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랜드flatland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1884년)에 살았던 세익스피어 연구가 애드윈 A.애벗에 의해 쓰여진 사회풍자 소설입니다. 걸리버 여행기와 양대 맥을 이루는 영국 풍자 소설의 절정으로 불리죠. 하지만 이 책은 차원을 다룬 소설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이 책이 수학 소설인 지 아는 사람이 더 많죠. 심지어 작자 사후 120년동안 이 책이 가장 많이 읽힌 곳은 대학 물리학과였다고 해요. 그만큼 '차원'에 대해 정교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소설의 주인공은 평면만이 전부인 2차원의 세계, 즉 플랫랜드에서 살고 있는 사각형인 A. 스퀘어입니다. 소설의 1부에서는 그가 자신이 살고 있는 플랫랜드에 대해 설명하고 2부에서는 스퀘어 씨가 자신이 사는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들을 방문하면서 겪은 일들을 다루고 있죠.
우리는 스퀘어 씨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위 차원인 2차원의 모습이 어떠할 지 쉽게 상상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보다 더 낮은 차원인 '라인랜드lineland', '포인트랜드pointland'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3차원보다 한 단계 더 높은 4차원의 경우는 어떤가요?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이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차원'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수학에서는 기저함수(basis function)의 개수를 차원이라고 말합니다. 일정한 벡터공간에서 임의의 벡터는 적당한 단위 벡터들의 선형 조합으로 표시할 수 있는데, 이 때 서로 내적이 0이며 그 개수가 가장 적은 단위벡터쌍을 기저함수라고 해요.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직교좌표계의 축(x축, y축 등)이 됩니다.
3차원 백터 공간을 나타내는 기저함수의 형태는 여러 개가 존재할 수 있어요. 먼저 직교좌표계는 (x,y,z)로 표시되며 흔히 말하는 xyz축을 말합니다. 또 원통좌표계(Cylindrical)라는 것도 존재하는데 원통모양 밑면의 반지름 r, 경도를 나타내는 θ, 원통높이 z를 이용해 (r,θ,z)로 위치를 표시해요. 그리고 구면좌표계(Spherical), 구면좌표계는 구의 반지름 r, 위도와 경도를 나타내는 θ와 φ를 이용해 위치를 표시하게 됩니다. 이 방법은 실제 GPS등에 많이 이용되고 있어요. 이 외에도 수학이 그렇듯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좌표계를 더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시각적으로 생각할 때 0차원은 점으로, 1차원은 직선, 2차원은 평면, 3차원은 공간으로 표현됩니다. 4차원 이상은 시각적으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수학적인 개념만으로는 몇 차원의 세계든 문제없이 만들 수 있으며, 실제로 무한 차원을 다루기도 해요.
유클리드는 0, 1,2,3차원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입체의 단면은 면이다. 면의 단면은 선이다. 선의 단면은 점이다.”
이 정의는 3->2->1->0차원으로 내려가는 차원의 정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역이용한 것이 프랑스의 수학자 푸앙카레가 세운 새로운 차원의 정의입니다.
“단면이 0차원이(점)이 되는 것을 1차원(선)이라 부른다. 단면이 1차원이 되는 것을 2차원(면)이라 부른다. 단면이 2차원이 되는 것을 3차원(입체)라고 부른다. 단면이 3차원이 되는 것을 4차원(초입체)라 부른다.”
즉 0차원의 도형(점)을 1차원의 방향(선)으로 움직이면 선이 생기고 선을 2차원의 방향으로 생기면 도형이 생기고, 면을 3차원의 방법으로 움직이면 입체가 생기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입체를 4차원의 방향으로 움직이면 4차원의 물체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우리는 4차원 이상의 차원을 생각할 수 있고, 기하학에서 사용할 수 있어요.
위의 개념을 확장시키면 물리에서 말하는 차원이 됩니다. 쉽게 생각하면 ‘단위’라고 할 수 있어요.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단위의 ‘의미’가 바로 차원이죠. 예를 들면 km, cm 등은 모두 길이의 단위로서 같은 차원에 속하지만 kg, hour는 각각 다른 차원에 속해 있죠(kg은 질량의 단위, hour는 시간의 단위입니다). 보통 가장 기본적인 차원과 단위는 m(길이), kg(질량), s(시간)입니다. 이는 SI 단위 자체가 과학적으로 사용하는 표준단위이기 때문이에요.
차원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4차원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많은 사람들이 4차원을 '3차원 공간 +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4차원은 4개의 차원(dimension)으로 이루어진 임의의 공간을 뜻하므로 꼭 다른 하나가 시간일 필요는 없어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값에 하나의 기저(basis)로서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축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 값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퍼텐셜일 수도 있고, 확률일 수도 있는 것이죠. 단 4차원 시공간이라고 한다면 '3차원 공간 + 시간'을 말하는 게 맞습니다.
위는 초입방체라는 4차원의 도형을 3차원에 투영한 것입니다. 투영될 때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그림자가 생기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냈어요. 3차원 도형인 정육면체는 3차원 공간을 각 축에 수직한 2차원 공간 6개로 나눠 만드는 도형입니다. 그리고 이 정육면체를 각 차원축마다 2개씩 해서 8개를 붙이면 나오는 도형이 바로 초입방체에요.
클라인의 병은 2차원 공간의 한계를 3차원 공간에서 해결한 뫼비우스의 띠와 비슷하게 3차원의 한계를 4차원에서 해결한 초입방체입니다. 구나 도넛모양처럼 테두리는 없고 안과 밖이 없이 닫힌 도형이죠. 3차원상의 그림에서는 표현의 한계로 뚫고 들어가는 부분이 생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두 개의 뫼비우스 띠를 테두리를 따라 서로 붙여주면 클라인의 병이 되고, 반대로 안과 밖이 없는 테두리 없이 닫힌 곡면을 잘 자르면 뫼비우스의 띠가 됩니다.
한편, 이 도형을 4차원 방향으로 뒤집으면-이를 넣는다(Immersion)고 말합니다.- 아래와 같이 전혀 막히거나 겹쳐지는 부분이 없는 형태가 나온다고 해요.
이 도형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도형을 만드려면 4차원 공간을 각 축에 수직한 3차원 공간 8개로 나누는 작업부터 해야 하는데 우리들은 3차원 공간 1개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떠오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서 이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것까지 멈춰서는 안됩니다. 플랫랜드의 주인공 스퀘어가 한 말처럼 말이죠.
"문이나 창문을 열지 않고도 선생님은 저의 내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보다 높은 차원의 누군가가 인간의 내부를 들여다본 사람이 있습니까? … 전 확신합니다. 제 예상이 틀림없이 맞을 겁니다. 한 입방체가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입방체는 새로운 세계로 가서 새롭게 태어나 자신의 내부를 볼 수 있게 되겠지요. 좀더 완벽한 모양을 한 모습으로― 열여섯개의 꼭지점과 여덟 개의 입방체로 둘러싸인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한 모습 말입니다. 일단 그곳에서 우리의 날갯짓을 멈춰야 할까요? 축복받은 사차원의 세계에서 말입니다. 아니면 오차원의 출발점에서 머무를까요? 그 안에는 들어가지 말고요? 아, 아닙니다. 몸을 하늘 높이 날려 더 큰 야망을 가져야지요. 육차원의 문을 활짝 열어 지식의 갈증을 풀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칠차원, 또 팔차원, …"
위의 동영상은 유명한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이 4차원 우주에 대하여 설명해주는 짧은 영상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모든 내용들이 훨씬 쉽고 간결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꼭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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