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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 Wilhelm Richard Wagner, 니벨룽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3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0. 27.




거인 파프너가 큰 용으로 변신하여 반지를 지키고 있는 동쪽으로 도망친 지클린데는 아들 지그프리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한편 난쟁이 알베리히와 미메는 파프너가 지키는 반지를 빼앗기 위해 파프너의 동굴이 있는 산중에 와 있는 상태였어요. 지클린데는 죽기 전 미메에게 부러진 칼 노퉁과 지크프리트를 맡기고, 미메는 지그프리트를 이용해 반지를 찾을 속셈으로 지그프리트를 기르기 시작합니다.

1부가 시작되면 난쟁이 미메가 깊은 숲속의 어느 동굴에서 새로운 칼을 벼르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파프너를 죽일 날카로운 칼을 만들려 노력하지만 제아무리 튼튼하게 칼을 만들어도 난폭한 지크프리트가 늘 칼을 부러뜨리는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죠. 지그프리트가 부러뜨릴수 없는 유일한 칼은 지클린데가 남긴 부러진 노퉁뿐이지만 미메는 그것을 고칠 힘이 없었습니다. 미메는 지그프리트가 파프너를 죽이고 자신이 자신이 반지를 차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독백합니다.

이윽고 지크프리트가 자신이 길들인 곰을 타고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는 미메에게 새 칼을 내놓을 것을 요구합니다. 곰에 놀란 미메는 자신이 만든 칼을 지크프리트에게 넘기지만 그 칼도 곧 부러지고 맙니다. 지크프리트는 칼은 단단해야 하는 것이라며 미메에게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라면서 화를 내요. 그러다 미메에게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를 묻기 시작합니다. 모든 짐승은 두 명의 부모가 있는데, 미메는 자신과 다르게 생겼으므로 자기 부모가 아니라는 것이였죠. 미메는 지그프리트의 끈질긴 요구에 별수 없이 지클린데가 들판에서 지그프리트를 낳고 죽었다고 말하며, 그 증거로 노퉁의 조각을 보여줍니다. 지그프리트는 영원히 미메의 곁을 떠날 것을 결심하고 미메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노퉁을 고쳐놓으라고 말한 뒤 다시 나가버려요.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미메는 크게 근심합니다. 이 때 방랑자의 모습으로 변신한 보탄이 나타나요. 미메는 놀라서 이 방랑자를 없애버리려 하지만, 보탄은 끈질기게 앉아서 미메에게 수수께끼 내기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 내기는 서로의 목을 걸고 3 문제씩 내는 것으로, 먼저 미메가 문제를 내고 보탄이 맞추기로 했어요.

미메의 첫 문제는 땅의 깊은 곳에 사는 족속의 이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보탄은 곧바로 니벨룽족이라고 대답합니다. 두 번째는 땅의 위에 사는 족속의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이건 거인이었죠. 마지막 문제는 구름 위에 사는 족속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방랑자는 이라 답합니다.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한 방랑자(의 모습을 한 보탄)은 슬쩍 자신의 지팡이로 땅을 쳐서 천둥소리를 냅니다. 미메는 놀라 숨으려 하지만, 방랑자는 이번에는 미메의 목을 놓고 자기가 문제를 낼 차례라고 주장합니다.

방랑자가 낸 첫 번째 질문은 보탄의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핍박을 받은 족속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미메는 쉽게 봘숭족이라고 답한다. 다음 질문은 지크프리트가 파프너를 죽이기 위해서 써야 되는 칼의 이름이 무엇이나는 것이었고, 미메는 노퉁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윽고 방랑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노퉁을 새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미메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공포로 떨고 있는 미메에게 방랑자는 미메의 목은 이제 자기 것이며, 두려움을 모르는 자가 노퉁을 새로 만들 것이고 그에게 미메의 머리를 맡기겠다고 말한 뒤 떠나갑니다. 이후 지그프리트가 돌아오고 미메는 지그프리트의 그림자를 자신을 잡으로 온 파프너로 착각해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지그프리트는 새로 고친 노퉁을 요구하고, 미메는 자신이 노퉁을 고칠 수는 없다고 대답합니다. 미메는 갑작스럽게 공포를 느끼고 지그프리트에게 두려움의 의미를 아는지 물어보고 지그프리트는 "그런건 모른다"라고 답합니다. 그 말을 들은 미메는 자신이 죽은 지클린데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지그프리트에게 두려움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거짓말을 하며 그에게 두려움을 가르쳐 보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무시무시한 파프너 앞에 데려가 두려움을 가르칠 궁리를 하게 됩니다. 한편 지그프리트는 자신이 해머를 잡고 직접 노퉁을 고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가 노퉁의 조각을 벼리는 동안 미메는 몽혼약을 만들어 지크프리트가 파프너를 죽이고 난 뒤에 먹일 궁리를 합니다. 미메는 자신의 계획대로 일들이 움직이는 것에 대해 기뻐하고, 지그프리트는 수리를 끝낸 노퉁을 내려쳐 쇠모루를 둘로 쪼개며 막이 끝납니다.


