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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행복에 관한 질문들

동정과는 다른, 공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5. 1.

 누군가의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하는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 "I feel sorry" 혹은 "I'm sorry"라고 반응하던데, 우리에게도 그런 표현이 있다면 참 편하지 싶습니다.
 물론 "유감입니다."라는 표현도 있지만, 친구가 "시험에서 에프 받았어"하는 데 "유감이야"라니. 생각만 해도 낯간지럽네요. 정말 중요한 것은 타인의 불행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잘 넘어갈까 보다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인 것 같습니다. 반응이야, 그 마음가짐에서 우러나오는대로 두면 될 것입니다.

 자라면서, 수 많은 수업들을 들으면서 타인의 불행에 어떻게 반응해야하는가는 배운 적이 없습니다. (곧 하나 소개시켜드리겠지만요...) 자연스럽게 드는 반응이라는 생각 때문일까요? 사실 그 순간에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감정이 가능합니다.

첫번째는, 동정심입니다.
나보다 딱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안쓰럽게 보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끌어올려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들지요. 하지만 이 마음은 그 사람이 나보다 낮은 상황에 처해있을 때까지만 유효합니다. 오히려, 나보다 잘 난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러한 '안타까운' 마음만 들게 하지는 않을테니까요.

 

 비슷한 감정으로 우월감입니다. 불행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서, 혹은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서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높여가는 것이지요. 자신이 가진 좋은 면에는 자꾸 눈길을 주면서, 이러한 면은 나도 모르게 외면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분명히 제가 가지고 있는 부분이지요.
 이는 상대방의 불행으로 자신의 쓸모를 인정받는, 자신의 행복으로 느끼는 감정으로 소개된 '연민'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연민으로 만난 두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겠는가? 두 사람이 어떻게 기쁨의 관계에 속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불행한 남자야. 내가 필요해." 이것이 연민의 공식이다. 그렇지만 이때 연민에 빠진 여자가 원하는 것은 그 남자의 기쁨이나 행복이 아니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불행한 사람을 돌보고 있다는 우월감, 혹은 내가 그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느낌일 뿐이다. 목마른 사람에게 해갈될 정도로 충분히 물을 주어서는 안된다. (생략) 연민은 얼마나 잔인한 감정인가.

-강신주의 감정수업 중에서

그렇다면 정답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신화나 전설을 보면 모든 성인, 종교 지도자, 신화 속 인물들은 반드시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거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제는 그 이유에 대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고통의 담금질 속에서 인간 정신이 성장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때문일 것이며, 또 한 가지는 그런 과정을 통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획득하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고난과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지나와봐야 나중에 그들이 보호해야 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내면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정신의 어둡고 깊고 탁한 영역에까지 공감할 수 있어야 진심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프란체스코 성자가 가난과 고행을 자처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공감은 현대 정신분석의나 심리상담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 자질이며 전제 조건이라고 한다. 공감은 '환자의 내부 경험에 일관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공감 능력은 인간 감정의 다채로운 영역에 대해 세밀하게 체험한 위에서 획득되는 능력일 것이다. 내 속에 억압되어있는 분노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타인의 분노에 대해서도 헤아려볼 수 없다. 내 마음의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면들을 인정하고 ㅅ용할 수 있어야만 타인의 그런 감정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처입은 자가 치유한다"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은 모든 종교 지도자나 신화 속 주인공이 왜 반드시 고....

공감은 연민이나 동감과도 구분되는 감정이라고 한다. 연민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전제로 한 감정이고, 동감은 객관적 태도를 잃고 상대방에게 휩쓸리기 쉬운 감정이다. 반면 공감은 중립적이고 비판단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내면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는 거이라 한다. 한 인간의 비통, 애착, 공포, 분노.... 그리하여 인간이 그토록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하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느끼는 상태이다."

-김형경, 사람풍경 중에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누군가가 불행한 일을 겪으면, 우리는 그와 같은 우리의 불행을 꺼냅니다. 실연 당한 친구 앞에서는 나의 실연당한 이야기를 꺼내고, 다 잘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 다독여줍니다.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똑같이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위로라는 것이 참으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이 느껴집니다. 


 집단 상담을 하다보면, 집단 내에서는 몇 가지 사항이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목적은 단지 들어주고, 자신에게도 그런 감정을 느낀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가 된다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나눕니다. 끊임없이 그 다음에 내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 주의를 끌 것인가 고민하는 대화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연습을 합니다. 그 안에서 서로 크게 말이 없음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커다란 대화가 없음에도 서로 위로받죠. 사실 우리의 불행한 원인은 서로 비슷비슷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참고도서 및 참고문헌
-강신주의 감정수업
-사람풍경, 김형경
-천 개의 공감, 김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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