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알토의 정규 2집, Daily Routine에 수록된 곡입니다. Daily Routine은 앨범명 그대로 '하루 일상'을 하나의 앨범으로 풀어낸 곡입니다. 당시 팔로알토는 최고의 기대주로 불리고 있었는데,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팔로알토의 꾸준한 동시에 거침없는 행보를 보면, 이 앨범을 그 도약을 위한 중간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군요.
팔로알토의 노래를 들은 리스너들은 '진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팔로알토의 중저음 보이스톤에서 오는 걸까요? 아니면 팔로알토라는 랩 네임에서 오는 걸까요?
팔로알토는 자신의 SWAG을 드러낼줄 아는 랩퍼입니다. 그런데 그 멋을 드러내는데 있어 과장된 허세나 욕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담담히 자신이 걸어온 길을 얘기하고 또 자신이 걸어갈 길을 얘기할 뿐입니다. 이런 팔로알토의 담백한 가사 양식에 대해 좋은 인터뷰가 있어서 발췌했습니다. 힙합플레이야에서 진행된 팔로알토 Chief Life 인터뷰입니다.
힙 : 팔로알토의 모든 가사양식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팔로알토의 가사를 보면 문장이나 자기 얘기를 하는 내용들이 정말 담백하게 쓴 하나의 에세이를 보는 듯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굳이 또 ‘요즘’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데, 요즘의 바이브 위주의 가사양식과 비교해 봤을 때 이제는 메시지가 분명해 보이는 가사가 오히려 유니크해졌다는 생각까지 들거든요.
팔 : 일단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들 다 각자 성격이 다르고. 예를 들어서 되게 세심한 사람은 내가 이 자리에 앉았고, 그 앞에 콜라 캔이 있고, 커피가 있고, 아이폰이 있는데 액정이 깨져있고, 이런 거를 다 캐치하는 성격의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이런 거에 둔해서 그냥 내가 여기 앉아 있고, 맞은편에 인터뷰어가 있고, 이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되게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있잖아요. 소심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대범한 사람이 있고, 차분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화를 잘 내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거처럼 랩퍼들도 각자 다 성격이 다르단 말이에요. 심지어 하이라이트 레코즈 안에 있는 랩퍼들만 해도 각자 성격이 다 다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가사를 쓰고 다른 음악을 하는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아까 진짜 힙합이 뭐냐고 했을 때 답을 정확히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가사를 쓰고 다양한 음악을 하고 있는데 진짜 힙합이 딱 하나가 있을 수가 없는 거잖아요. 굳이 따지고 보면 좋은 음악이 뭐냐고 했을 때 좋은 음악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도 되게 힘든 일이잖아요. 기술적으로 기타연주가 너무 뛰어나고 피아노연주도 너무 뛰어나고 베이스 라인도 너무 좋은, 그런 하모니가 잘 맞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해도 그 음악이 만약에 큰 인기를 못 얻어요. 그냥 뭐 대한민국 국민이 한 오천만이라고 치면 백 명밖에 모르는 음악이에요. 그러면 그게 과연 좋은 음악일 것인가... 그렇다고 사람들이 다 좋아해야만 좋은 음악이냐 그러면 그것도 아니고. 어떤 정의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질문에서 많이 벗어난 얘기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가사를 쓸 때 '나는 가사를 잘 쓰는 랩퍼가 될 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가사를 쓴 건 아니었거든요. 그냥 발표하다 보니까 팔로알토는 가사를 잘 쓰는 랩퍼라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해주고, 팬들도 그렇게 얘기해주고,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그렇게 평을 해주니까 그냥 그런 사람이 된 거지, 저는 애초에 ‘나는 좋은 음악을 만들 거야 좋은 랩을 할 거고 가사도 잘 쓸 거고 모든 면에서 그냥 좋은 랩퍼가 될 거야’ 라고 생각하고 시작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저는 그냥 제가 어떤 랩 적인 바이브가 뛰어나다기보다는 가사를 잘 쓰는 랩퍼라고 사람들이 불러주는 거에 대해서 굳이 부정하진 않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냥 제가 하고 있는 음악을 할 뿐이지, 한 가지에 목표를 가지고 한 건 아니었어요.
이 답은 힙합이란 장르의 정체성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과연 어떤 힙합이 진짜 힙합이냐, 어떤 음악이 좋은 힙합이냐, 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져왔지요. 그 질문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답은, 각자의 음악을 추구하는 아티스트들과 그것을 듣는 리스너들 이야기가 총체적으로 모여 형성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래를 들었으니 곡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해봐야겠죠. 노래는 무너지지 말자, 끝까지 해보자, 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그런 메시지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또 이 메시지의 표현도 그렇게 신선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군요. 오히려 제가 좋다고 생각한 가사는 빈지노가 맡은 verse2에 있습니다.
그 차안에 탔던 여자애들이 말하길
행복이란건 2주마다 하는 파마래
여기서 빈지노는 말 그대로 일상(Daily Routine)을 캐치했습니다. 저런 가사는 주변에 대한 민감한 관심 없이는 나오지 않지요. 이 포스팅은 팔로알토에 관한 포스팅이니 ^^; 팔로알토의 맛과 멋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곡을 들어보겠습니다. 프라이머리의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에 수록된 '3호선 매봉역'입니다. 마찬가지로 빈지노가 피쳐링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둘은 참 잘 어울리네요. 케미가 좋은 조합입니다.
라이브 영상도 있어서 같이 가져왔습니다. 라이브도 녹음물 못지 않게 뛰어나네요. 3호선 매봉역의 묘미는 뛰어난 가사 한 구절에 있지 않습니다. 이 곡은 랩이라는 양식이 가지는 장점을 굉장히 잘 풀어낸 곡입니다. 시와 랩은 비슷해보이지만 전자가 축약을 특성으로 한다면 랩은 그 반대지요. 다른 음악 장르에 비해 가사가 긴게 랩의 특성입니다. 길다는 것은 그만큼 할 말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의 길이를 잘 풀어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곡에서 팔로알토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편의 에세이처럼 펼쳐지는 그의 이야기에 리스너는 귀 기울이고, 조금 더 팔로알토라는 랩퍼를 이해하고,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대입시켜 봅니다. 거기에 빈지노의 독특한 목소리는 자칫 늘어질 수 있는 곡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어줍니다.
이 곡에서 가장 좋은 가사를 꼽자면, 저는 제목을 뽑겠습니다. 3호선 매봉역. 제목을 정말 잘 뽑았습니다. 3호선 매봉역은 팔로알토의 음악이 시작된 곳이자, 그의 음악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곳입니다. 이 곡에 이만큼 잘 어울리는 제목이 있을까요. 게다가 한 번 들으면 까먹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기도 하고요.
이상으로 팔로알토의 노래 두 곡을 들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가장 최신작인 Chief Life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또 열심히 트랙을 돌려봐야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로 남겨주시는 여러분의 감상과 의견, 이야기는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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