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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유의 정원

멋지게 실수하라 - 크리에이터인 당신에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2. 21.

 베스트셀러 작가 닐 게이먼의 필라델피아 예술대학 졸업식 연설 내용을 레드닷 디자인 상 수상자 임헌우가 번역하고, 동시에 책의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규칙을 깨뜨리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은, 그 내용과 디자인이 맥락을 같이 하는 '언행일치'를 잘 보여줍니다. 일반적인 책이 보여주는 줄글 형태의 텍스트는 지양하고, 대신 감각적인 배치를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매우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때문입니다. 

 


 신선한 접근입니다. 일반적으로 책은 어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데에 그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대부분의 경우 책은 한 번 읽히고 난 후, 책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아주 가끔씩 주인의 손을 타게 되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이 책은 '책은 수단이다'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책이 갖고 있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한눈에, 강렬하게, 분명하게 다가오는 페이지들. 각 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마다, 단순한 줄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요동치는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모든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조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이제 막 예술가로 인생을 시작하려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연설한 내용을 옮겼습니다. 

  며칠 전 남동생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갔었는데, 교장 선생님의 졸업사가 이랬습니다. "대학 입학은 인생의 첫 번째 스테이지입니다. 두 번째는 취직이고, 세 번째는 결혼입니다. 모두들 대학에서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서 경제적 성공을 이루세요."  그야말로 '정답'이 있는, '보여지기 위한 삶'을 살라는 응원처럼 들렸습니다. 위의 교장선생님과 비교되게, 작가의 졸업식 연설임에도 따분하거나 '꼰대'같지 않은 화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안전하고,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을 사세요'라는 따분한 내용이 아니어서 좋았고요. 


 책을 읽으면서 한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저에게 '정답사회'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해주고, 이에 자신이 꿈꾸는 대안을 눈을 빛내며 소개해 준 멋진 Dreamer입니다. '정답사회'는 모든 것에 '정답'이 있고, 이것을 벗어나는 구성원에게는 비난이 쏟아지는 사회입니다. 여기에 '정답사회'를 잘 설명한 웹툰이 있어 링크합니다. http://joyride.co.kr/80160488025

 남들이 하는 대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적당히 잘 살기 위해...이렇게 정답을 따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 회색 도시를 그는 경멸한다고 했습니다. 그를 닮은 이 책은 '정답'을 따라가지 말고,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하라고 강조합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소리를 내고 나서야,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습니다. 그러나 남들에게는 없고 오직 당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만의 목소리, 당신만의 생각, 당신만의 이야기, 당신만의 이상. 

 그러니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쓰고 그리고 만들고 공연하고 춤추며 살아가십시오."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을 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실패했을 때의 두려움 때문에 어떤 일에도 쉽게 도전하지 못합니다. 단지 평탄한 길, 이미 누군가 걸어간 길을 종종걸음으로 좇을 뿐입니다. 최고, 최초가 되어보겠다는 패기 있는 생각보다는, 안전하고 무난하게,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저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작품을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에게나 읽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규칙을 깨고, '일반적이고 안전한 길'을 벗어나서 멋지게 실수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생생하게' 배우는 것. 그것이 삶의 크리에이터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자세가 아닐까요.

 다른 누가 아닌 나만의 인생을 만들고 거기에서 나만의 특별함을 찾아내는 것. 그런 순간들이 나의 인생을 밝히고, 그 빛으로 하여금 나를 눈부시게 만드는 것. 평생 시키는 일만 하면서 사는 노예에게서는 빛나는 눈동자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인의식'이라는 재미없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주도적인 삶의 행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죠. 



  저는 특히 규칙과 불가능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짧게 옮깁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규칙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 가능하고 어떤 것이 불가능한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런 것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아서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술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에 관한 규칙들을 만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불가능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조차 해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른다면, 시도하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아무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에 대해 도전을 금지하는 규칙을 만든 사람은 아직 없으니까요."

 

  "규칙을 깨 버리세요. 당신이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좀 더 흥미진진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책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긴긴 겨울날 소파에 축 처져 올림픽 재방송을 하염없이 보고 있는 매너리즘에 빠진 크리에이터인 모두에게 바칩니다. 다음은 당신의 인생이 예술이 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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