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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세페 베르디, 맥베스 Giuseppe Verdi, Macbeth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9. 1.


1.

오페라나 뮤지컬,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는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연들은 티켓 값이 너무 비싸다는 단점이 있죠.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 같은 곳을 통해 수준급의 오페라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있습니다. 멋드러진 정장을 입고 오페라 극장에 공연을 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치킨과 함께 오페라를 즐기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아닐까요? 오늘 소개해드릴 오페라는 주세페 베르디의 맥베스입니다.

맥베스는 중세시대 스코트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1세기 중세 유럽의 요새를 오페라 무대에 재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인지 아에 무대를 현대로 옮기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의상들도 현대적인 드레스나 정장 등을 사용하고요.

 



가끔은 이런 옷을 입혔을까 싶은 연출도 있긴 합니다. (아마도 거미집의 *’ 오마주 것 같습니다.)

* ‘거미집의  맥베스를 토대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입니다.


아래 영상의 무대 연출은 현대와 중세의 느낌을 적당히 섞은 의상과 극단적으로(?) 단순한 배경-정사각형 상자 모양의 구조물 하나 뿐이죠- 돋보이는 것 같아요.



영상을 보시면 마녀 무리가 등장해 으시시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오페라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마녀들의 모습이 어디에서 많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2편에서 등장한 점술가 티아 달마 닮지 않았나요


두 캐릭터 모두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비슷한 스타일로 연출한 것 같아요. 여튼 마녀들의 모습도 그렇고 부르는 노래도 이전까지의 오페라들-이걸 '벨칸토(Belcanto.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래요.) 분위기의 오페라'라고 하더라고요-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낯설고 기괴한 선율이 가득하고, 연극적인 요소도 많이 들어있죠. 이는 베르디가 어느 정도 노린 부분이기도 해요. 맥베스 이전에 만든 조반나 다르코’, ‘알치라 실패하면서 이상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종의 분위기 전환을 꾀한 것이죠.


 

2.

  맥베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 비극 하나입니다. 오페라 맥베스는 희곡을 원작으로 베르디 본인이 초안을 쓰고, 베르디의 절친인 피아베가 초안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어로 대본을 것입니다. 멕베스는 베르디 초기 작품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오페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은 영어로 작품이지만 베르디의 오페라는 이탈리아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이름이 희곡과는 조금 달라집니다. 맥베스는 막베토, 던컨은 둔카노, 뱅코우(‘뱅쿠오라고도 표기합니다.) 반쿠오, 맥더프는 막두프, 말콤은 말콜름이라고 부릅니다. 아리아를 들을 이름 부분을 유심히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같아요.

  오페라의 경우 연극과 달리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원작 분랑에서 많은 부분을 생락하고 있습니다. 예로 셰익스피어 원작은 던컨 살해 전의 무대가 일곱 곳이나 되지반 오페라에서는 곳으로 압축되어 있죠. 하지만 오페라에서는 합창을 이용해 마녀가 등장하는 장면이나 군중 장면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극의 차이점을 비교해보면서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3.

  맥베스는 다른 4대 비극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영웅의 이미지가 덜하고, 맥베스에는 다른 비극과는 달리 악역이 없습니다. 단지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맥베스가 스스로를 파멸로 끌고가는 것 뿐이죠. 비록 그의 아내가 부추겼다고는 하지만, 애시당초 그의 아내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맥베스가 왕위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기 때문이죠. 또 왕을 시해하자는 아내의 제안을 거부할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거부하지 않고 왕을 살해하는 것은 맥베스 자신이기도 하고요.

  극의 초반에는 아내의 입깁에 좌우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욕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아내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멕베스 자신도 왕위에 대한 욕심이 있던 것이죠. 아니, 그 욕망이 누구보다도 더 강력했던 것 같아요. 마녀들의 예언과 아내의 부추김은 그 욕망이 폭발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주었을 뿐이죠

어떻게 보면 예언, 그리고 아내의 권유는 멕베스 자신이 왕위를 찬탈한 것에 대한 핑계거리라고 생각해요. “마녀들의 예언 때문에 어쩔 수 없이라던가 아내가 부추겨서 어쩔 수 없이라는 변명을 붙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레이디 맥베스의 아리아 얼룩 Una macchia” (또는 여기 아직도 핏자국이 Una macchia è qui tuttora”)



베르디가 이 오페라에서 굉장히 신경을 쓴 배역이 바로 맥베스 부인(레이디 맥베스)입니다. 1막의 편지 읽는 부분부터 마지막에 몽유병 장면까지, 베르디가 그 전에 있던 전형적인 벨 칸토 오페라 양식에서 벗어난것도 맥베스 부인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연 당시 맥베스 부인을 맡았던 마리아나 바르비에리애개 몽유병 환자의 모습을 모방해서 연기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말이에요.

