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wking: The story of the search for the beginning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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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은 다큐멘터리적 성격이 강한 TV 전기영화입니다.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스티븐 호킹’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만, 사실 전 영화의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중간 감초처럼 등장하는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 때문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 물리와 관련된 전공이 아닌 저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내용들이에요.) 다행히 영화의 핵심인 스티븐 호킹 이야기를 제외해도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더라구요. 따라서 아래에서는 영화 배경지식 몇가지를 제가 아는 선에서 차근차근 다루어 보겠습니다. 주인공이 호킹인데 아래 글에서 호킹 이야기라 별로 없는 것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어요. 영화 스포일링을 하고 싶진 않거든요. 그리고 호킹의 이야기는 영화 내에서 아주 쉽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걱정 말고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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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78년 12월 스톡홀롬에서 펜지어스와 윌슨이 노벨상을 받기 전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터뷰어가 던진 “(스티븐 호킹과) 언제 만나셨나요? 어떤 인상을 받으셨죠?”라는 질문에 “만난 적 없어요.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도 몰랐는걸요.”, “스티븐 호킹, 그 사람이 누구죠?”라는 답변을 합니다. 지금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뭐? 스티븐 호킹을 모른다고?’하며 놀라워 하실 수도 있을 텐데, 당시의 스티븐 호킹은 그렇게 잘 알려진 과학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펜지어스가 이야기했듯, 그는 영국에 있었고 그들은 뉴저지에 있었는걸요!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은 미국의 과학자로 “우주 배경 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아날로그 TV에서 지지직거리는 까만 화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스노우, 노이즈로도 불리는 이 현상이 바로 우주 배경 복사입니다. 우주 초기 뜨거운 고밀도 상태에서 뿜어져 나온 빛의 잔류물을 현재의 텔레비전 안테나가 포착해 이를 보여주는 것이죠. 저희는 빅뱅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물을 눈으로 계속 확인해 왔던 거에요. 신기하죠?
뒤이어 화면이 전환되면서 주인공 호킹이 등장합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천문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였던 프레드 호일 경의 인터뷰에요. TV에서 호일 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정상우주론(정상상태우주론; steady state cosmology)”이라는 우주 이론입니다. 우주는 항상 현재와 같은 모양으로 존재하며, 우주가 팽창해 밀도가 작아지면 이를 보충하기 위해 새로운 물질이 생성되기 때문에 항상 밀도를 유지한다는 이론이죠. 즉 우주는 출발점도 없고 소멸도 없으며 어떤 장소와 시점에서도 똑같다는 겁니다. 그는 이 이론을 강력히 주장했고 빅뱅 이론에 대해서는 상당히 냉소적이었습니다.
Sir Fred Hoyle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호일 경이 이름이 알려져 있는 건 빅뱅 이론 덕분입니다. ‘빅뱅’이란 용어를 그가 처음 만들었거든요. 용어를 만든 이유와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설들이 존재하는데 팽창우주론(빅뱅 이론을 이렇게도 부릅니다.)을 비꼬기 위해 “그럼 우주가 ‘꽈광!(big bang)’하고 나타났다는 말이군요?”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조롱할 의도 없이 그저 팽창우주론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2.
호킹의 이야기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영화에서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펜지어스와 윌슨으로 넘어갑니다. 자신들이 사용한 안테나에 관한 설명을 하는 장면인데요. 아주 해맑게 설명을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실제 사용한 혼 안테나. 그리고 로버트 우드로 윌슨(왼쪽), 아노 알런 펜지어스
그리고 여기서 제가 가장 과학사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등장합니다. 전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우주복사를 다룬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내용이라 “비둘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간단히 아래에 적어두기는 했지만 이 부분은 영상으로 보는 쪽을 추천드립니다. 펜지어스 역의 배우와 윌슨 역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이 에피소드의 재미를 배가시켜 주거든요.
