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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우울의 의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6. 11.

 삶에 행복하고 즐거운 일로만 가득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우울함은 끝없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대체 우울함은 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일까요?
우울장애, 우울증(depression)의 핵심적인 특징은 심각하게 느껴지는 우울도 있지만 두드러지는 점은 즐거움의 박탈이라고 합니다. 앤드류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http://www.ted.com/talks/andrew_solomon_depression_the_secret_we_share

"The opposite of depression is not happiness, but vitality, and it was vitality that seemed to seep away from me in that moment."
"우울함의 반대는 행복함이 아니라 생기(vitality,생동)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에게서 사라진 것은 생기이다."


 우리 사회에 안전 문제 이전에 가장 큰 화두가 되었던 문제가 자살이었습니다. 연예인들의 죽음과 유명인들의 자살 또한 대서특필되었죠. 꼭 우울증이라고 진단받지 못해도 많은 사람들이 우울함을 겪습니다. "나 우울증인가봐"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밀려오는 우울함은 또 큰 고민입니다.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긴 했지만 키에르 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지요.

DSM-IV-TR 의 주요우울장애에 대한 진단 기준

  기분이 슬프거나 또는 일상활동에서의 즐거움의 상실.다음 중 최소한 4가지가 해당 되어야 함: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또는 너무 적게 자는 것
-정신운동성 지체 또는 동요(agitation)
-식욕 감퇴와 체중 감소, 또는 식욕 증가와 체중 증가
-활기 없음(loss of energy)
-자기 비하(feeling of worthlessness)
-주의 집중(concentrating, 생각하기) 또는 의사결정에서의 어려움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반복적 사고

증상이 최소 2주간 거의 매일,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 나타나야 한다. 또한 증상이 일상적으로 일어난 사별에 의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면 우울은 그저 신의 저주일 뿐일까요?

* 영화 멜랑콜리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라는 영화는 이동진 평론가가 '예술가의 우울증이 창작에 가장 창의적으로 적용된 사례 중 하나'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커스틴 던스트(Kirsten Dunst_실제로 자신의 주요우울장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샬롯 갱스부르가 출연했습니다.
 
1부는 저스틴(커스틴 던스트 역) 입니다.
 배경은 한 여인의 성대한 결혼식입니다. 하지만 많은 정성을 들인 결혼식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신부는 극도로 무기력하고 우울합니다.


결국 결혼식은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신랑도 이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들 떠나가죠. 마지막에는 이 결혼식을 준비해준 언니 클레어조차 화를 내게 됩니다.

 

2부는 클레어(샬롯 갱스부르 역)입니다.
 결혼식이 엉망이 된 뒤, 안정적인 가정에 살고 있는 클레어는 동생 저스틴을 돌봅니다. 그러던 중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요.


지구에 충돌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죽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구조차 종말을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클레어의 남편인 과학자 존은 이 사실을 가족에게 감추어갑니다.

종말을 걱정하는 클레어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안심시키려고 하죠. 하지만 결국 남편은 자살해버리고 클레어는 어린 아들과 우울증에 걸린 여동생과 남겨집니다. 담담한 저스틴과는 달리, 클레어는 마지막까지 종말을 인정하지 않으려하며 괴로워합니다.

 여기서 인상깊은 부분은 (아마도 우울증에 걸린) 여동생의 모습이 삶이 계속된다는 가정 하에는 너무도 절망적으로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멸망(죽음)이라는 예정된 재앙 앞에서 둘은 상반된 모습을 보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가지고 미래가 기대되는 삶을 살고 있던 언니는 절망감에 겁먹은 모습을 보입니다. 반면에 우울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동생은 오히려 종말과 죽음앞에 담담한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당장 내일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은 적어도 나는 죽지만 내 자식이나 내 가족은 남아있을 것이라고(우리는 생물학적 영생을 꿈꾸며 자손을 잇는다고도 하죠), 내가 사는 이 지구 안의 세상은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믿지요. 하지만 정말로 지구라는 행성이 끝장나는(분명 언젠가는 끝날 것입니다.) 날이 온다면, 또 그것이 우리가 알고있고 예상할 수 있는 가까운 시일 내라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재앙영화나 지구 종말을 그린 영화들은 지구 종말을 지구인(!)의 힘으로 비껴나가거나(투모로우에서는 지구 반대편은 멀쩡하더군요), 영웅적인 모성애 혹은 부성애로 극복합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종말 앞에서 우리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대한 우주적 현상 앞에서 인간은 아주 작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지요.

 우울증과 같은 병은 살아가는 동안의 시간을 힘들게 하기에 치료되고 고쳐질 수 있다면 당사자를 위해 그렇게 이루어져야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우울함이 온전히 제거되어야 되거나 퇴치해야 할 대상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울함이 가지는 예술적인 가치나 학문적인, 철학적인 발전을 이루는 데 기여한 바를 말하는 것을 넘어 어느정도의 우울은 우리에게 오히려 삶을 소중히 여기고 (일부러 찾는 것이 아닌) 어쩌다 마주쳐야 할 고통스러운 운명을 받아들이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어디로 피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클레어에 비해 예정된 파멸(죽음) 앞에서 오히려 우울한 동생은 담담하게 죽음을 맞아들이게 됩니다. 심지어 겁에 질린 언니를 위로하는 존재가 되지요. 우울을 원하고 우울함의 고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서 어떤 의미라도 발견해보려는 시도입니다. 마치 즐거운 일만 있는 곳을 떠나기는 힘들고 아프게 느껴지지만 힘든 부분도 있었다면 아주 조금은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듯이요.


강연: 인생에 가장 힘든 순간이 어떻게 우리를 만들어가는가
http://www.ted.com/talks/andrew_solomon_how_the_worst_moments_in_our_lives_make_us_who_we_are

그는 힘든 경험을 우리 자신의 정체성 안에서 구성해나갈 것을 이야기합니다. 앤드류 솔로몬은 이 말을 반복해서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Forge meaning, build identity" 의미를 도출하고, 나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라.
그는 "나는 여기 있지만 아프다 I am here, but~" 이 아닌 "나는 아프지만 여기 있다. I am~, BUT I AM HERE"을 강조합니다. 아프고 힘든, 우울한 순간들조차 우리가 의식이 있는 한, 도움을 받으려는 데에서 작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생물이지만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또한 말합니다. 우리는 그 고통이 목적이 있다Purposeful는 것을 알면 그 고통을 참을 수 있다고요. 그렇기에 우울에서 어떤 의미를 도출하려는 시도는 더욱 유의미한 시도가 될 수 있습니다.

*관련 도서 및 영화
-이상심리학
-멜랑콜리아(2012), 라스 폰 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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