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디쉬는 자신의 생애를 잘 조정하여 거의 평생을 수학에만 바쳤다. 그는 아내도 아이도 직업도 취미도 없었다. (소설은 30대, 영화는 40대 이후로 보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을 구속한다고 생각해서 집도 없었다. 그는 늘 남루한 여행용 가방과 오렌지색 플라스틱 가방에 세간살이를 넣어서 온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G.H.Hardy
폴 에어디쉬는 하루에 19시간씩 수학 문제를 풀었고, 평생 1,475편의 학술 논문을 저술 또는 공동저술했죠. 수학사상 에어디쉬보다 더 많은 논문을 쓴 사람은 딱 한 사람 뿐인데, 그게 바로 18세기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입니다. 세상에. 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분이 정말 실존 인물인지 의심이 들 지경이더라구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폴 에어디쉬가 수학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듯이 나에게도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분야가 존재할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 일에 자신을 오롯이 바친다는 건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욱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요. 특히 에어디쉬는 흔히 말하는 '천재'이지만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며 자신 뿐만 아니라 동료 수학자들까지 동시에 발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왔다는 게 참 대단해요. 하지만 수학 외의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는 생활부적격자(?)였다고 하니 살짝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에어디쉬는 수학에 그야말로 "미친"사람이었을 테니까요.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었겠죠.(수학자들이야 이해는 했을 것 같지만)
굳이 수학이 아니더라도 무엇인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 몰입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죠. 사실 인생이라는 게 그걸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애 마지막 해였던 1996년, 3월에는 보카에서 강연 도중에 쓰러졌지만 곧 의식을 회복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지 말라고 해주세요. 설명해줄 문제가 두 개나 더 남아 있어요."
6월에는 미시간 주에서 열린 강연에서 링겔 박사에게 질문을 하던 중 앞으로 거꾸러지면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맥박 조정기를 부착하고 저녁 종강 만찬에 참석해 "자, 이제 오전에 링겔 박사에게 물었던 질문을 끝마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리고 그 해 9월 에어디쉬는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수학은 곧 그의 목숨이었다는 동료 수학자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에어디쉬의 삶이 그리 추천할 만한 건 아닙니다만(예술, 영화, 소설 같은 것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생활을 했으니) 이 열정과 끈기는 본받을만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또 누구든 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자신의 머리를 내어주고 같이 토론해주는 그 나름대로의 배려까지 더해서 말이죠.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그노벨상 Ig Nobel Prize (2) (0) | 2014.11.01 |
---|---|
이그노벨상 Ig Nobel Prize (1) (0) | 2014.10.31 |
CSI IN 모던타임스 / 데버러 블룸 (0) | 2014.06.29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사이먼 싱 (0) | 2014.06.24 |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 / 카린 포숨 (0) | 2014.06.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