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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성직자의 가르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5. 20.

 여러분 중 얼마나 많은 분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나요? 사회가 변화해온 과정은 점술가나 종교인의 위치의 변화라는 재미있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의 신탁을 받는 신전의 사제, 혹은 인도에서도 성직자 계급(브라만)을 가장 높은 지위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며 점점 종교의 위치가 추락해갑니다. 그와 더불어 성직자의 사회적 위치 또한 달라지지요.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신의 존재에 대한 반박은 강화됩니다. 신보다 인간을 부르짖던 시대도 있었지요. 하지만 현대에 와서 결국 우리가 이 시대에 종교를 대신하여 숭배하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 현재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직업은 무엇이고, 그 기준은 무엇이던가요? 점점 우리는 종교의 위치를 대신해 돈과 권력을 숭배해나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권력도 결국은 경제적인 이득과 유착하게 됩니다. 어떤 직업을 최고로 치는지는 대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할때 어떤 분야가 경쟁이 치열한지 살펴보면 됩니다. 이과에서는 의대, 문과에서는 법대라는 고전적인 법칙이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과 같은 형태로 바뀌었지만(그리고 다시 돌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남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진로를 택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 신념과 같은 이유도 있겠지만 사회적, 경제적 지위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종교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일부 타락한 성직자들을 제외하면 어떤 종교든 종교의 지도자인 성직자는 보통 사람들이 존경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은 종교가 없습니다만, 인류 공통적인 성인들은 어떤 종교를 가졌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감싸주지 않던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달라이라마라던가 교황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지금도 살아숨쉬는 인류애를 보여주는 표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하셨습니다)

 특히 이번 교황에 추대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파격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검소함으로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게다가 8월 방한 일정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는 최초의 남미출신 교황으로, 본래 이름은 호르헤 베르고글리오입니다.

http://www.ebs.co.kr/replay/show?courseId=BP0PAPB0000000009&stepId=01BP0PAPB0000000009&lectId=10209556
출처: 지식채널e <안녕하세요, 교황입니다>

 그는 늘 자신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말하며 하느님에 대한 의탁을 이야기합니다.

질문: 신자 중에는 교황의 반열에 도달한 분이라면 모든 것에 대한 개념이 분명히 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교황: 그렇지 않습니다. 저 또한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더러 모든 질문을 머리에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항상 스스로에게 더 많은 물음을 던지는데 그럼 늘 새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여러 상황에 따라 만들어가는 것이며 기다림 끝에 얻는 것입니다. 고백하자면 제 성격 때문인지 일반적으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답변은 오답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실행에 옮겨서는 안 되는 생각입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제 경우는 그렇습니다. 더 침착하게, 혼자 고독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 누구도 결정의 시간까지 홀로 겪어야 하는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조언을 청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또 매우 부당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가호에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알에이치코리아) 중에서>

 종교에서는 오만을 경계합니다. 자신의 감각과 사고를 통해 얻은 판단이 옳은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은 자신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며,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조금 빗나간 문제이긴 하지만 판단이라는 측면에서, 인식론의 문제(간단히 말하면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지각할 수 있는가? 왜곡된 것이 아닌가?와 관련된 문제)에서도 이전에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이 '진실'을 알기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으므로 신의 필연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신의 가호를 바라는 겸손함이 진정한 종교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깊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람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스꽝스럽거나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대부분 우리는 그 사람을 비웃게 됩니다. 내가 비교적 나은 사람이라는 무의식적인 안도감마저 느끼죠. 하지만 교황은 그런 사람을 보면 슬픔을 느낀다는 점이 저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아이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비웃음이 아닌 슬픔을 느끼게 되겠지요. 교황은 이처럼 모든 사람을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를 보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이 시선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도 유효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본래 남자 신도의 발을 씻겨주던 관행 대신에 한 소년원을 찾아 소녀들, 다른 종교를 가진(이슬람, 그리스정교) 아이들의 발을 씻어주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또한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말뿐이 아닌 실천으로 사람을 돕는 행적 또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고통받는 이들의 벗'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강조합니다.

"노숙자의 죽음은 기사가 되지 않는데 주가는 2퍼센트만 떨어져도 기사가 된다"

 또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자본주의, 경쟁사회에 관해서도 고발합니다.

교황: 교회는 최근 몇 십 년간 노동의 비인간화를 고발해왔습니다. 우리는 자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심각한 경쟁 관계에서 실패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을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에서 봐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의 중심이 이익을 내는 것이나 자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이 존재하는 겁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현시대에 맞게 고쳐 말하면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질병들이 과학기술의 힘으로 극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절망, 죽음에 이르는 병'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을 순전히 개인의 탓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한 불행한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은 경쟁 속에서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방관자적 자세, 있는 자들이 더 많이 가지기 위한 탐욕으로 가난한 자들의 희망까지 착취해냈기 때문이지요. 

교황: 인내를 이룬다는 것은 인생자체가 평생교육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는 누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후 자신과 타인의 인생에서 인내의 논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내를 이룬다는 것은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인생을 전개해나갈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뜻입니다. 좋은 부모란 자식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방향을 제시해주지만, 그 후에는 자식이 스스로 본인과 타인의 실패를 통해 배우고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출처: 같은 책>

 진정한 존경은 존경을 받으려는 태도, 말싸움에서 이기려는 태도에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져주는 사람, 자신의 부족함을 언제나 받아들이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먼저 손벌려 사랑을 베풀고 말로 사랑을 전하기보다는 실천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교황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그 어떤 누구보다도 행복해보입니다.

*참고 문헌 및 관련 도서
-교황 프란치스코, 알에이치코리아
-지식채널 e <안녕하세요 교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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