원래는 드라마티코 소프라노(soprano dramatic. 강력하고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약간 어두운 빛깔의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가 맡게 되는 배역입니다. 레이디 맥베스에 대해 베르디가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길 정도로 자칫 잘못하다간 목소리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무거운 배역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맥베스리허설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어느 오페라보다 이 작품에 관심이 많은지라 몇마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타돌리니가 레이디 맥베스를 부를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녀가 이 역을 맡아야 한다고 했을 때 [사실] 정말 놀랐습니다. 제가 타돌리니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 지 아실 것입니다. 그녀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우리 모두를 위해 저는 다음을 말씀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돌리니의 음색은 이 역을 부르기엔 너무 섬세합니다. 이 얘긴 당신께 말도 안되는 소리로 들릴수도 있습니다. [물론] 타돌리니는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허나 저의 레이디 맥베스는 거칠고 사악한 [인물]입니다. 타돌리니가 노래부르는 것은 완벽합니다. 허나 저는 레이디 맥베스가 노래하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습니다.* 타돌리니는 깨끗하고, 유연하고, 강렬한, 환상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허나 레이디 맥베스의 목소리는 독하고, 텁텁하고, 어두운 [음색이였으면] 합니다. 타돌리니의 목소리는 천사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레이디 맥베스가 악마같은 목소리였으면 합니다 []"

 

* 레이디 맥베스의 노래 라인은 서정적이고 마냥 예쁘기만 한 전형적인 아리아와는 차별되기에 베르디가 "노래부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위의 글은 18481123일날 파리에 머물던 베르디가 살바토레 카마라노(Salvatore Cammarano)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카마라노는 "레냐노의 전쟁"(La battaglia di Legnano)에서 같이 작업했던 대본가인데 당시 나폴리에서 "맥베스"를 한창 무대에 올리려는 중이었죠. (맥베스의 초연은 1847년 피렌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편지를 보면 베르디가 원했던 레이디 맥베스의 목소리는 어떤 음색이며 전반적인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한가를 이해할 수 있는데요. 베르디가 말하는 레이디 맥베스의 캐릭터는 청아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섬세한 목소리랑은 상반되는 어둡고, 무겁고, 거친 악마적 이미지입니다. 음침한 마녀들을 훌쩍 뛰어넘는 사악한 포스와 강렬한 기가 느껴지는 그런 캐릭터로서의 레이디 맥베스를 베르디는 원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 역할을 메조 소프라노들이 많이 맡기도 합니다. 메조 소프라노가 소프라노들 보다 드라마틱 표현에도 적합하고, 배역에서 요구하는 저음에도 충실하기 때문이에요.

편지에서 등장하는 타돌리니는 당시 잘나가던 소프라노 가수인데요. 베르디의 말로 추측해보건데, 타돌리니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목소리의 전형적인 리릭 소프라노였던 것 같아요. 그러나 베르디의 어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나폴리 연주에서는 타돌리니가 그 역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베르디가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두 개의 곡 중 하나가 바로 몽유병 아리아(다른 하나는 레이디 맥베스와 맥베스의 듀엣)인데. 이를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부른다면 몰입이 안 될 것 같긴 합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권력에 대한 욕망, 살인도 서슴치 않을 정도의 대범함, 결국은 죄책감으로 광기에 휩쌓인 모습들을 가진 맥베스 부인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역시 강하고 거칠고 차가운 열정의 목소리가 요구되는 것이겠죠. 그래서인지 맥베스 부인역은 성악가들에게 그야말로 고난이도의 배역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하네요.


아리아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Una macchia è qui tuttora...

아직도 점이 있네...