 


2막이 시작되면, 파프너의 동굴 앞에 있던 알베리히 앞에 방랑자의 모습을 한 보탄이 나타납니다. 알베리히는 변장한 보탄을 알아보고 격분합니다. 알베리히는 보탄이 파프너를 죽인다면 보탄의 힘이 담긴 지팡이가 부러져 보탄의 힘이 영원히 사라질거라 경고해요. 또한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자신의 계획을 보탄에게 이야기 해 줍니다. 보탄은 다 알고 있다며 자기에게 다시 주지시킬 필요가 없다고 답합니다.

보탄은 알베리히에게 파프너에게 반지를 달라고 해보라고 부추기지만 알베리히는 머뭇거립니다. 보탄은 결국 알베리히를 무시하고 파프너를 깨워내요. 그는 파프너에게 그를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오는 영웅이 있다고 전하며 그 영웅은 파프너를 죽일 수 있지만 그의 목표는 오직 반지이기에 반지만 건네주면 파프너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파프너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금 잠으로 빠져들어요. 보탄은 알베리히에게 미메에 대해 경고를 하고 떠나게 됩니다.

이윽고 미메가 지그프리트와 함께 파프너의 동굴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파프너를 두려워하는 미메는 감히 들어가지 못해요. 미매는 용에 대해 무시무시한 묘사를 해 주지만 지그프리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그프리트는 혼자 동굴 속을 걸으며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다 아름다운 새를 만납니다.그는 풀피리를 만들어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려 하지만 이상한 소리만 나고, 결국 자신의 혼(horn)으로 큰 소리를 내게 됩니다



이 소리에 파프너가 깨 지그프리트와 만나게 됩니다. 파프너는 안그래도 목이 말랐는데 이제 먹이까지 발견했다고 말하며 지그프리트와 싸워요. 지그프리트는 두려움을 배우기 위해 파프너와 맞서 싸우게 되고, 손쉽게 노퉁으로 용의 심장을 찔러 싸움이 끝나게 됩니다. 파프너는 죽기 직전 자신을 찌른 자의 이름을 물어보녀 자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는 너를 데려온 자의 악의를 조심하라고 말하며 죽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용의 피가 지그프리트의 손가락에 묻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흘러내린 용의 피를 혀끝으로 맛본 지그프리트는 새의 말을 알아듣게 됩니다.

새는 미메가 지그프리트가 나오면 몽혼약을 먹일것이라 경고하고, 파프너의 보물 중에서 타른헬름과 반지만을 가져가라고 충고합니다. 이 동안 미메는 동굴 밖에서 만난 알베리히와 반지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미메는 보물을 반씩 나누자고 제안합니다. , 알베리히는 반지를 가지고 미메는 타른헬름을 가지겠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알베리히는 미메가 타른헬름을 가지게 되면 자기가 잠을 편하게 잘 수 없다며 이 제안을 거절합니다.

알베리히는 두 가지 보물을 다 요구합니다. 그 때 지그프리트가 보물을 들고 동굴 밖으로 나옵니다. 알베리히는 저주를 퍼부으며 물러나고, 지그프리트는 미메에게 자신이 파프너에게서 아무런 두려움도 배우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며 미메를 단칼에 베어버려요. 지그프리트는 새에게 자신의 짝을 어디서 만날수 있을것인가를 묻고 새는 불타는 바위산에 누운 브륀힐데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그녀가 마법에 불에 둘러싸여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며 두려움을 모르는 자만이 그 곳에 갈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죠. 지그프리트가 새의 인도를 받아 브륀힐데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으로 2막이 끝나게 됩니다..

