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na Shumilova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아, 왠지는 몰라 그냥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것보다 많이 행복할 거라는 걸 알아
약속해. 어느 날 너 눈 감을 때 네 곁에 있을게, 지금처럼
궁금한 듯 나를 보는 널 꼭 안으며 난 그런 생각을 했어
가을방학의 '언젠가 너로 인해'라는 노래에요. 곡 전부를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이 곡은 애완동물에게 하는 말을 가사로 담고 있습니다. 애완동물 길러보신 적 있으세요? 전 한번도 없거든요. 강아지나 고양이, 사진으로나 길을 지나가다 보면 예쁘고 귀여운데 기르라고 하면.. 글쎄. 선뜻 나서지지는 않아요. 위의 노래에서도 그러듯이, 우리는 어쩔수없이 그들의 죽음을 볼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헤어질게 두려워서 애초에 만남을 시작하지 않겠다는 것만큼 어리석고 말도 안되는 것이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정이 쉽게 갈 걸 알기 때문에 첫만남이 그만큼 더 신중해지는게 애완동물과의 그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벙어리노예 '게르심'과 그의 사랑스럽고 충성스러운 애완견 '무무'에 관한 슬프고 절절한 이야기 <무무>입니다. 짧은 동화를 읽는 것같은 단순한 구성과 분위기이지만, 그 어떤 길고 섬세한 작품보다 슬프고 먹먹한 이야기였습니다.
ⓒAgnes Cecile
게르심은 태어나면서부터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1미터 95센티나 되는 거구에 힘도 좋아서 나이많고 돈많은 여지주의 훌륭한 농노가 되었죠.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한 성품의 남자였지만, 불편한 몸 탓에 자신보다 훨씬 게으르고 성품이 못된 남자에게 첫사랑을 빼앗기고 맙니다. 누구나 가질수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에게는 이루어질수도, 꿈 꿀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더 과묵해진 게르심은 일상을 늘 그렇게 소처럼 일하다가 어느날 강가에서 흠뻑 젖은 깡마른 강아지 한마리를 발견합니다. 그는 강아지를 데려다가 먹을 것을 주고, 씻기고, 안락한 쉴곳을 만들어주고, '무무'라는 이름을 줘요. 무무는 곧 게르심의 지극정성한 보살핌과 애정으로 품위있는 개가 됩니다. 게르심은 무무만을, 무무역시 게르심만을 아끼고 따르고 의지하는 사이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가 되는게 사랑이라면,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이죠-
하지만 게르심의 여지주는 농노인데다가 벙어리,귀머거리까지이기 한 이 사내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노예는 감정의 주인조차 되지 못하기 때문일테죠.) 게르심이 강아지가 있는 것이 못마땅한 여지주는 하인장을 시켜 무무를 몰래 팔아버리지만 무무는 이내 게르심에게 돌아옵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더 절대적인 사이가 되었지만 비인간적인 여주인은 무무를 죽여버리라고 명령합니다.
마침내 게르심은 여주인이 무무를 죽이기 전에 자신이 직접 무무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나들이옷을 차려입고 식당으로 가서 무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이며 눈물을 흘리고만 게르심은 결국 무무를 벽돌에 맨 채 잔잔한 강 한가운데에 빠트립니다.
ⓒMarcel Christ
그는 마지막으로 무무를 바라보았다. 무무는 무서워하지 않고 신뢰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작은 꼬리를 살짝 흔들었다. 게라심은 얼굴을 돌리고 나서 실눈을 뜨고는 두 손을 폈다... 게라심은 물에 떨어지면서 무무가 낸 날카로운 비명 소리도, ‘철썩’ 하고 튀어 오른 둔탁한 물소리도, 다른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에게는 가장 소란스러웠던 하루가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지나간 것이다. 마치 가장 고요한 어떤 밤이 우리에게는 전혀 고요하지 않을 수 있듯이. 그가 다시 두 눈을 떴을 때, 작은 파도가 서로서로를 뒤쫓듯 전처럼 강을 따라 빠르게 흐르고 있었고, 전처럼 쪽배의 측면에 철썩거리며 물을 끼얹고 있었다. 다만 강기슭 쪽 저 멀리에서 어떤 커다란 물결 무늬가 동그랗게 퍼지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한, 또 자신을 사랑해준 유일한 존재를 제손으로 죽인 게르심은 자신이 오랫동안 묵묵히 충성을 바쳤던 여지주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갑니다.
