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지하철에서 한 광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여성 표준사이즈? 라는 문구와 함께 바코드와 같은 무늬가 있고 밑에는 v 34-24-34 s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얼굴은 v라인, 가슴 34- 허리 24- 골반 34 에 s 라인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여성의 몸에 원한다는 이상적인 사이즈이자, 비현실적인 사이즈이기도 하죠. 하지만 물론 이러한 풍조를 일으키는 것은 단순히 이성의 욕망이 아닙니다. (실제로 남자들은 이런 몸매만을 선호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만..) 이러한 이상향을 주입받고 이에 자신을 끼워맞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비정상적인' 미(美)에 대한 갈망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경우들이 있었지요. 하지만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이 변하듯, 이러한 사회적으로 주입된 기호들과 강요는 사실 어떤 불변의 미(美)는 아닌 듯 합니다.
* 전족
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8395
얼마 전 실제로 전족을 해서 훼손된 형태의 신체를 가지게 된 여성들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다시금 충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전족이란 이전 중국의 풍속 중 하나로 발 작은 여자를 아름답게 여기던 인습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어린 여자 아이의 발을 압박하여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 전족은 과거 중국 여성들의 미의 상징이자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요건 중 하나로 19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당시 여성들은 가능한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해 5세 정도부터 헝겊으로 발을 단단하게 동여맸다.
구부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은 뒤 5년 동안 사이즈를 늘리지 않으면 성인이 돼서도 길이 10cm 안팎 정도밖에 발이 자라지 않는다. " -출처: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0029
이러한 전족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여성이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고 매력적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좋은 아내의 조건을 작은 발로 삼고, 성적인 매력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족을 하고 사는 몸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부자연스러웠을까요? 문제는 전족과 같이 극단적인 형태는 아니더라도 자꾸 이러한 '이상적이고 표준적인' 기준에 맞추려는 고통스러운 시도들이 여러 면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 시내를 걷다보면 많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성형외과 광고들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형 이전은 다 다른데 성형 이후는 다 똑같아진다는 점 또한 놀랍습니다.
요즘은 아주 어린 아이들도 화장을 합니다. 그 고운 피부에 흰 분과 빨간 색조 화장품을 바르고 어설프게 진한 아이라이너를 그리고 눈병을 얻어가면서까지 서클렌즈를 끼우는데, 어째 점점 비슷하고 표준적인 모양새가 되어갑니다.
젊음과 청춘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인공적이고 표준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 꼭 끼워맞추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지요. 얼마전에 라이언 맥긴리(사진작가)의 전시회가 한국에서 있었습니다. 그 제목은 <청춘, 그 찬란한 기록>입니다. 라이언 맥긴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당신은 사람의 몸을 많이 촬영한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가?
사람의 몸은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소재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누군가가 내 눈 앞에 나체상태로 서 있다고 상상해봐라.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지 않겠나?(웃음) 나는 살결의 느낌과 빛이 몸 위에서 부서져 내리는 방식을 사랑한다. 사실 이제 누군가가 옷을 벗기 전에는 카메라를 잡지도 않는다. 농담이다. 내가 매료된 건 누드 자체보다 사람들의 벗은 몸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감정이다. 나는 사진 속에 나체가 융화되는 순간을 마치 일상의 장면처럼 포착해내려 한다.
*
'청춘Youth'은
나에게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낙천과 자유를 의미한다. 열정이 냉소를 대체하는 것처럼
나는 내가 촬영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부분을 발견한다.
마치, 이것이 그들의 일부인 것처럼 말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스스로를 예술가-화가이고, 작가이고, 음악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한편으로는 개방적인 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처받기 쉬운 면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나의 창조적 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감정의 접근점이 된다.
_전시된 라이언 맥긴리의 인터뷰 중에서
최근에는 사람의 몸, 사람의 육체가 단순히 성적 욕망을 촉발시켜 소비 욕구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만 조명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욕망의 대상이 되어보도록 하려는 수 많은 시도들은 때론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들정도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단순히 성적 욕망의 대상만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신의 그릇이자, 훗날에는 내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 새겨질 바탕입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뻔한 옛말을 꼭 근거삼지 않더라도, 수 많은 연구결과들이 우리의 정신이 육체에서 비롯되며, 육체라는 것은 단순히 정신을 담는 그릇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의 약간의 살이나 글래머하지는 않지만 건강하게 있어주는 육체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준다면 훗날 후회할 일 한 가지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젊었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
'인문학 > 행복에 관한 질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900일 간의 폭풍 (0) | 2014.07.12 |
---|---|
우울한 피로 사회 (0) | 2014.07.11 |
나와 세상을 바꾸는 힘, 행복한 채식 (0) | 2014.07.04 |
소유냐 존재냐 (0) | 2014.06.29 |
알베르 까뮈, <시지프 신화> (0) | 2014.06.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