 

3막이 시작되면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는 밤, 바위산 밑에 서 있는 보탄을 보여줍니다. 그는 아직도 방랑자의 복장을 한 상태로, 마법의 노래로 에르다를 부릅니다. 그는 에르다에게 그녀가 예언으로 경고했던 일들을 물어보지만 지친 에르다는 오히려 보탄에게 왜 논(운명의 여신)들에게 먼저 묻지 않는 것인지 되물어봅니다. 보탄은 논들이 현재만을 인지할 뿐 미래의 일들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에르다는 그렇다면 현명한 브륀힐데에게 물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그녀는 아직 브륀힐데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보탄이 그동안의 일을 말해주자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릅니다. 보탄은 에르다가 좋은 충고를 해주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며 그녀를 다시 깊은 잠으로 돌려보내고, 지그프리트를 만나기 위해 떠납니다.

 지그프리트는 브륀힐데가 누워있는 산 밑에서 방랑자의 모습을 한 보탄을 만나게 됩니다. 지그프리트를 인도하던 새가 보탄의 두 마리 까마귀를 보고 도망친 탓에 지그프리트는 보탄에게 길을 물어봐요. 그러나 보탄은 오히려 지그프리트에게 어떤 영웅적인 행동을 했는지를 묻습니다. 남을 존경할 줄 모르는 젊은 청년 지그프리트는 거칠게 대답을 하고, 보탄은 화를 내며 지팡이를 들어 노퉁을 또 깨고 싶지 않다면 도망치라고 경고합니다. 지그프리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한 자가 지팡이로 노퉁을 깨뜨린 자라는 것을 알고 드디어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책임져야 할 상대가 나타난 것을 깨탇습니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 보탄의 지팡이를 내려치고, 지팡이는 반토막이 나고 보탄은 (자신의 말에 따르면) 모든 힘을 잃게 됩니다. 보탄은 결국 도망치게 되고 지그프리트는 그를 무시하고 브륀힐데를 찾아 산을 오르게 됩니다. 이윽고 지크프리트는 마법의 불을 뚫고 들어가 갑옷을 입은 채 깊은 잠에 빠져있는 브륀힐데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남자만을 보아 왔던 지크프리트는 뭔가 다른 그녀로 인해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껴요.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 당황한 지크프리트는 그녀를 깨어 보려고 하다가 입을 맞추게 되고 브륀힐데가 깨어납니다.



브륀힐데는 그녀를 깨운 사람이 지크프리트임을 알고 몹시 기뻐해요. 그녀는 발퀴레의 갑옷과 자기의 애마를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게 되지만 곧 지크프리트를 향한 애정이 싹트며 화려했던 발할라의 일들을 잊어버리고, 지크프리트는 좀전에 배운 두려움을 잊어버려요.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브륀힐데가 지그프리트의 팔에 안기는 것으로 극이 마무리됩니다.

 

 


지난 글에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가 톨킨의반지의 제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었죠? 이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반지의 제왕은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의 삼부작 판타지 장편소설입니다. 판타지 소설계에 지워질 수 없는 거대한 족적을 남긴 명작이기도 하고(후대 판타지 소설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죠.), 그 자체로도 뛰어난 문학작품이기도 합니다. 또한 니벨룽의 반지로 대표되는 독일(게르만) 신화에 맞서 씌여진 작품이기도 해요. 톨킨은 저명한 신화 연구자이기도 해서 누구보다도 게르만의 신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신화를 정치적 선전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히틀러는 자신이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인물을 창조할 영웅이라고 선전하며 영웅 지그프리트를 자처하기도 했습니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톨킨은 독일 신화에 맞서 새로운 연합왕국의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죠.

영국에는 켈트 신화와 게르만 신화가 공존합니다. 이는 브리튼 섬의 서남쪽인 잉글랜드와 웨일즈에는 게르만 족이 살고, 섬의 동북쪽인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는 캘트 족이 나누어 살고 있기 때문이죠. 영국의 역사는 서로 다른 이 두 민족 사이의 갈등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최근까지도 계속 갈등이 이어져 오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영국에 사는 캘트 족과 게르만 족이 서로 혐력해야 했고, 이들을 하나로 묶어 줄 새로운 통합 신화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동일한 모티브를 사용한 니벨룽의 반지반지의 제왕이 서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작품 모두 반지가 절대적인 권력의 상징인데요.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신을 포함한 여러 종족들이 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것이 주된 내용인 반면, 반지의 제왕에서는 여러 종족들이 힘을 합쳐 반지를 파괴하려고 하죠.

바그너는 절대적인 권력과 하나의 영웅에 대해 이야기한 반면 톨킨은 절대적인 권력을 해체하는 평범하고 작은 사람들(호빗)을 찬양합니다. 이는 작가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가 추구했던 가치를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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