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코난을 한번쯤 봤다면, 이 대사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真実(しんじつ)はいつも一つ!"
이는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뜻입니다. 이전의 고전 물리학에서는 모든 것이 계산 가능하고 예측가능하지만 단지 우리가 초기 조건을 정확하게 계산해내지 못할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항상 객관적인 진실은 있고, 우리는 그것을 관측하는데 실패한 것뿐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실'은 관측 그 자체와 인간의 주관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을 뿐이지만 이러한 물리적 '실체'에 대한 회의는 우리가 일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시사를 합니다.
*라쇼몽
줄거리: 전란이 난무하는 헤이안 시대, 억수같은 폭우가 쏟아지는 `라생문`의 처마 밑에서 나뭇꾼과 스님이 `모르겠어. 아무래도 모르겠어` 라며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잠시 비를 피하러 그곳에 들른 한 남자가 그 소리를 듣고 궁금해 한다. 이들은 이 남자를 상대로 최근에 그 마을에 있었던 기묘한 사건을 들려준다.
사건이 벌어진 배경은 녹음이 우거진 숲속. 사무라이 타케히로(모리 마사유키)가 말을 타고 자신의 아내 마사코(교 마치꼬)와 함께 오전의 숲속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늘 속에서 낮잠을 자던 산적 타조마루(미후네 도시로)는 슬쩍 마사코의 예쁜 얼굴을 보고는 그녀를 차지할 속셈으로 그들 앞에 나타난다. 속임수를 써서 타케히로를 포박하고, 타조마루는 마사코를 겁탈한다. 오후에 그 숲속에 들어선 나뭇꾼은 사무라이 타케히로의 가슴에 칼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관청에 신고한다. 곧 타조마루는 체포되고, 행방이 묘연했던 마사코도 불려와 관청에서 심문이 벌어진다.
문제는 겉보기에는 명백한 듯한 이 사건이 당사자들의 진술을 통해 다양한 진실을 들려준다는 점이다. 즉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먼저 산적 타조마루는 자신이 속임수를 썼고, 마사코를 겁탈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무라이와는 정당한 결투 끝에 죽인 것이라고 떠벌린다. 하지만 마사코의 진술은 그의 것과 다르다. 자신이 겁탈당한 후, 남편을 보니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초리였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을 경멸하는 눈초리에 제정신이 나간 그녀는 혼란 속에서 남편을 죽였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무당의 힘을 빌어 강신한 죽은 사무라이 타케히로는 또다른 진술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지만, 오히려 산적 타조마루가 자신을 옹호해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결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엇갈리는 진술 속에는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담겨있다. 좀처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없는 이때, 실은 그 현장을 목격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나뭇꾼이다. 그는 마사코가 싸우기 싫어하는 두 남자를 부추겨서 결투를 붙여놓고 도망쳤고, 남은 두 남자는 비겁하고 용렬하기 짝이 없는 개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라쇼몽>
이처럼 라쇼몽은 단순히 그 줄거리 자체보다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 각 사람에 따라 다른 주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단어에도 각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이 다르듯이, 사건 또한 다 다르게 풀이되고 해석되고 기억됩니다.
사실 우리의 기억은 많은 경우에 왜곡이 쉽게 일어납니다. 얼마전에는 친구가 분명 방금 전에 보았다고 한 물건이 없어져서 찾았었는데, 사실은 물건이 집에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분명 방금 어딘가를 배경으로 물건이 있는 모습까지도 본 것같다고 기억했는데도 말이죠. 아마도 과거의 모습이 현재에 적용되어 잘못 기억한 경우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건이 있어도 친구들 중에는 그에대해 주관적인 해석이 강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땐 같은 사건은 같은 사건인데 서술이 이렇게 달라지는 구나 하고 놀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억의 주관성과 인식의 주관성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아주 흔한 예시지만 위의 물잔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1. 물이 반밖에 없네
2. 물이 반이나 있네
너무 흔한 예시이지만 이는 우리가 객관적인 사물도 매우 주관적으로 인식한다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떤 사건을 객관적이아니라, 우리의 주관으로 파악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기분과 감정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얼마전부터 모든 일이 꼬이고 있는데, 그 가운데 '모든 일이 꼬이고 있어! 요즘 정말 운수가 나빠!'라는 생각이 들면 정말 불행한 기분이 들더군요. 오히려 그에 대해 생각을 안하거나, '특별히 나쁠 건 아니지만 몇 가지 일은 잘 되지 않았어'라는 생각만으로도 놀랍게 가라앉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주도 물이 반이나 있네라는 생각으로 지낼 수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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