Via, ti dico, o maledetta!

없어져라, 저주받은 점이여!

Una... due... gli è questa l'ora!

하나... 둘... 지워야 해!

Tremi tu? non osi entrar?

두려우신가요? 왜 안나가시나요?

Un guerrier così codardo?

병사들이 그렇게 두려운가요?

Oh vergogna! orsù, t'affretta!

창피하군요! 서둘러 빨리 오세요!

Chi poteva in quel vegliardo

그 늙은이가 그렇게 피가 많았을 줄을

Tanto sangue immaginar?

누가 생각했을 것인가요?


 Di Fiffe il Sire

그는 파이프의 영주였지만

Sposo e padre or or non erà?

지금은 남편과 아버지가 아닌가요?

Che n'avvenne? E mai pulire

그럼 어떻게 된 것이지? 무엇이 이 손을

Queste mani io non saprò?

깨끗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Di sangue emano

여기에 아직도 피의 냄새가

Sa qui sempre . . . Arabia intera

나는구나 . . . 이 작은 손은

Rimondar sì piccol mano

모든 아라비아의 향수로도

Co' suoi balsami non può.

향기롭게 할 수가 없구나.

Oimè!

아, 어떡해!


I panni indossa

잠옷을 입으시고

Della notte... Or via, ti sbratta!

씻고 오세요!

Banco è spento, e dalla fossa

뱅쿠오는 죽었고, 그는

Chi mori non surse ancor.

무덤 밖으로 나오지 못해요



A letto, a letto ...

침실로, 침실로 ...

Sfar non puoi la cosa fatta ...

이미 엎질러진 물이예요...

Batte alcuno!... andiam, Macbetto,

문 두드리는 소리가!... 오세요 맥베스,

Non t'acusi il tuo pallor.

순수함이 당신을 책망하지 않도록.




5.

  맥베스의 최후의 아리아 연민도, 존경도, 사랑도 Pietà, rispetto, amore”는 바리톤들이 독창회에서도 즐겨 부르는 유명한 곡입니다. (맥베스는 바리톤들이 탐내는(?) 배역 중 하나입니다.) 대본상으로는 이 노래를 부를 때 맥베스는 아직 부인이 죽은 것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 노래가 끝난 뒤에 시종이 찾아와 부인이 자살했음을 알려오거든요. 좀 더 극적인 호과를 노리는 연출가들은 레이디 맥베스를 무대에 쓰러져 있게 하고 맥베스가 아내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주위를 서성거리는 연출을 주기도 합니다.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Pietà, ripetto, amore, conforto ai di cadenti,

동정심, 명예, 사랑, 전진하는 세대의 위안은

Non spargeran d'un fiore la tua canuta età.

너의 만년에 위안의 꽃을 뿌리지 못할 것이야.

Ne sul tuo regio sasso sperar soavi accenti:

너에게는 왕실의 금자탑에의 기쁨의 단어에 대한

Sol la bestemmia, ahi lasso!

희망도 필요 없이, 오로지 저주 뿐이다!

La memia tua sarà!

아 슬프도다, 네 장송곡이 될지어다!



이 곡은 자신을 2인칭으로 부른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가사의 는 맥베스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에요.)

이후 희곡에서는 내일, 내일, 그리고 내일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morow”이라는 제목과 함께 시로도 알려져 있는 독백이 등장합니다. 이 독백은 맥베스에서 가장 유명하고 최고의 명대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페라에서는 아쉽게도 이 부분이 생략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독백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영시를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면 익숙하실 거에요. (자주 등장한다고 하더라고요.)

 


She should have died hereafter.

There would have been a time for such a word.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Creeps in this petty pace from day to day.

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The way to dusty death. Out, out, brief candle!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그녀가 (지금이 아닌) 언젠가 후일에 죽었더라면.

그런 말이 어울리는 시간이 언젠가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내일, 내일, 또 내일은, 이 옹졸한 발걸음으로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순간까지 매일매일 기어가고

우리의 모든 어제는 어리석은 자들이

먼지로 돌아가는 죽음의 길을 비추어 왔다.

꺼져,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이란 그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 위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우쭐대고 걸으며

투덜거리지만, 곧바로 잊히는 가련한 배우.

그것은 바보 천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이다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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