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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Sports Korea

2002 한일 월드컵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4. 9.

쿠쿠로그에서 스포츠 코리아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작가의 나이는 22살입니다. 

저에게 있어 인생에서 가장 큰 기억에 남는 스포츠 행사를 꼽으라면 제가 10살 때인 한일 월드컵입니다.

오늘은 저에게 큰 기억에 남는 그 역사의 순간으로 되돌아가보겠습니다.


전 세계의 화합과 축구라는 스포츠를 흥행시키는 월드컵은 2002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네덜란드에서 온 거스 히딩크 감독과 세계적으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선수들로 꾸려져 

세계에서 온 강팀과 승부를 겨루게 됩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2001년 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여러 강팀의 국가들에게 5:0 패배를 당하며 수모를 겪었고, 

히딩크 감독은 오대빵 감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개최에만 의미를 두었고, 결과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죽음의 조를 피해 폴란드, 미국, 포르투칼과 한 조가 되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첫 경기는 폴란드. 피파랭킹이나 국제대회에서의 성적 상 대한민국이 밀리긴 하지만, 그래도 해볼만 하다는 것이 정론이었습니다. 

그래도 유럽팀인지라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노심초사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지만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었어요. 

황선홍의 논스톱 왼발 슈팅에 이어 유상철의 벼락같은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대한민국은 폴란드를 가볍게 2:0 으로 제압하고, 

어른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아이들도 그날 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승부는 격렬했고 결과는 환상적이었네요 ㅋㅋㅋ



첫 경기에서 승전보를 울려서 그런지 대한민국은 벌써부터 16강 행의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합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포르투칼이 미국에게 3:2로 졌기 때문에, 미국만 꺾는다면 바로 16강 행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이죠. 미국과의 승부는 낮에 치러졌고, 전반이 시작한지 얼마 채 되지 않아 이을용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졌지만, 그는 페널티킥을 날리고 얼마 있지 않아 한 골을 선납합니다. 

그러나 테리우스, 역전의 명수 헤딩 선수 안정환이 멋진 헤딩으로 그물망을 가르며 승부는 1:1 무승부가 됩니다. 대한민국이 32강에서 1승 1무를 기록하던 순간!





포르투칼과의 경기에서는, 대한민국이 실점을 많이 하지 않고 비기기만 하면 안정적으로 16강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대팀에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루이스 피구 선수가 있었기에 안심할 수 없었고, 전담 마크 선수로 요즘 인기중인 송종국 선수가 붙었죠. 

포르투칼과의 승부는 격전의 연속이었었습니다. 포르투칼이나 한국이나 서로를 꺾으면 16강 행을 확정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로 선정된 박지성 선수가 이영표 선수의 센터링을 받아 기적같은 슛을 성공시키며 포르투칼을 1:0으로 이기게됩니다. 

대한민국 32강 성적 2승 1무 골득실 +3, 역사상 최초로 16강 진출에 성공하며 한반도를 들끓게 만들고 더욱이, 그때까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던 폴란드가 미국을 꺾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조 1위로 16강에 올라가게됩니다.





16강 상대는 유럽의 전통 강호, 폭력 축구 이탈리아였습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선수 전원이 명문 클럽의 에이스였던 이탈리어는 프란체스카 토티, 부폰등의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라는 응원이 들리며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이 들린지 얼마 채 되지 않아 전반 10분에 과격한 비에리에게 코너킥 선제골을 헌납하고 맙니다. 

이탈리아는 좋은 체격과 체력으로 대한민국을 거칠게 몰아붙였으며, 대한민국은 이에 쩔쩔매며 당황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때까지만 해도 16강 행이라도 장한 거라며 쓸쓸히 경기장을 나오려 준비하고 티비를 끄려는 순간, 설기현이 후반 46분 기적같은 동점골을 성공시킵니다.

상대 수비수 실책을 틈타 터닝슛을 시도한 게 골키퍼의 반응보다 빨라 동점골이 만들어졌었습니다.

채 얼마 쉬지 않아 연장전에 돌입한 한국은 그 전보다 거세게 몰아붙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연장 후반이 끝나갈 무렵, 안정환은 자신이 전반전에 실패한 페넉티킥을 만회한 골든 헤딩골을 넣게 됩니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제정된 골든골이 한국에게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순간이었습니다. 


8강전의 상대는 지금도 최강인 스페인이었고, 스페인과의 한 판 승부는 낮에 치러졌습니다.

포르투칼전과 이탈리아전은 상대선수들이 퇴장당하여 수적인 우세에서 싸웠지만, 이번의 승부는 전혀 달랐습니다. 

스페인은 모든 경기를 정규시간 안에 끝내어 체력적인 부담이 없이 올라왔지만, 한국의 경우는 체력의 고갈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승부는 연장후반에도 끝나지 않고 승부차기로 넘어갑니다.

전혀 그럴 거 같지 않았던 호아킨 선수는, 4번째에 실축을 하게 되고 마지막 골을 홍명보가 성공시키며 그전에는 이뤄내지 못했던 4강 신화를 이룩하게 됩니다.




그 다음 결과는 사실 좋지 않습니다.

미하엘 발락에게 한 골을 내주며 독일에 1:0으로 져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3·4위 전에서 터키에게 3:2로 져 4위로 월드컵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월드컵 4위의 업적을 기록하였고 어찌되었건간에 대한민국, 터키, 브라질과 독일은 그 대회에서 가장 많은 게임을 치루며 국민들에게 많은 긴장감과 즐거움을 안겨줬습니다. 

월드컵이 있던 그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제의 현장,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월드컵에 대한 저의 기록이 유달리 많은 이유는, 사실 1993년 생인 필자에게 월드컵은 10살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기억이 제대로 살아있기 시작한 시점에 일어났던 큰 이벤트였기 때문입니다. 

그 전 나가노, 토리노, 시드니 올림픽은 사실 본 기억도 없다. 유치원생이었으니까요. 2002 월드컵은 대한민국의 어른 뿐만 아니라, 이런 어린아이도 흠뻑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또한 훗날 다시 어떠한 스포츠 경기를 개최하거나 진행할 때도, 대한민국이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사실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대한민국이 아무리 올림픽을 개최해봐도 세계의 변방 국가라는 인식 혹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계는 몰랐습니다. 개최해봤자 눈에 띌 만한 성과과를 못 거뒀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한일 월드컵은 달랐습니다. 개최도 하고, 그 개최한 대회에서 세계 4위의 기록을 일구어내었습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해낸다는 한국인들의 도전정신과 열정을 불러일으켰던.. 


추억 속의 그리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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