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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 폴 호프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6. 10.

에어디쉬는 자신의 생애를 잘 조정하여 거의 평생을 수학에만 바쳤다. 그는 아내도 아이도 직업도 취미도 없었다. (소설은 30대, 영화는 40대 이후로 보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을 구속한다고 생각해서 집도 없었다. 그는 늘 남루한 여행용 가방과 오렌지색 플라스틱 가방에 세간살이를 넣어서 온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수학, 좋아하세요? 사실 전 수학을 정말 좋아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학을 잘 하는 건 아니에요. 수학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수학과를 갔을 텐데 제겐 재능이 없었거든요. 저와 수학의 관계는 가슴 아픈 짝사랑으로 끝났지만 여기 오로지 수학만을 사랑하고, 또 수학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폴 에어디쉬’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Man Who loved only numbers” 입니다. 오로지 숫자만 사랑한 남자. 그의 인생은 온통 수학 뿐이었습니다. 에어디쉬는 1996년 9월 20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평생 그 어떤 수학자보다도 더 많은 수학 문제들을 제기하고 또 궁리했었다고 합니다. 70세 이후에도 연간 5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인물이죠? 책에서는 그의 일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에어디쉬는 수학의 수도사였다. 그는 육체적 쾌락과 물질적 소유를 모두 포기하고 오로지 단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치열한 금욕적, 사색적 생활로 일관했다. 그의 목적은 수학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에어디쉬라는 인물은 수학만 바라보고 살았구나 하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천재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수학 천재들이 그렇듯이 그는 수학 외의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재미난 일화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평생 자신의 구두 끈 하나 제대로 묶지 못했고 자동차 운전에 관심이 많았지만 실제 운전을 할 줄은 몰라 늘 누군가의 차를 얻어타야 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한때 나는 폴과 며칠을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주방에 들어가 보니 난장판이 되어 있었어요. 주방 바닥에 피 비슷한 붉은 액체가 흥건히 고여있는 것이었어요. 그 근원을 추적해보니 냉장고더군요.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더니 토마토 쥬스 카툰 백이 옆으로 뉘어져 있었어요. 한 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체 말이에요. 폴은 목이 말랐던 모양인데 카툰 백의 옆구리에다 커다란 구멍을 뚫어서 쥬스를 마신 거지요.”

이 책은 에어디쉬를 사로잡은 이 ‘수학’이라는 학문이 무엇인지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크게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렵다고 느껴지시면 그냥 ‘이런 게 있구나’하며 넘어가셔도 괜찮아요. 동시에 에어디쉬의 일생을 다루면서 수학계와 과학계에서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들도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하디, 라마누잔, 괴델, 튜링 등 과학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번 쯤 들어보았을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의 삶이 함께 얽혀 있지요.

G.H.Hardy

폴 에어디쉬는 하루에 19시간씩 수학 문제를 풀었고, 평생 1,475편의 학술 논문을 저술 또는 공동저술했죠. 수학사상 에어디쉬보다 더 많은 논문을 쓴 사람은 딱 한 사람 뿐인데, 그게 바로 18세기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입니다. 세상에. 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분이 정말 실존 인물인지 의심이 들 지경이더라구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폴 에어디쉬가 수학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듯이 나에게도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분야가 존재할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 일에 자신을 오롯이 바친다는 건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욱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요. 특히 에어디쉬는 흔히 말하는 '천재'이지만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며 자신 뿐만 아니라 동료 수학자들까지 동시에 발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왔다는 게 참 대단해요. 하지만 수학 외의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는 생활부적격자(?)였다고 하니 살짝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에어디쉬는 수학에 그야말로 "미친"사람이었을 테니까요.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었겠죠.(수학자들이야 이해는 했을 것 같지만)

굳이 수학이 아니더라도 무엇인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 몰입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죠. 사실 인생이라는 게 그걸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애 마지막 해였던 1996년, 3월에는 보카에서 강연 도중에 쓰러졌지만 곧 의식을 회복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지 말라고 해주세요. 설명해줄 문제가 두 개나 더 남아 있어요."

6월에는 미시간 주에서 열린 강연에서 링겔 박사에게 질문을 하던 중 앞으로 거꾸러지면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맥박 조정기를 부착하고 저녁 종강 만찬에 참석해 "자, 이제 오전에 링겔 박사에게 물었던 질문을 끝마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리고 그 해 9월 에어디쉬는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수학은 곧 그의 목숨이었다는 동료 수학자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에어디쉬의 삶이 그리 추천할 만한 건 아닙니다만(예술, 영화, 소설 같은 것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생활을 했으니) 이 열정과 끈기는 본받을만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또 누구든 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자신의 머리를 내어주고 같이 토론해주는 그 나름대로의 배려까지 더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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