광학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면 별, 그리고 빈 어둠만 보입니다. 하지만 전파 망원경을 통해 관찰하면 별과 은하 등에서 나오는 전파와 우주의 모든 방향으로부터 균일하게 복사(radiation)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그래서 실제 천문학자들은 전파 망원경을 가지고 연구를 합니다. 펜지어스와 윌슨이 말하는 혼 안테나는 위성으로부터 반사된 전파를 특정하는 고감도 6미터짜리 안테나입니다. 우주에서 전파가 매우 희미하기 때문에 그들은 방해되는 다른 전파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죠.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레이더와 전파방송의 영향을 제거하고 수신기의 열로 인해 측정에 오류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 액화 헬륨도 이용합니다.(이 부분을 영화에서도 언급하죠.) 그런데 간섭을 없에기 위한 작업을 완료한 뒤에도 계속해서 잡음(정확히는 hiss라고 부르는 노이즈의 한 종류)이 발견됩니다. 그것도 예상치보다 100배나 강한 잡음이 하늘이 균일하게 퍼져 있었죠. 마지막으로 그들은 안테나 나팔 안에 가득했던 비둘기와 ‘흰색 유전물질’이 잡음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이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나섭니다. 아주 기가 막힌 방법을 사용했죠. 바로 ‘비둘기를 우편으로 부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전역으로 뻗은 내부우편망을 이용해 최대한 멀리 보낸 것이죠. 결과는 안타깝게도 실패였습니다. 비둘기가 집으로 다 돌아왔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비둘기를 쏴 죽이고 ‘흰색 유전물질’을 제거하게 됩니다. 아, 그런데 ‘흰색 유전물질’이 도대체 뭐냐고요? 비둘기 배설물이에요.ㅎㅎ (보고서에 ‘비둘기 똥’이라고 적는 건 좀 그렇잖아요.)
비둘기와 비둘기가 남기고 간 흔적들까지 모두 제거했으니 이제는 잡음이 잡히지 않았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비둘기에겐 죄가 없었습니다. 3도의 높은 잡음은 비둘기가 만든 게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이 잡음이 그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3.
호킹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로저 펜로즈'라는 수리물리학자입니다. 호킹과의 합작품인 '특이점 정리'가 가장 유명하고, 영화 인셉션에서도 등장한 '펜로즈의 계단' 덕분에 이름도 많이 알려져 있죠. 기하학과 위상수학에 대한 업적이 커 본래 물리학자인데도 수학과 교수직에 임명될 정도의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로저 펜로즈는 영화에서 굉장한 천재로 묘사됩니다.. 그는 수식보다는 그림을 사용해 물리에 접근하는 것을 선호하는 특이한 인물로 나옵니다.(당시 물리학자들은 수식으로 모든 걸 표현하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그리고 음악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구요. 그가 영화에서 호킹을 만난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모짜르트의 일화는 영화의 터닝 포인트 역할을 합니다.
"모짜르트는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교향곡 하나 전체가 머리에서 맴돌더래. 그런데 언제 그런 걸 생각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거야. 그냥 머리속에 떠오른거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음악이 그냥 떠오르다니. 어떻게 교향곡 하나 전체가 한 순간에 떠오를 수 있지?"
"음악이란 게 언어를 뛰어넘는 생각의 방식인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게 천재라는 건지도 몰라. 한 순간에 모든 걸 생각할 수 있는."
펜로즈는 호킹이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과학자인데 이렇게 부실하게 소개를 마무리하게 되어서 아쉽네요. 하지만 이 인물이 영화 후반부에서 클라이막스를 이끌어내는 인물이라서 영화를 직접 보시는 게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시간 반 정도로 짧은 편이고 대사도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 시간이 나시면 한번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유튜브에 영화 전체가 올라와 있어서 아래 링크해 둡니다.)
P.S.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장면들
1)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만을 사용해 여자를 꼬시는 스티븐
2) 비둘기, 흰색 유전물질. 그리고 뉴욕. 펜지어스의 가족사 부분
3) 지도교수 데니스 샤머의 집에서 로저 펜로즈와 함께 한 식사 장면 후반부. 펜로즈의 말과 블레이크의 시가 인상적.
4) 펜로즈의 강의
5) 바흐의 마지막 푸가. 그리고 ‘기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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