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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바른 생각과 올바른 선택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6. 3.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입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합니다. 투표는 민주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중요한 행사이며, 요즈음에는 투표의 기회를 확대하고자 사전 투표 또한 실시하고 있죠(5/30, 5/31). 하지만 막상 투표를 하려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선택하고 고려해야할 항목들이 너무 많습니다. 후보 개개인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고, 대체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뽑아야 할 사람이 많아지다보니, 후보 개개인에 대해 잘 알아보기 보다는 정당에 따라, 보여지는 이미지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지면 가장 단순한 직관을 사용하게 되니까요.

http://www.nec.go.kr/portal/lwMain.do
선거관리 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각 후보와 그 가족들의 병역 여부, 체납 사항, 전과 기록에 관해 열람할 수 있습니다.
(공개된 범위에서만)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점점 더 정치가 이념화, 극단화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행동해야 '조금이라도 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각 후보에 대해 주어지는 정보는 미디어를 통해 이미 가공된 형태로, 전달자의 주관을 담아 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대한 '전달된 판단'보다는 '전달된 사실정보에 대한 주체적인 판단'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더 많이 접해야될 것은 가공되어 먹여주는 정보가 아닌 사실 그대로의 정보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 (원제: 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 은 이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요?

 먼저, 조너선 하이트는 사람 간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 아니고, 성향이 모두 다 다릅니다. 이는 자라온 경험과 환경에 따라 좌우될 수도 있지만, 많은 부분 태어날 때부터 (경험 이전에) 결정되어 있기도 합니다("orginized in advance of experience"). 경험을 하기 전부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경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향 중 한 가지 속성이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입니다. 또한 이는 정치적 성향과도 관계가 깊은 속성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예시를 들 수 있죠.

 다음과 같은 예술작품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위 그림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1863) 입니다. (이미 너무 유명해져서 민망함을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어떤 사람은 아름답다고 감탄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외설적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것, 지금의 상황을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시도를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과 질서를 유지시키기를 원하죠. 이러한 개방성이 정치적 경향성과 연관될 수 있으며, 예술작품에 대한 반응과도 관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절대적인 것도 아니며, 이는 하나의 예시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옳다/그르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조너선 하이트는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항목을 도덕의 토대로 꼽습니다.

1 harm /care 해악 : 누군가가 고통을 당하는 것을 꺼리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
2 fairness / reciprocity 호혜성, 공평성
3 in group / loyalty 내집단에 대한 충성: 많은 수의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연대감
4 authority / respect 권위와 존중: 질서, 자발적인 존경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5 purity : 몸을 관리하면서 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해 염려하고 관리하는 것

 대체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항목이지만 정치적 성향에 따라 어떤 사항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harm 과 (2) fairness 와 같은 항목에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정도의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아래의 세 항목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사람들과 '보수적인' 사람들이 반응의 차이를 보입니다. (3) ingroup (4) authority (5) purity 여기서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혹 몇몇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 왜 이게 도덕인가? 이에 대해 조너선 하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등장했던 보쉬의 그림이 또 다시 등장합니다.)

(태초의 질서정연한 에덴 동산 상태에서 무절제한 지옥의 상태까지)

사회는 질서정연과 혼란chaos 사이의 단계입니다. 일반적으로 질서는 통제가 없는 한 (개개인의 욕망 추구가 무절제하게 발산) 쇠하고 말죠. 하지만 처벌과 같은 질서 유지를 위한 힘을 통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문명이 유지됩니다. 
 조너선 하이트는 말합니다. 이러한 문명의 유지는 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요. 혁명과 전복을 꿈꾸는 사람들과 질서를 아끼는 사람들은 더 높은 가치의 실현이라는 목표 아래 균형을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마치 음(-)과 양(+)의 조화, 비슈누(질서와 창조)와 시바(파괴)신이 존재하듯이요.

그리고 이런 말을 인용합니다.
"분명한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결코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말지어다.
찬성과 반대의 사이에서 번뇌하는데 마음의 가장 큰 병이 있다."

우리는 이분법에 익숙하지요. 나와 너, 맞음과 틀림, 선과 악으로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판단하기 쉽지요. 하지만 세상의 대부분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나눠져 있지 않습니다. 모두 자신의 견해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 상대방과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을 조너선 하이트는 '도덕적 매트릭스'라고 부릅니다. 그 상태에 안주하면 우리의 마음은 편하겠지만 진리로 나아가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분파를 나누는 데 사용하는 힘을 스스로를 올바르게 알아가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좌우로 나뉘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한과 친일, 미국의 이념까지 유입되어 이제 친북인사, 친일인사로 나누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물론 정말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세력이나 역사적 고증을 통해 증명된 친일 인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수당의 의견을 비판하면 종북 소리를 듣고 보수당을 지지하면 그저 수구파일 뿐이라며 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어느 때보다 이러한 문제가 미디어가 홍수를 이루며, 커뮤니티나 SNS가 확산되며 심화되고 있습니다. 가공된 정보는 또 다시 가공된 의견을 낳으니까요.

 공통의 문제에 대응하는 우리의 모습은 그렇다면 어떨까요? 외계인이 침공하거나 소행성이 떨어진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로 뭉쳐서 싸우게 될까요? 지금의 상황이나, 역사적으로도 외부의 침공에 대항하여 하나로 뭉쳐 싸운 의병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 또한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세력들이 있었지요.
 현재의 모습은 어떤가요? 국가적 재앙이 일어났을 때 정치에서 보여준 모습은 어떤 모습들인가요? 오히려 이를 정치적 선전 도구로 정권 획득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안전 문제가 중요한 사항이긴 하지만 이용해도 너무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리는 양날의 검입니다. 조너선 하이트는 윤리는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지만 분리되게 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분리의 양상을 마치 자기장과 전력(+,-) 사이의 관계(전자기장)로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이념을 중심으로 뭉치고, 이 이념은 양 극단으로 분화된다고요. 하지만 양극화는 위험합니다. 지나친 보수적 성향은 존재하는 문제를 외면할 수 있고, 지나친 진보적 시각은 질서를 부정하고 혼란의 상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로 조너선 하이트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지적합니다.
먼저, 소득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있는 사람을 위한 법률과, 없는 사람을 위한 법률이 갈라집니다. 서로 원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어느 누구도 공익을 위해 희생되려 하지 않으며 상호 신뢰가 무너집니다.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또 다른 문제로는 혼외 출산 문제를 꼽습니다. 결혼이 유지되지 않는 상태에서 자란 아이들은 위의 소득 계층에서 하위 계층을 차지할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이러한 불안정한 환경_질서가 유지되지 않는 상태의 가정은 또한 이전에 최저임금 문제와 공정한 교육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이 있다는 말일까요? 조너선 하이트는 일단 "극단적인 당원들이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하게 한다"를 말합니다. 사실 정치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시민보다는 정당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정치 권력 획득에 정당에 얼마나 충성하느냐가 보상-처벌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람을 잘못 뽑았다기 보다는 의회에 입성하면 당에 충성해야 하는 상태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골수분자들을 뽑지 말 것을 제안합니다. 어떤 이념적 배경을 가졌냐 보다는(또는 이념만을 피력하는 후보보다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역량과 경험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려는 노력, 또한 조화라는 가치 하에 올바른 판단을 하려는 노력입니다.

모두 후회없는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참고 도서 및 관련 문헌
-바른 마음 , 조너선 하이트
-TED 강연 : http://www.ted.com/talks/jonathan_haidt_on_the_moral_mind
http://www.ted.com/talks/jonathan_haidt_how_common_threats_can_make_common_political_ground
-영화 대사: I am lov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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