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을 잡기가 가장 어려운 살인 사건이 뭘까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보면 몇가지 방법들이 떠오를텐데, 그 중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애용해 온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독살’입니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증거도 남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은,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살해방법이죠.
이 책은 독살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과는 영 다른 내용인 것 같다구요? 사실 이 책의 원제는 “The poisoner’s handbook”입니다. 독살범 안내서? 정도의 뜻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첫 글부터 아주 무시무시한 주제를 들고 온 것 같아 미리 양해 말씀 드립니다. 사실 저도 책 제목만 보고 고른거라 이런 내용일 줄은 몰랐어요.
지금이야 과학의 발달, 특히 법의학의 눈부신 발달로 왠만한 독극물들은 검출이 된다고 하지만 불과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시신에서 독극물을 발견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독살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 어느정도로 막막했냐면 시신이 고통스러워 하며 죽어갔는지를 보고 독을 먹은 것인지 아닌지를 추측하거나 피해자가 먹은 음식을 동물들에게 먹인 뒤 관찰하기도 했죠. 또 은식기를 이용해 독극물이 들어있었는지를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 검출이 될 확률은 낮죠. 그나마 정확해보이는 두번째, 세번째 방법도 범인이 독을 넣은 음식을 바꿔치기 한다면 발견이 안될겁니다. 그러다보니 독살범들은 대부분 그냥 무죄로 풀려났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이 시기에 독살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었어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비롯한 각종 문학에서도 독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또한 실제 프랑스에서는 재산 상속을 노린 독살에 비소를 애용해서 비소에 ‘상속 가루’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고 해요. 참고로 비소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을 독살하는데 이용되어 온 독극물계의 스테디셀러입니다. 흔히 비상이라고 하는 물질인데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독극물이에요.
비상(삼산화 비소, As2O3). 냄새 없는 백색 분말 형태
다행히 이후에 과학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비소와 같은 구시대 독들은 쉽게 검출할 수 있게 되었어요. 비소와 같은 금속성 독은 축적이 되거든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학기술의 발전은 더 치명적인 독들이 등장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바로 독이 든 식물이나 독을 가진 동물들에게서 독만 분리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몸에 쌓이지 않는 독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아니, 그럼 어떻게 찾아야 하는걸까요?. 당시의 한 프랑스 검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해요.
“앞으로 독살범이 될 이들에게 말합니다. 금속 독은 흔적을 남기니까 사용하지 마시고 식물 독을 쓰세요. 아무것도 겁낼 게 없습니다. 여러분의 범죄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을 테니까요. 독을 발견할 수 없으니 물적 등거도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독살 사건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이런 말까지 하게 되었을까요? 화학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19세기는 그야말로 과학자와 독살범 사이의 쫒고 쫒기는 데스매치였습니다. 하지만 독을 분리 할 수 있다면 찾는 것도 가능한 법이죠. 화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연구를 계속한 결과 19세기 말에는 식물 독도 검출이 가능해졌어요. 축적이 되지 않더라도 몸에서 분리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제야 한 숨 돌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시대는 다시 한번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20세기 초에 제 2차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물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 시기에는 독극물이 넘쳐나 과학자들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까지 이르렀어요. 분석되지 않은 새로운 화합물들이 너무나도 많이 존재하고 있었죠. 또한 전쟁에서도 본격적으로 ‘독’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화학 전쟁의 서막이 열립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또한 히어로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생겨나는 법이지요. 그래서 등장하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현대 과학수사의 태동에 큰 획을 그은 병리학자 찰스 노리스와 화학자 알렉산더 게틀러입니다. 이 두 분은 현대 과학수사, 특히 독성학(간단히 설명하면 독극물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의 아버지와 같은 인물들이라 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 싶어하는 건 이것입니다. 어떻게 20세기 초 황금기를 누리던 뉴욕에서 독살이 만연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사건들을 해결했는가? 9개의 독극물에 얽힌 11개의 살인사건이 각각 한편의 영화처럼 펼쳐집니다. 사건들이 연대별로 기록되어 있고 미국의 역사와도 밀접하게 관련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라 그 시대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과학책이지만 딱딱하지 않은 느낌? 과학책이라고 하기보다는 역사책에 더 가까워요. 또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독극물들 대부분은 관련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익숙한 물질이여서 읽는게 훨씬 편합니다. 클로로포름, 비소, 수은 등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물질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책이 약간은 두께가 있는 편이라서 ‘난 두꺼운 책은 읽기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는 챕터는 ‘1928~1929년 라듐’과 ‘1927년 메틸알코올’, ‘1930~1932년 에틸알코올’ 부분입니다. 라듐은 퀴리부인 때문에 유명한 물질이죠? 제가 이 부분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 내용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서 방영된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EBS에서도 지식체널e 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라듐 걸스’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죠. 지금이야 방사능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들 알고 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 심각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라듐을 사용했었다고 해요. 어떤 물질에 대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을 때에는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는 챕터입니다.
두 ‘알코올’ 부분을 추천드리는 이유는 메틸알코올은 공업용 알코올이라서 그렇게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에틸알코올의 경우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물질이라서 한번 쯤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에틸알코올은 자주들 만나시죠? 적당한 음주는 좋지만 술도 독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곤란하죠. 사실 이 책에서 특히 이 두 챕터가 특히 흥미진진한 이유는 미국의 “금주법”과 연결되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건이 과학의 영역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 정치와 결부되어 진행될 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거든요.
화학자이자 독성학자인 개틀러가 자신의 논문에 쓴 글을 마지막으로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좀 더 밝은 주제의 책을 들고 오겠습니다. 총총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에틸알코올은 의사와 법학자가 다루는 독 가운데 가장 위험한 독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다른 어떤 독도 에틸알코올처럼 다양한 형태로 섭취되면서 수많은 사망자를 내거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갖가지 질병을 낳지 못했다.”
P. S. 왠지 기승전알코올이 되었습니다만 적당한 알코올은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하하
P. S. 2 제 책만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초판 1쇄 인쇄가 엉망이에요! 만약 초판을 읽게 되면 순서가 뒤죽박죽 엉켜있어서 당황하실 수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 제목이 참… 이해는 가는데 본문 내용과 잘 안어울린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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