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를 마지막으로 이번 해 노벨상을 받게 된 사람들의 명단이 모두 발표되었습니다. 노벨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인류의 복지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되는 상이죠.
하지만 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1~2주 전에 하버드 대학의 샌더스 극장에서도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는 것, 알고 계시나요? 알프레드 노벨의 친척이자 소용돌이치는 물에 있는 기포 두 개가 절대로 똑같은 경로를 통해 표면으로 상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과학자, 이그나시우스 노벨(Ignacius Nobel)의 유산으로 창립된 “Ig Nobel Prize”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고백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이그나시우스 노벨은 가상인물입니다:Q
앞에서 꺼낸 이그노벨상의 유래는 주최측에서 노벨상을 패러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에요. 이그노벨(Ig Nobel)은 ‘이그’나시우스 ‘노벨’이 아닌 “불명예스러운”이라는 뜻의 영어 ‘ignoble’과 노벨(Novel)을 합성해서 만든 것입니다. 일종의 말장난이죠.
이그노벨상은 미국 하버드 대학의 유머 과학 잡지인 《기발한 연구 연감(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AIR)》에서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1991년 제정되었습니다. 이번 해 9월 18일 24회 수상식까지 무사히 끝마쳤어요.
“흉내낼 수 없거나 흉내내면 안 되는”(that cannot, or should not, be reproduced) 업적에 수여되는 이 상은 진짜 노벨상 수상자들도 다수 참석하며, 논문 심사와 시상을 맡고 있습니다. 시상 부문은 유동적이지만 대체적으로 노벨상의 여섯 부문(물리학, 화학, 의학, 문학, 경제학, 그리고 평화상)에 생물학상이 추가된 7개 부문을 시상하며 그때 그때 필요한 부문을 추가로 시상하기도 합니다.
보통은 실제 논문으로 발표된 과학적인 업적 중 “처음에는 웃기지만, 결국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만드는”(first makes people laugh, and then makes them think) 연구를 선정합니다. 하지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수여되기도 합니다. 동종요법에 대한 연구나 교과 과정에서 진화에 대한 내용을 제외할 것으로 결정한 캔자스 주와 콜로라도 주의 교육 위원회를 비꼬기 위해서 상이 수여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또한 재미있게도 서로 상충되는 두 연구가 있다면 그 둘 모두에게 상을 줍니다. 2008년 화학상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코카콜라에 정자를 죽이는 능력이 있어 피임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를 한 미국 연구팀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대만 연구팀이 공동 수상을 했죠.
처음은 각 부문의 수상자들을 발표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진짜 노벨상과는 달리 상금도 없는 행사니까요. 하지만 1996년 분홍 플라스틱 플라밍고(정원 장식물)를 발명한 공로로 예술상을 수상한 매사추세츠 피츠버그의 돈 페더스톤이 실제로 이그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 시상식장에 나타난 이후로 행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어요.
24회 시상식에 참여한 에릭 매스킨(2007 노벨 경제학상 수상)과 리차드 J. 로버츠(1993년 생리학·의학상 수상)
24회의 테마가 '음식'이었기 때문에 매스킨 교수는 손에 들린 도넛 모자를 쓰고, 로버츠 교수는 요리사 복장을 하고 참가했습니다.
수상자들도 단순히 상을 받으러 올라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딱다구리 모자를 쓰고 시상대에 오른다던지(2006년 딱따구리가 쉴 새 없이 나무를 쪼아대면서도 두통을 앓지 않는 이유를 규명해 조류학상을 받은 미국의 이반 슈왑 박사)
칼 삼키기 묘기를 선보이는 등(2007년 칼 삼키는 묘기의 부작용을 연구해 의학상을 받은 영국의 브리안 윗콤베와 미국의 댄 메이어. 연구에 따르면 칼삼키기 묘기를 자주 부리는 사람은 칼로 인한 목 내부의 상처도 일반인 보다 빨리 낫는다고 해요.) 이그노벨상에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고 합니다.
작년 의학상을 수상한 일본 연구진은 생쥐로 분장하고 ‘라 트라비아타’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시연해 관객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죠. (심장이식을 한 쥐에게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들려주었더니 모차르트 등의 음악을 들려준 쥐보다 거부반응이 적어 생존기간이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 이 수상자 분들이 모두 자비를 들여 시상식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 상이 과학자들에게 얼마나 각별한 것인지 아시겠죠? 노벨상보다 이그노벨상을 노리는 과학자들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입니다.
이그노벨상은 매해 독특한 상패를 수여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2003년에 수여된 ‘1나노미터로 자른 황금 벽돌’은 EBS를 통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기도 했죠.
개인적으로는 2013년의 상패인 ‘비상시에 해머를 이용해 유리를 깨세요’라는 안내문과 함께 “유리 안”에 들어있는(…) 해머도 위의 1나노미터 금 못지 않은 상패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그노벨을 받은 사람은 우리나라에도 있답니다. 1999년 향기나는 양복을 개발한 공로로 FnC 코오롱의 권혁호씨가 환경보호상을 받았고, 2000년에는 통일교 문선명 교주가 1960년 36쌍을 시작으로 1997년 3600만 쌍까지 대규모 합동결혼을 성사시킨 공로로 경제학상을, 2011년에는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목사가 ‘세계 종말을 열정적으로 예언한 사람들’ 중 한명으로 수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수학상의 경우 “수학적 추정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세상에 일깨워준 공로”를 인정한 것이라고 하네요. 뒤의 두 명은 ‘비꼬는’ 의도로 수상자 명단에 올라간 반면 권혁호씨는 순수하게 연구 결과를 인정받아 선정이 된 것이고, 실제 시상식에도 참여했습니다. 상패로 ‘도자기로 구운 개구리’를 받았다고 해요.
다음 글에서는 역대 수상작들 중 재미있는 연구 결과 몇가지를 소개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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