그는 가슴을 활짝 펴고, 두 눈으로 열심히 똑바로 앞을 응시하며 계속 걸었다. 그는 늙은 어머니가 고향에서 자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타향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방황한 자기를 어머니가 고향 집으로 부르기라도 하듯이 서둘러 걸어갔다... 이제 막 시작된 여름밤은 고요하고 따스했다.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 충성을 다했음에도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조차 허락하지 않은 여지주를 떠나면서, 게르심은 '자유'를 느낍니다. 그는 무무를 직접 죽이기로 결심하면서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자를 죽일 권리는 없다"라는 것을 여지주에게 보인 것입니다. 그건 게르심 인생에 있어서 최초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결심이었습니다.
"이후로는 절대로 여자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심지어 여자들을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자기 집에서 한 마리의 개도 기르지 않았다"는, 이 짧은 이야기의 결말에서 고요하고 깊은, 바다같은 게르심의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그건 사랑하는 존재에게 죽임을 당할수밖에 없었던 가여운 무무의 영혼을 기리는, 게르심의 충성이 아닐까요.
강신주 박사는 <감정수업>이라는 책에서 사랑을 '자발적 노예상태로 빠지는 것'이라고 정의내렸습니다. 게르심은 기꺼이 자신의 애완동물이자 사랑하는 존재인 무무의 노예가 될 것을, 평생 그에게 충성을 바칠 것을 결심했던 것일겁니다. 한 인간이 두 주인을 섬길수는 없기에 오랜시간 충성을 바쳤던 여지주를 단 한번의 망설임과 두려움없이 당당하게 떠날수있었던 거구요.
<무무>가 그 어떤 연인들의 로맨스물보다 아름답지만 슬프게 읽히는 건, 서로를 향한 어떤 바램도 계산도 하지 않고 오로지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했던 게르심과 무무의 그것이 인간세상에는 비현실적으로 보일만큼 순수하기 때문일테죠.
ⓒAgnes Cecile
"아무런 바램도 없이, 어떠한 계산도 없이 오롯이 당신을, 당신 그 자체로 아끼고 사랑한다"고 자랑스럽게 말 할 수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게르심과 무무는 '사랑한다'고 입으로 말할수는 없었지만,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우리보다 더 크게 말할 수 있는 애틋한 눈길과, 따뜻한 손길과, 진실된 마음이 있었습니다.
태양이 지는 쪽에서는 아직도 하얀 하늘 언저리가 사라져 가는 하루의 마지막 반사광으로 엷은 홍조를 띠고 있었고, 그 반대쪽에서는 푸른 잿빛 어스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쪽에서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백 마리의 메추리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빙빙 날고 있었고, 흰눈썹 뜸부기들이 앞 다투어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 게라심은 이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그의 힘찬 발이 스쳐 지나가는 나무들의 예민한 밤의 속삼임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어두운 들녘에서 풍겨오는, 익어가는 호밀의 익숙한 냄새를 느꼈고, 그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고향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자기 얼굴을 부드럽게 때리며 머리칼과 턱수염을 간질이는 걸 느꼈다. 그는 자기 앞에 훤하게 밝아오는, 화살처럼 곧게 뻗은 집으로 가는 길을 보았다. 또 그는 자기의 갈 길을 비춰주는 셀 수 없이 수많은 하늘의 별을 보았다. 그는 마치 사자처럼 힘차고 씩씩하게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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