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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배움을 통한 행복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6. 17.

 살아간다는 데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더 나아지고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경험일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또한 '성숙'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죠. 사람은 늘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경험을 하고, 성장을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해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잉된 교육'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이 많은 부분 시험 자체를 위한 공부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배움의 즐거움을 알 새도 없이 배움 그 자체에 먼저 질려버리게 하니까요. 강남의 거리를 걸어보면, 엄청난 수의 학원간판에 놀라게됩니다. 문제풀이를 위한 공부는 그 시험유형에 맞추어 문제를 맞추는 법을 알게 해줄 뿐 그 자체로 외부에서 부여한 성취감 외에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요?

 버드런트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배우는 것이 술을 마시거나 사랑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삶의 기쁨(joie de vivre)’이였다!”
 우리가 왜곡시켜온 배움 너머에, 배운다는 것 자체에서 수확할 수 있는 끝없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새로운 배움은 우리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줍니다.

** 외국어

 그 나라에서 사용하는 외국어를 모르는 채로 그 국가에 떨어지면 장님이 된 기분입니다. 나에게 무엇을 팔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광고판도, 간판들도 나에게 어떤 말도 건내지 못하지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도 그 나라의 사람들이 하는 말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다녀오고 나면 비록 다녀온 도시라도 반도 보지 못하고 온 기분이 들지요. 꼭 그 곳에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외국어를 배운 다는 것은 위의 상황과 반대의 경험을 제공합니다. 마치 그 곳에 가보지 않더라도 그 나라를 조금은 느껴볼 수 있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언어를 배우는 순간에는 아이가 처음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어디선가 그 언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생각의 매개가 되는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평소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의 발성과 발음을 배우다보면 이를 흉내내는 어린아이와 같은 재미도 느끼게 되지요. 언어를 배우다보면, 또한 그 나라의 문화까지 함께 배울 수 있습니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도 다른 소리를 통해 전합니다.

사랑해!
I love you _영어
j t'aime [쥬 뗌므]_프랑스어
ich liebe dich[이히리베디히]_ 독일어
Miluji te [밀르이 쪠]_ 체코어
愛してる [아이시떼루]_ 일본어
Я Люблю Вас[야 류블류 바스]_러시아어
kocham ci? [코함 치엥]_ 폴란드어
我??[워 아이 니]_ 중국어

 가끔 쓸 일이 없다해도 새로운 언어를 펼쳐서 배워보세요. 새로운 소리, 새로운 말을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생각으로 가는 길을 마련해줄지도 모릅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많은 컨텐츠들이 보급된 오늘날 우리에게 유일한 진입장벽은 언어이죠. 외국어를 통해 그 나라에는 어떤 음악들이 유행하고 있는지, 어떤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지, 어떤 영화가 있고 혹은 우리나라에는 어떠어떠한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가 그 나라에서는 어떤 제목으로 번역되었는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세상을 향해 새로운 창을 내게 되는 것이지요.


** 운동과 음악, 춤

" 혁신적인 사회심리학자였던 마이클 아가일 교수는 방대한 행복 연구를 수행한 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중에는 운동이나 음악도 있지만 댄스가 단연 최고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멋진 운동 시설로 한 나라의 행복 수준이 올라갈 수도 있다. 그룹 댄스 활동은 운동, 음악, 공동체 활동, 타인과의 접촉과 규칙이 복합되어 있기 때문에 운동과 마찬가지로 행복 수준을 확실하게 끌어올린다."

 춤이란 사전에 따르면 '장단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 팔다리와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여 뛰노는 동작'이라고 합니다. 저는 춤이 음악에 맞추어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들을 빼고 음악을 듣고 이를 잘 표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춤을 배우는 것은 음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을 배우는 것입니다. 어떤 형식을 배움으로서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것이지요. 음악에 장르가 있듯 춤에도 종목이 있습니다. 그러한 종목을 통해 음악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표현에의 욕구는 인간에게 해소되어야할 꽤 중요한 욕구 중에 하나이니까요

* 음악
 우리가 음악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악기를 배우는 것, 노래를 배우는 것, 작사나 작곡을 배우는 것 등.. 감상 또한 배울 수 있다고 하지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애가 강해서 좋은 음악을 들을 때조차 그 음악을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감명을 받는 것이다' 아무래도 완전히 참여할 수 없는 노래보다는 어느정도 내가 부를 수 있고 음악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에 조금 더 재미를 느끼는 것도 이와 관련될 수 있겠죠. 악기는 확실히 어린 시절에 배워야 빨리 는다고 합니다만,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은 분명 새로운 자극이 됩니다. 내재적 기억에 속하는 악기연주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악기를 잡아도 연주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줄 테니까요.

* 운동
  우리에게는 사회생활을 통해 온전히 해소하기 힘든 욕구들이 있습니다. 어느정도 해소된다고 해도 원초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마음에 부합할만한 형태로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경쟁심, 승부욕, 폭력성 등이죠. 운동은 신체를 사용하는 활동입니다. 신체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기에,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신체의 움직임은 우리의 정신에도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운동 경기는 승부와 성취를 경험하고, 규칙 안에서 이루어지는 욕구의 표출이 될 수 있죠.

 

 


** 새로운 분야

우리나라는 문, 이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과생들은 이공계적 기초지식: 물리, 화학, 수학 등을 배울 기회를 많이 잃게 되고, 이과생들에게는 인문적 사유를 접할 기회가 적은 편이죠. 통섭을 중시하는 오늘날 사회에 와서 '인문학을 배우는 공대생'이 많이 장려되고 있긴 하지만, 단순히 산업적, 경제적 성과를 내는 것을 넘어 새로운 분야에 발을 딛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입니다.

 


 분명 양 측에게 엄청난 진입장벽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 많은 부분이 두려움이고, 이때까지 접해보지 못한 분야에 대한 서투름입니다. 머리는 쓰는대로 발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써보지 못한 분야에 진입하면 낯설겠지만 곧 적응이 일어날 것입니다. 또 이때까지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배움의 기회

 우리나라에서 현재 배움의 형태는 또한 양극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지나친 교육기간과 비용이 지출되고 과잉한 형태까지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 편에는 배움의 기회가 많이 박탈되고 있습니다. 배움 또한 자원과 같은 속성으로 넘치는데 과잉하게 추가된 배움보다는 부족한 데 제공된 배움이 더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나요? 답 또한 간단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나누는 것입니다.
 새로 배움을 시작하신 어머님의 한 마디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움은 내 삶의 활력소이다."
배움에는 때가 없으며, 배움이 주는 즐거움은 누구에게나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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