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말년의 작품은 내밀한 자기고백인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전에 소개해드렸던, 미소년을 욕망한 노년의 작가를 담은 이야기 <베니스에서의 죽음>역시 저자 토마스만의 자전적 스토리이구요, 화가들 역시 후기로 갈수록 본능적, 자기욕망적으로 작품이 변하는 걸 심심찮게 볼수 있습니다.
Van Gogh 의 후기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
35년의 짧은 인생을 살았던 천재 작곡가 베토벤 역시 그랬습니다. 베토벤이 청각을 잃고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도 현악 4중주만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후 불면 꺼질듯한 타들어가는 초을 부여잡고 빛을 비추는 심정으로 그는 마지막까지 현악4중주 작곡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인지 특히 후기 현악4중주(베토벤 현악4중주 총 16곡 중 후기는 12번부터입니다) 는 그의 내면과 단도직입적으로 맞대면하는 것과 같다고도 합니다. 여기에는 베토벤 자신의 자기성찰은 물론 세상을 향한 격렬한 분노, 인간적인 흐느낌, 신성에 대한 갈망, 초월적인 체념, 억눌린 욕망의 분출, 자유분방한 인습 파괴의 욕구 같은 것들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후기 현악 4중주를 통해 자기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음악을 인간의 삶과 무관한 것으로 취급했던 고전주의 시대와도 결별을을 선언합니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던 현악4중주 14번을 고스란히 담은 영화가 있습니다. 야론 질버맨 감독의 2012년 영화 <마지막 4중주>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결성된 지 25주년이 된 세계적인 현악 4중주단 ‘푸가(fugue)’입니다. 푸가는 4중주단에서 제1바이올린으로 중심축을 맡고있는 다니엘과 그의 스승이자 4중주단의 리더인 첼리스트 피터, 그리고 부부인 제2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와 비올리스트 줄리엣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다들 지긋한 나이에, 아무걱정없이 고상하고 아름답게만 보이지만 실타래가 엉키듯 그동안 묵혀왔던 감정들이 폭발합니다.
리더인 피터가 파킨스 병 초기 진단을 받자, 냉정하고 현실적인 다니엘은 새 첼리스트를 영입해야 겠다고 합니다. 20년 넘는 시간동안 제2바이올린을 해왔던 로버트는 언제까지나 다니엘의 보조를 맞출수는 없다고 하고, 설상가상으로 로버트가 젊은 아침조깅친구 여인과 밤을 보낸 것을 알게 된 줄리엣과의 관계도 심하게 틀어져버렸습니다. 로버트가 다니엘에게 질투를 느끼고 (이들의 젊은 시절, 다니엘과 줄리엣은 사랑하던 관계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미워할때 설상가상으로 그의 딸과 다니엘은 사랑에 빠집니다. 이렇게 네 사람과 그들의 주변인물들은 모두 어긋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난 것은 그들 모두가 가여워서였습니다. 이런 막장드라마같은 상황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는 내밀한 슬픔이 묻어납니다.
네 사람의 관계에 불협화음이 있을지라도, 푸가의 불협화음이 있어서는 안됐습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푸가'가 베토벤의 <현악4중주 14번>을 연주하는 것을 단순한 촬영기법으로 진솔하게 보여줍니다. 이곡은 특히 악장과 악장 사이에 쉼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7악장의 구분이 있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연주를 이어가야 하죠. 그래서인지 그들의 흔들리는 눈빛과 프로다운 손놀림, 떨리는 호흡을 더 크고 깊게 느낄수 있었고, 연기자들의 놀라운 연기력에 중간중간 그들이 실제 연주자들이라는 착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극중 현악4중주단의 이름을 '푸가(fugue)'로 붙인 것은 왜일까요. fugue는 다성음악의 악곡기법 중 하나입니다. 모두 함께 연주하지만 각자 다른 음을 연주하는 독립개체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음들은 한데 모여 아름다운 전체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어느 성부에도 종속되어있지 않은 다성음악의 독립개체처럼 각 등장인물의 욕망과 슬픔, 그리고 그게 모여 만드는 인생을 빠짐없이 다 담아냈기에 '푸가'라는 이름은 더할나위없이 적절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현악4중주 14번>은 그러한 독립개체의 조화만을 담아내지 않았습니다. 조화로울 때도 있지만 갈등과 반목의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협화음의 순간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베토벤이 의도했던 바도 바로 이것이었을 겁니다. 갈등과 불협화음이란 서로가 대등하고 독립적일 때라야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2바이올린이 제1바이올린을 떠받들고, 첼로가 단순한 뼈대만 유지하는 것으로 역할에 만족하고 비올라가 반주자의 역할만 했다면 착하지만 심심한, 무심한 음악이 되었을 겁니다. 그들의 얽히고 섥힌 감정의 파편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영화속에서는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서로를 주시하고 서로에 집중하는 눈빛에서 인생의 비극에 대항해보려는 의지와 담대함이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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