게 되는 것도 그의 선택에 의해서였고 그녀를 이 후에 만날 것인가, 만나지 않을 것인가 결정하는 입장도 결국은 조제프가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주체적인 태도는 내 인생에서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을 넘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쿤데라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실제로 밀란쿤데라가 노년에 본인의 조국 체코를 떠나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에서 그의 자전적 의지가 많이 반영되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역사적 상황과 개인적 한계. 이런 것들은 주체적인 의지 앞에서 모두 무화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그리고 그 시선에 힘을 실어 액션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틀리게 마련이다. 인간은 현재의 순간만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인가? 인간은 진정으로 현재를 알 수 있는가? 그것을 심판할 수 있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현재의 의미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가 우리를 어떤 미래로 이끌어 가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우리는 이 현재가 좋은지, 나쁜지, 찬성해야 할지, 의심해야 할지, 아니면 증오해야 할지 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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